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에 대하여

2010.07.26 09:48:00

열등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하게 낮추어 평가하는 생각'이라고 정의 되어 있다. 그렇다면 열등감은 반드시 남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고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늘 마음에 부담으로 갖게 되는 생각이다. 나는 사춘기 때부터 항상 열등감에 시달려왔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혼자 많은 애를 쓰기도 했다. 전혀 그것을 남 앞에 내비치거나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보다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이제 육십 줄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하니 '사람이란 늘 이런 결핍감을 안고 한 평생 살아가나보다'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열등감은 외모가 남보다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부터 어머니가 초등학교 학력도 없다는 것까지, 어머니를 외면하고 객지에 나가 이중살림을 하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에 이르기까지, 또 남들은 형이나 아우가 일류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에서도 늘 나의 처지를 되돌아보며 열등감을 느끼곤 했다.

장성해서도 그런 콤플렉스가 나를 떠나지 않았고 지금 노년에 접어드는 시점에도 그런 열등감이 여전히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우리 딸들이 남만큼 공부를 잘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거의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옛날이긴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6년 내내 반장을 했고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항상 상위권에 속했다.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으면 당연히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해서 아주 행복한 가정을 꾸릴 줄로만 기대했었다.

그러나 쌍둥이 딸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의 기대는 무너지고 그렇게 기대를 했던 딸들에게 실망을 하고부터 나는 그 고질병과도 같은 열등감을 다시 달고 다녔다. 학창시절의 친구들, 직장의 동료들 또 문인단체의 여러 선후배와 술을 한잔 나눌 때도 누구네 어떤 자식이 어느 학교에 들어갔다는 것은 관심사가 되곤 했다. 예사롭게 사귀어오던 사람이라도 그의 자녀가 일류대에 들어갔다고 하면 금방 그가 달리 보이는 것이 우리네 실상이니 내가 얼마나 속상하고 속으로 열등감을 느꼈겠는가.

다시 세월이 흘러 딸들이 일류대는 아니더라도 적성에 맞게 전공을 택해서 지금은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또 다른 복병은 곳곳에 숨어 있다. 요새는 내가 오랫동안 매진해온 문학에도 그런 감정을 종종 갖게 된다. 말하자면 좋은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지 못했다는 것, 혹은 평판 있는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는 것이 늘 한 구석 부담으로 작용하고 일종의 열등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참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자기 세상인 양 세상을 호령하고 사는 사람도 다 권좌에서 물러나면 옛날의 권세가 허망하기 그지없고 온 세상을 다 소유한 듯 떵떵거리며 한 시대를 주름잡던 재벌 총수도 유한한 목숨 앞에 굴복하고 빈손으로 떠나가지 않는가. 부와 권세와 온갖 명예를 다 가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욕망일 뿐 거기에 행복과 평화가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재산가 혹은 권세가에게도 겸양의 미덕, 늘 이웃과 더불어 살려고 하는 따뜻한 철학이 요구되는 것이다. 나는 종종 뉴스를 들으며 공상을 해보곤 한다.

로또 복권이 종종 몇몇 사람들에게 아주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한 순간에 안겨주기도 하는가보다. 나는 한 번도 복권을 사본 일이 없지만 그런 소식을 신문 가십 란에서 보기라도 하면 잠시 혼란스러워진다. 부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그 당사자가 겪어야 될 그 혼란이 금세 머리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 노동의 대가가 아닌 참으로 우연일 뿐인 큰 부의 획득이 과연 그를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 생각하면 금세 비관적인 생각이 온몸에 소름 돋듯 퍼지는 것이다. 갑자기 팽배해지는 욕망, 갑자기 소원해질 가족, 친척, 이웃과의 관계, 갑자기 따갑게 의식하게 될 세상의 시선, 실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그의 생활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 내게 그런 뜻밖의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잠시 달콤한 공상을 해보는 것이다.그리고 결론은 늘 한 가지. 단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몽땅 이웃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결론인 것이다. 잘못 생각하면 큰 불행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에 정말 신중을 요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한 번에 찾아온 행운은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니 심장병 어린이를 위해 모두 사용하든지 가난한 나라 어린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터주는 데 모두 기부하겠다는 결론이다.

나는 항상 열등감에 시달려왔지만 한 번도 열등감에 굴복한 적은 없다. 그 열등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항상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고 건전한 철학을 마음에 아로새기기도 했다. 늘 내가 부족하다는 인식 아래 신앙생활을 해왔고 글을 써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내 그릇의 크기를 깨닫기도 한다. 나의 한계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많다는 깨달음이다. 그리고 타고난 달란트에 대한 인식도 나이와 더불어 더 각별해졌다.

저마다 개성이 다르듯이 이 사회에 봉사하는 분야도 다르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도 다 다르다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된다. 그리고 교육은 그 능력을 신장시켜주고 그 개성을 소중하게 키우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것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내가 스스로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또 나를 매우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을 것이고 내가 부럽게 생각했던 그 사람들은 또 나름대로 또 다른 열등감에 시달리며 세상을 살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완벽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부족하기만 하다. 항상 겸양의 미덕을 잃지 말고 세상을 향해 항상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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