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마음이 순결하다

2009.05.18 11:16:00

대학 때 조병화 선생님이 다시 그리워진다. 선생님의 수업은 감동 그 자체였다. 선생님은 문학 이론을 가르치시기 보다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셨다. 그리고 인생을 가르쳐 주셨다. 그뿐인가 선생님은 한없이 무엇인가 주시는 분이었다. 신간 시집이 나오면 헌사를 써 주시고, 수필집이 나오면 제일 먼저 주셨다.

선생님의 사랑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편지 왕래를 했는데 어느 날 붓글씨를 써 주셨다. 선생님의 스물두 번 째 시집 ‘남남’에 실려 있는 시였다.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처럼 글씨 또한 따뜻함이 그대로 묻어 전해 왔다.

버릴 거 버리고 왔습니다.
버려선 안 될 거까지 버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 ‘나의 자화상’

나는 이 글을 액자에 넣어 책상머리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내 생활의 방편으로 삼았다.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내 인생의 지표이고, 가훈이 되기도 했다.



‘버림’의 철학을 말씀하셨지만, 사실 인간은 ‘버림’에 익숙하지 않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외부로부터 얻어야 살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먹는 것부터, 남보다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한다. 그뿐인가 잠도 많이 자고 싶고, 휴식을 취해도 남보다 더 많이 편한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메운다는 말까지 있다.
그러나 이 가지려는 욕심이 인간을 그릇되게 만든다. 이 세상에 모든 삶의 모습이 욕심으로 시작된다. 매일 신문을 장식하는 권력가의 몰락도 한없는 욕심의 끝이 만들어낸 슬픔이다. 자기가 충분히 누리고 있는 데도 더 차지하려다가 몰락의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는데, 그들이 욕심의 끈을 놓았다면 극한 상황까지는 안 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담긴다. 매일 으르렁 대는 여야의 싸움도, 원주민과 개발업자간의 싸움도 성적이 나쁘다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학생도 모두가 잘못된 욕심의 저울에 앉아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욕심은 인간만이 가지는 본능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에게 절대로 유익한 정서가 아니다. 욕심은 그 속성이 영원히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을 소리 없이 죽이게 된다. 인간은 존엄하다고 하지만 욕심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존재일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 공포, 근심, 걱정, 아픔 등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슬기롭게 극복한다. 그런데도 그 아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정신까지 놓은 경우가 있는데, 그들은 내면의 욕망이 자아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아픔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생각의 전환만 가져오면 쉽게 해결된다.

인간의 본능을 알기 때문에 성인(聖人)들은 버리는 철학을 말한다. 물질의 욕심뿐만 아니라 정신세계도 훌훌 털어버리는 삶의 지혜를 말한다. 종교인의 수행도 마지막 단계는 버리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심오한 철학적 배경으로 말할 필요도 없다. 신산한 삶의 시름을 풀어내는 방법은 마음의 짐을 버리는 것이다. 하루의 피로를 풀고 여유를 누리면 오히려 내적 충만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세상과 잠시 단절하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위가 적막해진다. 정신 또한 청량함이 인다.

인간이 오래 살고 생을 마감하는 것도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어서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 태어날 때 맨몸으로 태어나듯 돌아갈 때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이치이다. 실제로 인간은 살아가면서 얻는 것보다 잃게 되는 것이 더 많다. 그렇다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버리며 살아야 하는 역설적인 존재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보다 생활이 편리해지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산다. 그러나 우리는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린 듯 살고 있다. 늘 더 많은 것을 바라보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형편이나 수준을 벗어난 소유욕은 남과 비교되어 굴욕감과 수치심으로 밀려온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최근 우리 삶의 모습에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이다. 나눔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가진 다는 것은 나눔을 위한 예비이다. 재산을 모으는 것보다 욕망을 줄이는 일이 더 쉽고 풍요롭다. 한 모금의 물도 혼자 가지고 있으면 썩어 버린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생명수가 된다.

우리는 간혹 복잡하고 화려한 세상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텅 빈 마음에 위안을 얻는 경우가 많다. 사람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하기가 힘들다. 욕심이 없고 마음이 맑은 사람이 좋다. 버리지 않으면 그 무게에 짓눌려 헤어날 수 없다. 권력도 버려야 하고, 명예도 버려야 한다. 마음에 공깃돌만한 욕심도 내려놓아야 한다. 나를 조금씩 버리며 우화(羽化)를 꿈 꿔라. 욕심이 없는 마음이 순결해지고 신성한 나를 만든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