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강의, 사교육 강사 배제하라

2011.01.03 11:22:00

희망속에 맞이하는 신묘년 새아침이 밝았지만 고3 담임으로서 정시모집 전형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마음이 그린 가벼운 것도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던 수능시험으로 인해 점수 대폭락의 안타까움 속에서 치러졌던 이번 정시모집은 원서 마감 직전까지 치열한 눈치작전이 펼쳐질 정도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속에서 진행됐다.

가, 나, 다군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정시모집 전형의 시작과 함께 사운을 건 사교육업체의 수강생 모집 광고전도 시작됐다. 정시모집 지원을 아예 포기했거나 재수를 감수하고 상향지원을 한 학생들이 주요 고객이다. 규모가 큰 메이저 업체에서부터 지방 중소도시의 소규모 학원에 이르기까지 광고전은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쟁과 다름없다.

「EBS 강사진과 최고의 학원이 만났다.」 요즘 흔히 보는 일간지의 사교육업체 광고 카피다. 지방의 영세 학원들도 수강생을 모집하는 현수막이나 전단을 제작할 때는 EBS 강사 출신이 강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어떤 식으로든 EBS 강사를 보유하고 있어야 영업이 된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EBS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그래서 사교육의 폐해를 줄여 공교육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2004년부터 수능방송을 시작했다. 교육 당국은 EBS 강의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수능 반영률을 70%이상 끌어올리는 무리수까지 뒀다. 그런데 그런 EBS가 이젠 오히려 사교육의 가장 강력한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으니 주객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아이러니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EBS 강사는 대개 공모 형식을 통하여 선발된다. 문제는 공교육 교사이든, 사교육 강사이든 지원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교육 강사 가운데는 EBS를 지렛대로 삼아 자신의 명성을 쌓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EBS는 강좌마다 강사의 약력에 소속 기관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사교육 업체나 강사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홍보수단이 있을리 만무하다.

공신력이 생명인 수능시험에서 특정 강의와 교재의 내용을 70%이상 반영한다는 발상도 문제다. 학생들은 싫든 좋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EBS 강의를 듣고 교재를 사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학교 수업시간에도 교과서 대신 EBS 교재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온통 공교육을 EBS에 예속시켜놓고 정작 강의는 사교육 강사에게 맡긴다면 이는 사교육 시장을 키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과목별로 수십권씩 되는 EBS 교재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아이들에게 사교육 업체는 교재별로 핵심 내용만 요약해서 강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말하자만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열린 것이다. 게다가 EBS 강사가 진행하는 특강은 학생들이 줄을 잇는다고 하니 사교육 업체로서는 오히려 EBS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처럼 EBS 강의와 교재를 믿고 공부해도 성적이 떨어지면 학생들의 반발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EBS 강의와 교재만으로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자연스럽게 사교육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은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교육 당국을 비롯한 EBS 측은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특히 사교육 창궐의 빌미를 제공하는 EBS 강의만큼은 공교육 교사로 제한하는 조치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실 조금만 발품을 팔아도 수업 잘하는 교사들을 찾는 것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례로 시도교육청별로 진행되는 수업연구대회 입상 교사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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