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사용은 공적 언어생활의 의무이자 권리

2009.06.08 14:00:00

방언 애호가들이 공문서 및 교과용 도서의 어문 규범 준수 의무를 담고 있는 ‘국어기본법’ 제14조 및 제18조가 헌법 제11조(평등권) 등에 위배된다고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위헌 소송을 했었다.

최근 이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나왔다. 그 내용은 사투리를 제외하고 서울말만 표준어로 정하고 공문서와 교과서에 표준어를 사용하도록 한 국어기본법은 합헌이라는 것이다.

국어기본법에 따르면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규정하고, 공문서를 작성하고 교과서를 편찬할 때 표준어 사용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서울이 문화를 선도하고, 서울말의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점 등 다양한 요인에 비춰볼 때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표준어를 강제하는 범위가 공문서 작성과 교과서 제작이라는 공적 언어생활의 최소한의 범위라서 사적인 언어생활은 제한받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반면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은 서울말이라는 기준만으로 표준어 범위를 정해 이를 강제하는 것은 국민 언어생활에 관한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세계 여러 나라는 국민 통합을 위하여 국민이 사용하는 언어의 통일을 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표준어이다. 표준어는 이상적인 말, 규범이 될 만한 말로 사회적으로 동의된 규범이다.

우리나라도 1936년의 ‘사정한 표준어 모음’ 이후 표준어 정착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그러나 언어의 현실은 수시로 변하고, 그 변화 또한 빠르게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국가의 표준어 정책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결국은 언중이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잘못된 언어 사용은 시기, 반복, 충돌을 하게 된다. 다음 예문은 그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6․25 피란 시절에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경상도 토박이 장사꾼 아낙네와 피란 나온 함경도 아낙네 사이에 한참 동안 똑같은 말이 서로 오고 갔다.
“머꼬가 무시기?” / “무시기가 머꼬?” / “머꼬가 무시기?” / “무시기가 머꼬?”

왜 그렇게 똑같은 말을 계속 주고받나 해서 가만히 얘기를 들어 보았다. 알고 보니 상대방이 하는 말을 서로 못 알아들어 일어난 일이 아니던가. 발단은 북한 아낙네가 좌판에 있는 멍게 이름을 몰라서 경상도 아낙네에게 물어본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아즈마니, 이그 무시기?” / “무시기? 무시가가 머꼬?”
이것이 무엇이냐는 뜻의 물음인데, 부산 아낙네가 그 말에서 ‘무시기’란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 그래서 ‘무시기’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함경도 아낙네가 그 말을 또 못 알아들었다. ‘머꼬’란 말을 몰랐기 때문이다.

“머꼬? 머꼬가 무시기?” / 역시 또 ‘무시기’가 나올 수밖에.
“또 무시기라예? 무시기가 도대체 머꼬?”
“또 머꼬람능가? 왜 자꾸 머꼬 머꼬 합지비? 머꼬가 무시기?”
“아이구마, 이를 우야꼬? 자꾸만 무시기라카네. 무시기가 대체 머꼬?”
‘무시기’나 ‘머꼬’나 다 똑같은 뜻의 말인데도 서로가 쓰는 말이 달라 이러한 상황이 일어났다.
-배우리(사전 따로 말 따로)

위 예문은 우리말에서 표준어 사용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즉 우리가 표준어 규정을 정하지 않고, 또한 표준어 사용에 대한 강제 규정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인다. 교실에서도 선생님이 사투리로 교육을 한다면 아이들은 못 알 듣는다. 마찬가지로 공공 기관에서 방언으로 업무를 처리한다면 우리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된다. 아니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도 위의 예처럼 표준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고 협동해야 한다. 원만한 인간 생활을 위해서는 바르고 효과적인 언어생활을 수행해야 한다. 바르고 효과적인 언어생활을 수행하기 위한 첫걸음이 표준어 사용이다. 표준어의 기능을 바로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언중에 동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사투리를 써도 상관이 없는 경우가 있다. 지역 사람과 사적인 대화를 나눌 때 사투리로 표현하면 정감을 느끼고, 쉽게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문학 작품 등에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감이 나고, 표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사투리 연구 모임은 국어기본법이 지역 언어 사용의 제한으로 행복추구권·평등권·교육권을 침해한다고 했지만, 사실 지금 우리나라는 사투리를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도 교육자도 방송인도 사투리를 사용한다고 해서 국가에서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국어는 악센트 하나부터 원음에 가까운 발음을 위해 반복적인 훈련을 하면서 모국어는 멋대로 쓰자고 하는 것은 문화인의 자세가 아니다. 사투리 사용은 자유로운 선택이지만 표준어 사용은 공인으로서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표준어 사용에 힘써 문화인으로서의 긍지를 지녀야 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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