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만나는 아이들 세계

2010.10.11 16:37:00

수요자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방과후학교
필자는 우리 학교에서 방과후학교 글쓰기 교실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의 교육과정을 끝낸 다음, 주당 5시간 동안 1학년부터 사춘기의 정체성 지도가 필요한 6학년까지 2개의 인접 학년을 묶어서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담임 노릇보다 훨씬 힘들다. 또래 학년이 아니라 수준 차가 나는 두 개 학년을, 본인들의 요구보다는 반 강제에 가깝게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흥미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시골 학교 아이들 실정으로는 원하는 프로그램에 맞춰 강사를 구할 수도 없고 통학차 사정,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드물고 집에 일찍 가 봐야 돌봐줄 부모도 안 계시거나 일터에 계시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수요자 중심 교육 정신에 입각해서 학부모의 요구나 학생들의 요구에 맞춰서 프로그램을 개설할 여건이 부족하므로 현직 교사 중심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시골 학교라서 담임 업무에다 맡겨진 분장 사무까지 맡아야하므로 공문서 처리에 매달려야 하는 입장이다. 

글쓰기 지도의 보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지도를 하면서 얻는 보람도 쏠쏠하다. 각종 글쓰기 대회를 방과후학교 글쓰기 시간의 주제로 삼아 열심히 하다 보니, 글쓰기에 자신감을 가진 아이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이들의 톡톡 튀는 시어에 감동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아픔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창의성을 유도하는 글을 쓰게 하거나 학급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게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예를 들면, ‘우리 몸의 일부분을 다른 모양으로 바꾸어 글을 써 보자’라는 주제에서는 이상한 말이 튀어 나오는 입을 바꾸고 싶다는 아이, 거짓말 하는 마음을 바꾸고 싶다는 아이, 나쁜 말은 듣지 않고 좋은 말만 듣는 귀를 갖고 싶다는 아이, 나쁜 행동을 막아주는 손을 가져서 나쁜 행동을 하려고 하면 전기가 찌르르하게 오게 하면 좋겠다는 아이까지 있다.

같은 주제를 고학년에 적용시키면 보이는 모습(외모)에 집착하는데 반해, 저학년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더 소중히 해서 놀랍고 외모보다는 착한 심성을 중시한다는 점, 순진하고 단순하다는 점, 창의성을 유도하는 글쓰기에도 저학년 아이들이 신선한 생각을 더 잘 끌어내어서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그만큼 더 순수한 동심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마음은 세모꼴

인디언 상형 문자에 따르면 어린이 마음은 세모꼴,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라고 한다. 어린이가 죄를 짓고 마음이 아픈 이유는 죄를 짓는 만큼 세모꼴이 회전하면서 뾰족한 모서리로 마음을 긁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모서리가 점점 닳아 둥그렇게 변하고, 잘못해도 아픔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같은 학교에 살면서도 모르고 지낸 아이들의 아픔을 그들이 쏟아낸 글을 읽으며 가슴 저리고 안쓰러운 아이들의 상처에 놀란다. 한 부모 가정의 아이, 다문화가정의 아이, 조손가정에서 자라며 겪는 아픔과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는 아이, 학업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아이,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남들보다 더 많이 웃고 행동이 다혈질이 되어 과민 행동을 보이는 아이 등등.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난폭하고 함부로 말하는지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가만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생활환경이 좋은 아이도, 남들보다 어려운 환경의 아이도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 모두 자기만의 아픔 한 자락은 달고 있었다.

치유하는 글쓰기
자기의 상처와 아픔을 온전히 드러낼 때 글쓰기를 통해서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나아갈 수 있으며 예쁜 나비로도 변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을 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눈빛을 반짝이던 아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글을 쓰며 밝아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자기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보고 내 아픔과 힘듦이 무엇인지 솔직히 드러내 놓으며 햇볕에 널어서 말려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그 상처를 열어 글로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감추려 하지 않으며 자기 속의 또 다른 자기를 감동시키는 글을 쓸 때, 비로소 다른 사람도 감동시킬 수 있다고.

그래서 필자는 아이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쓰기, 즉 생활문을 많이 쓰도록 하고 있다. 감성이 풍부하고 티 없이 맑은 어린 시절에 마음의 밭을 다듬는 일,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어 치유하는 글쓰기 경험을 통해서 성장통을 줄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계절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인데도 아이들이 써 내는 글에는 행복이나 아름다운 낱말들이 드물었다. 예전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잘 먹고 환경도 나아졌건만 아이들의 가슴의 상처는 과거보다 더 심하다.

“소비는 늘었지만 가난해지고 기쁨은 줄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적어졌다. 약은 많지만 건강은 나빠졌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한 가치는 줄었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다. 달에 다녀왔지만 길 건너 이웃 만나기는 힘들어졌다”는 제프 딕슨의 단언은 우리 아이들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아 슬프다.

어린아이는 천국의 그림자
어린아이를 통해서만 이 지상에서 천국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고 했던 아미엘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결혼조차 포기하고 평생 동안 1만7천 쪽에 이르는 일기를 남겼다. 아이들 곁에 살면서도 천국의 그림자는커녕, 늘 꾸지람하고 실수 없기를 바라며 채근하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아이들의 글 속에서 부끄러운 어른의 자화상을 지우고 싶다.

글쓰기 지도 시간은 나도 어린아이 세계를 들여다보는 행복으로 나이를 거꾸로 먹게 된다. 아이들의 상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깊고 넒은 마음의 주머니까지 달고 그들 곁에 서 있고 싶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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