열쇠가 부러져 박혔습니다

2008.08.21 08:56:00

엊그제 외출을 하려고 자동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는데 갑자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한참을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열쇠를 돌리다가 이상해서 열쇠를 다시 빼는 순간 황당한 일을 목격했다. 열쇠가 1/3 지점에서 부러져 없어지고 도막난 열쇠만이 열쇠고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집에 보관하던 보조열쇠를 가지고 운전석 쪽 문을 열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열쇠가 열쇠 구멍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나는 다시 반대쪽 문을 열고서야 운전석에 앉을 수가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비로소 나는 운전석 문이 열리지 않는 원인이 거기에 열쇠 토막이 박혀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20년 가까이 운전을 하면서 별별 경우를 다 겪어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고 누구에게서 들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백미러가 부서진 경우, 계기판 속도계가 작동을 멈춘 경우, 에어컨을 켜도 더운 바람만 나오는 경우, 엔진 쪽에서 연기가 꾸역꾸역 피어오르는 경우, 출근하려는데 타이어가 펑크 나 있는 경우, 워셔액이 자동차 지붕 꼭대기로만 분사되는 경우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 경우를 접해봤다. 하지만 이렇게 열쇠구멍 속에서 열쇠가 부러져 박혀 있는 경우는 처음이고 어디에서도 그 경험과 처방에 대한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었다.

물론 카센터에 가면 어떤 해결책을 찾기야 하겠지만 열쇠구멍에 부러져 박힌 열쇠 토막을 감쪽 같이 족집게로 집어내줄 기술자는 어느 카센터에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통채로 그 잠금장치를 갈아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은 아주 뻔한 것이다. 아무래도 빨리 카센터에 알아보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았다. 나는 치과에 들러 나오다가 곧바로 인근 카센터로 차를 몰았다.

"자동차 열쇠가 열쇠구멍에 박혀 부러졌네요. 이거 뺄 수 없을까요?"

카센터 직원은 어떤 문제인지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고 즉시 대꾸를 했다.

"힘들어요. 여기서는 못 빼니까 쌍용 서비스센터에 알아보는 게 좋겠네요. 아마 거기서도 못 뺄걸요. 다 갈아야 할 겁니다."
"다 갈다니요? 한쪽 문 잠금장치 전부를 갈아야 한다구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전에 한 번은 안테나가 부러져서 교환한 일이 있었고, 창문 자동개폐 장치가 시원찮아 수리 받은 적이 있었다. 예상외로 내부장치 전부를 교체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어서 만만찮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갔다. 내 대꾸에 그 카센터 기술자는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다.

"한쪽 문이 아니고 갈면 네 군데 전부 갈아야 돼요.

이런 낭패가 있는가. 비용이 대략 십오륙만 원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단골로 다니는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했다. 봐야 알겠지만 뺄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내부장치 전부를 갈아야 할 것 같고 비용은 대략 십 몇 만원이 든다며 카센터 직원과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일단 다른 볼일을 본 다음 단골 서비스센터를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고 동네 노점 구두 수선소로 갔다. 동네 골목 어귀에 있는 이 수리점에선 가방이나 구두 등 가죽제품을 주로 수리하지만 각종 열쇠복제도 해주는 곳이다. 우선 예비 열쇠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두 명의 기술자가 일을 하고 있다. 열쇠를 복제하는 동안 나는 그냥 얘기삼아 말을 건넸다.

"자동차 열쇠가 열쇠구멍 속에서 부러져 박혔는데 그거 뺄 수 없을까요?"

답답한 심경을 무심코 내비쳤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분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거 빼는데 있어요."
"어딘데요? 어떻게 아세요?"
"우리 동업자니까 알죠. 소래 가면 있어요."

의외의 대답에 나는 정신이 바짝 들면서 전화번호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뜻밖에도 전화번호까지 외우고 있다가 술술 불러주지 않는가. 즉시 전화를 했다. 뺄 수 있다는 자신 있는 목소리와 함께 출장은 3만 원, 직접 오면 2만 원이라는 수리비용까지 알려주지 않는가. 세상에 이럴 수가! 꼭 내게 필요한 맞춤형 기술자를 찾아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열쇠복제가 끝나고 비용을 건네며 "그냥 얘기삼아 해본 건데 좋은 데를 알았네요"하니까 "그래 서로 얘기하다 보면 다 해결책이 나온다니까요"한다.

인천 소래포구라면 인천 우리 동네 만수동에서 10분 거리다. 나는 즉시 차를 몰았다. 설명들은 데로 가서 대충 차를 멈추고 두리번거리니 한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짓을 한다. 60대의 아저씨가 노점에 구두수선소를 차려놓고 있었다. 그는 즉시 연장뭉치를 들고 나와 내 자동차 옆에 펼쳐놓았다. 현미경을 비롯해서 자잘한 도구가 꽤 여러 가지다. 그는 우선 자동차 열쇠구멍에 현미경부터 들이대고 부러진 열쇠토막의 위치를 찾았다.

이어서 가느다란 집게로 열쇠구멍을 조금 넓혀 놓더니 철사 두개를 열쇠구멍에 찔러 넣는 것이다. 그 철사는 특수제작된 것으로 가느다란 철솔 같이 생긴 것이었다. 이어서 두 철사를 빙빙 돌려 꼬는가 싶더니 금세 부러진 열쇠토막이 그 철사 줄에 끌려나오는 것이 아닌가. 원리를 물어봤더니 현미경을 보면서 열쇠 양쪽으로 파인 홈에 그 까칠까칠한 철사를 밀어서 끼워 넣었다가 당기면 빠져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채 3분도 되지 않아 가볍게 작업을 끝내고 주섬주섬 연장들을 챙겨 연장주머니에 넣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수리비용을 건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나는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난감하던 일이 이렇게 가볍게 해결된 것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 이웃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게 마련인 사회생활의 이치를 새삼 깨달았다. 오늘도 나는 치과엘 들려 신경치료를 받았다. 이발을 하고 열쇠를 복제하고 시계포에 들러 고장 난 시계를 맡기고 왔다. 나의 이웃들이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달은 유쾌한 날이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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