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기다리며

2009.01.11 20:33:00

한 달 남짓이면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난다. S고등학교로 온지가 벌써 5년이 흘렀다. 어떻게 근무를 해왔는지? 교육활동에 보람을 찾았는지? 이른 바 위교(僞敎), 비교육적 사고에 젖은 적은 없었는지? 이제 곧 헤어져야 할 텐데 동료들과는 원만하게 협조하며 지내왔는지?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겠다. 쉽게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 열심히 근무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없고 비교육적 처신을 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정말 그랬나? 반문하게 된다. 동료들과 헤어지는 게 한편 섭섭하면서도 당연한 것처럼 또 담담하기도 하다. 이미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번이 내 마지막 전근이다. 다음 학교로 가 2년 남짓 근무하면 정년을 맞이한다. 이제 내 교직생활을 되돌아볼 시점이 되었나보다. 굴곡 많았던 세월이었다.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 다소 안정기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공교육 부실화가 여론의 또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교육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그만큼 교육이 중요하고 전 국민의 초미의 관심사가 교육이기 때문이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 교육은 점점 발전해 갈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흐른 것 같다. S학교에서 내 근무성적은 어땠는가? 억지로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도 않지만 과소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개인적으로는 생계의 방편이요 생명활동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공적으로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고 국민에 대한 봉사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 했다면 스스로 과소평가할 까닭이 없다. 공적으로 나의 교직생활은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책무를 다 한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하루의 시작이 있으면 하루의 끝이 있다. 한 달도 마찬가지, 일 년도 마찬가지다. 한 학교 5년을 근무한다면 거기에도 시작과 끝이 있다. 나는 이제 그 5년을 끝맺으려 한다. 보통 1년이라는 단위를 중요시 하는 것처럼 순환근무를 하는 교사에게 5년이라는 단위는 소중하다. 실로 인생의 중차대한 한 단위를 이루기 때문이다. 두 번이면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 아닌가.

5년을 어떻게 살아냈느냐 하는 것은 곧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느냐로 귀결될 수 있다. 5년 근무는 인생의 축소판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나는 한 학교 근무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지만 이것은 내 인생의 가감 없는 한 토막이다. 한 학교 근무를 마무리하는 시점과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의 마음가짐이 전혀 별개가 아니다. 삶을 대하는 자세는 시차가 있더라도 대동소이하기도 할 것이다. 5년이라고 하는 근무단위의 연장선상에 인생도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모여 삶을 이루는 것인데 5년 세월이라면 그것은 실로 대단한 시간 단위인 것이다. 어찌 중요하지 않은가? 어떻게 소홀히 생각하고 낭비할 수 있단 말인가?

막연한 미래에 희망을 걸어놓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Carpe Diem! (오늘을 붙잡아라) 이 말은 최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화의 한 대목이지만 실은 BC 약 100년경 라틴의 시인 호라티우스(Horace)가 한 말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전해지는 진리가 아닐 수 없다.

Carpe Diem!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종점에 서서 지난 세월을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지나친 욕심으로 인생의 진면목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내 주변의 작은 일에서 기쁨을 발견해야 한다. 세상의 작은 것에 애정을 기울인다면 생활은 아기자기한 일로 충만할 것이다. 풀꽃 하나에도 놀라운 비의는 담겨 있다. 구름 한 점의 오묘한 몸짓을 놓쳐선 안 된다. 생명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터득해야 그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나는 조용히 새 학기를 기다리고 있다. 막중한 사명과 일상의 기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레임 덕(Lame Duck)이라는 말이 직장인에게도 해당될지 모르겠다.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교단에 서는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것이 곧 성실한 삶의 자세다. 아름다운 공직자의 모습이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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