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지다’와 ‘삐치다’

2009.07.28 16:25:00

‘삐지다’와 ‘삐치다’도 구별해서 써야 한다. 특히 ‘삐치다’를 써야 할 자리에 ‘삐지다’를 쓰는 경향이 많은데, 잘못된 것이다.

‘삐지다’
칼 따위로 물건을 얇고 비스듬하게 잘라 내다.
- 김칫국에 무를 삐져 넣다.

‘삐치다’
성이 나서 마음이 토라지다.
- 그렇게 조그만 일에 삐치다니 큰일을 못할 사람일세.
- 잘 놀다가도 석형 얘기만 나오면 저렇게 삐치고 다투니 언제 철이 들는지……(이영치, ‘흐린 날 황야에서’).

국 요리할 때 무를 넣으면 시원한 맛이 든다. 이때 무를 얇게 썰어 넣는 것을 ‘삐져 넣는다’고 하면 된다. 그리고 남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마음이 토라질 때는 ‘삐치다’라는 동사를 써야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삐치다’를 써야 할 자리에 ‘삐지다’를 쓰는 경향이 많다. 아래 예가 모두 그렇다.




○ 박명수는 ‘버럭명수’ 스타일의 사극으로 눈길을 끌었고, 은지원은 ‘은초딩’ 스타일로 삐진(?) 왕 연기를 펼쳐보여 웃음을 자아냈다(뉴스엔, 2009년 6월 10일).

○ 실제로 부부싸움을 하듯 삐진 연기를 하는 신봉선에게 이현우는 깜찍한 애교와 함께 개다리춤을 추며 화를 풀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선보여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뉴스엔, 2009년 5월 13일).

○ 이를 본 정형돈은 닭으로 음식을 만드는 태연에게 “강동원과 조인성을 먹인다고 생각하고 만들어라”고 하는 등 단단히 삐진 모습을 보였다(프런티어타임스, 2009년 3월 29일).

‘삐치다’를 ‘삐지다’로 잘못하는 데는 텔레비전도 빠지지 않는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삐지다’를 쓴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삐지다’를 연발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최근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가 계속 ‘삐지다’라고 말해도, 자막은 ‘삐치다’라고 바르게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삐지다’와 ‘삐져나오다’도 다르다. ‘삐져나오다’는 ‘속에 있는 것이 겉으로 불거져 나오다.’라는 뜻으로 ‘속옷이 삐져나오다./가방에 물건을 너무 많이 넣었더니 자꾸 뭐가 삐져나오려고 한다.’라고 쓴다. 여기서 또 주의할 것이 있다. ‘삐져나오다’는 한 단어이다. 띄어 쓰면 안 된다.
참고로 ‘비집다’라는 동사가 있다. 이는
1. 맞붙은 데를 벌리어 틈이 나게 하다.
- 그는 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2. 좁은 틈을 헤쳐서 넓히다.
- 도섭 영감이 얼른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가 돌멩이를 하나 집어 던졌다(황순원의 ‘카인의 후예).3. 눈을 비벼서 억지로 크게 뜨다.
- 눈을 비집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위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단어 ‘배집다’가 있다. 이는 ‘매우 좁은 틈을 헤치어 넓히다.’라는 뜻으로, ‘창고를 둘러친 판자 틈으로 배집고 들어가 물건을 훔치곤 하였다./좁은 문 사이를 배집고 들어가다.’라고 쓴다.
‘비집다’나 ‘배집다’는 의미로 볼 때 큰 차이가 없다. ‘비집다’가 어감이 큰말이다. 우리말은 똑같은 의미라도 상황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상황에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말을 맛깔스럽게 사용하는 즐거움이 있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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