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되어가는 옛 친구들

2010.03.23 22:59:00

고교 동창 아들이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짐작하건데 친구의 아들은 서른 둘 셋은 됐을 것이다. 나보다 결혼을 몇 해 먼저 했으니 우리 아이들과 비교해보면 그렇게 짐작이 되는 것이다. 이 친구는 중학교 입학 때 전교 일등을 하고 그 후로 6년 동안 반장을 도맡아 해 친구들 사이에서 지명도가 높다. 나하고는 고2 때 서클을 만들어 같이 활동했으니 각별하다.

결혼식장은 영등포 공군회관이다. 친구가 공군 사병 출신이라 아들 결혼식을 공군회관에서 한 것인지, 아들이 공군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조금 일찍 출발했는데도 교통체증으로 허둥지둥 식장으로 들어갔다. 식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신랑신부가 주례 앞에 서 있고 사회자가 주례자를 소개하고 있었다.

"주례자 아무개는 공학박사이며 모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신랑 아버지와는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50년 지기이기도 합니다."

나는 양가 부모석을 살펴보았다. 단정하게 앉아 있는 친구 내외의 모습이 보였다. 가득찬 하객석에도 친구 몇몇이 자리하고 있었다. 식장엔 들어가지도 않고 바로 피로연장으로 가는 일반적인 경우와 비교하여 꽤 여러 명의 친구들이 식장에 남아 예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례자인 친구 김 박사는 고갯짓을 해가며 열심히 주례사를 하고 있었다. 아주 능숙하게 하는 것을 보니 많이 해본 솜씨다.

새삼 우리가 주례를 봐도 좋을 나이라는 걸 깨닫는다. 내 나이가 이제 몇인가. 벌써 지난해에 회갑을 넘겨 직장 상조회에서 축하금을 수령하지 않았던가. 하객으로 참석한 친구들을 보니 참 감회가 새롭다.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맡은 소임을 다 하다가 이제 한걸음 물러나 새로운 기로에 서있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엄숙한 삶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혹은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는 친구다. 모두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모에 똑같은 학교 배지를 붙이고 3년 혹은 6년을 함께 생활하던 친구들이다. 졸업을 하고 뿔뿔이 흩어져 각 분야에서 맡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바쁘게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온 친구들이다. 몇몇 친구는 병으로 혹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기도 하고 병석에서 투병 중이기도 하다.

선두주자였던 한 친구는 50대 중반에 알츠하이머병을 얻어 친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나와 함께 '꿀벌' 클럽의 한 멤버였던 그는 공대를 졸업하고 자동차 회사에 입사, 승승장구하여 계열사 사장급의 중책을 맡았다. 퇴직해서도 여전히 사업에 수완을 보여 대형 자동차 정비소를 경영하던 친구였다.

동창회보 회비납부란에 몇 차례 친구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어서 무슨 일이 있나 늘 궁금해 하다가 어느 날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알츠하이머병이 왔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10여 년 만에 그 친구를 보았다. 설마 나를 못 알아볼까 했는데 "아, 이럴 수가!" 알아보지 못했다. 큰 아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식장을 찾은 그 친구는 예전 모습 그대로 밝은 표정이었으나 친구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서로 안부를 물었다. 누구는 암으로 고생하다가 이제 거의 나았다고 했고 누구는 당료와 혈압으로 거의 시력을 잃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떻게들 살아왔을까. 나는 30년이 넘게 교직에 있었으니 어쩌면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인지 모른다. 명문대 법대를 나와 은행 지점장을 하다가 명퇴한 친구는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었다. 대기업 차장으로 명퇴한 친구는 지방법원 청사 보일러관리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직장이 바로 그 사람인가?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세상은 그런 시선으로 사람을 보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떤 친구는 동창회와 담을 쌓고 지내기도 한다. 친구들의 경조사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던 친구는 딸 결혼식에 문자메시지 한번 띄워주는 일조차 동창회장으로부터 거절당했다. 어떻게 40년이 넘도록 동창회비 한 번 내지 않고 동창들의 경조사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친구가 자기 딸 결혼식에 청첩장을 띄울 수 있겠는가. 그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나는 사회생활의 이치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우정도 가꾸어야 하고 신뢰는 하루 아침에 쌓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직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는 많지 않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퇴직했다. 고등학교 교사가 넷이었는데 하나는 명예퇴직을 했고 하나는 생년월일이 한 해 빨라 올 8월에 정년퇴직을 한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둘이 남는다. 우리는 내년 8월에 정년을 맞는다. 아직까지는 정년 후의 일을 골똘히 생각하지 않는다. 한 학기를 남겨 놓게 되는 내년 봄 학기부터는 상황이 달라지리라. 나는 심각하게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새삼 느낀 것이 있다. 해마다 친구들의 모습과 표정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녀들을 다 결혼시킨 친구, 자녀 혼사를 한 번이라도 치른 친구, 그리고 외손이건 친손이건 이미 할아버지 타이틀이 붙은 친구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까닭인 것 같다. 점점 낯빛도 행동도 중후해지는 느낌이다. 사위 앞에서 며느리 앞에서 점잖게 표정 관리하는 습성이 몸에 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왠지 그 중후한 표정이 오히려 낯설고 다소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냥 예전 10대 때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그동안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몸에 밴 모습들은 훌훌 털어내면 좋겠다. 그러나 내 욕심인지 모른다. 내 경우만 해도 30여 년 동안 교편을 잡아왔고 여러 권의 시집과 수필집을 출판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모든 것을 그냥 훌훌 털어내고 10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여전히 들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까지 직장을 붙들고 있던 대학교수 친구들도 퇴직을 하고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도 하나씩 손을 털고 나면 그때의 친구들 풍경은 또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핸드폰에 손자손녀 사진을 담아가지고 자랑하던 모습도 자취를 감추고 또 다른 삶의 경지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게 60대 중반을 넘기고 70을 맞이하고 다시 80을 향해 나아감에 따라 이제 인생은 사뭇 선경의 경지로 접어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아무리 좋다 한들 내 본래의 모습을 망각하고 평생을 가꾸어 온 나의 삶의 철학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의 인생이 친구들로부터 인정받고 이해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의 문학을 모른다면 친구들이 어찌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여 주겠는가. 가능하다면 작품집을 기증하고 동창회보에 글도 올려 친구들, 나아가 선후배가 나를 정당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친구들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친구들이 나를 바르게 이해할 때 우리의 노후는 한결 더 즐거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통이 아니겠는가. 40년이 넘도록 제 각각 다른 삶을 살아온 친구들인데 만나면 무조건 반갑고 소통이 원만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친구들의 살아온 삶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도 필요하다.

나는 동창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년 8월 정년을 맞이하면 달라질 것이다. 옛 친구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노후를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날 결혼식 피로연에서도 술 한 잔 못하고 인천 사는 친구와 인천으로 와서야 조용한 술집에 마주 앉았다. 비교적 자주 만나는 친구이지만 그의 얘기에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바라보게 된다. 회사 공무과장으로 있을 때 얘기며, 그린벨트 지역에 400여 평 땅을 사 놓은 얘기, 아들 때문에 속 썩었던 얘기, 어머니 돌아가시고 어머니 소유의 땅을 형이 나눌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속앓이까지 털어놓는 친구를 고등학교 적 친구의 모습으로만 기억하기란 어렵지 않은가.

그 친구가 한 말이 여운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결혼식에 찾아다니며 동창들을 만나는 애들은 괜찮은 거다. 자신의 처지 때문에 친구들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애들도 많다." 인생이 어찌 그렇게 순조롭기만 하겠는가. 여러 가지 말 못할 사정으로 친구 만나길 꺼려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친구 아들 결혼식에 다녀와서 모처럼 나는 나이를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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