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용의 시에 나타난 어머니와 바다 이미지

2011.08.18 10:09:00

이두용 시인은 공학도다. 공학을 전공하고 수십 년 째 공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계의 원리와 실기를 가르쳐온 중진교육자다. 이렇게 평범하게 교육자의 길을 걸어오던 이두용이 시를 접하고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10여 년 전이라고 했다.

어느 날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두용이었다. 몇 마디 인사가 오간 후 다짜고짜 잠시 후 들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이두용은 내게 시집을 한 권 건네고 갔다. 자신의 이름으로 상재한 첫 시집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예전에 10여 년이 넘게 같이 근무했었지만 이두용이 시를 쓴다는 기색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집을 들고 온 이두용이 오히려 낯설었다.그 후 이두용은 인천 문인협회에 가입하게 되었고 꾸준하게 시작에 전념하더니 얼마 전 두 번 째 시집을 준비한다며 발문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87편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원고를 받아놓고 난감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략해야 이두용 시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까? 시간은 하루 이틀 지나가는데 나는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망설이고 또 망설일 뿐이었다.

일단 작품을 읽기로 했다. 전 작품을 한 번 읽고 다시 두 번째 읽어가면서 이두용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대략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비로소 연필을 들어 작품을 소재별로 분류했다.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이 22편이었는데 특히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이 15편이나 되었다. 그리고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30편이었다. 그 중에서 바다를 노래한 시가 단연 많아 15편이었다. 그리고 삶의 애환이 서린 인고의 세월을 노래한 시가 10편에 달했다. 그리고 나머지 20여 편은 통일의 염원, 시인의 자화상, 사랑, 죽음, 인간의 원죄의식 등 다양한 주제의 시로 채워져 있었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아무리 사상이 위대하고 시적인 발상과 감수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언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훌륭한 시가 될 수 없다. 그래 시인은 바로 언어를 다루는 장인이라 하지 않는가.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을 적재적소에 활용함으로써 한 편의 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작품을 통하여 이두용의 시 세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어머니는 인류 보편적인 사랑과 헌신의 대명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를 칭송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예술작품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머니는 생명의 근원이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사랑의 키워드다. 이두용만의 특별한 소재도 주제도 아니다. 이런 보편적인 소재를 다룰 때는 까딱 잘못하면 개성의 향기를 잃고 시가 무미건조하고 보편적인 내용 일색으로 되어갈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만인의 공통 소재를 가지고 예술작품을 만들 때는 그래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고 나만의 특수 경험을 가미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과 모양을 부여해야 한다. 이 점에서 이두용 시는 성공하고 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데 이두용 식의 개성이 번뜩이는 시편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삶을 백마고지 전투에 비유한 ‘울 엄니 숟갈은 반 토막 숟갈’ 같은 시가 바로 그렇다.

백마고지를 가보았네
철원평야 395미터 고난의 고지
그 고지를 보니
울 엄니 생각이 났네

달구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과 포탄들
마사가 피를 토하는 그 산에
심장을 내놓고
울 엄니가 계셨네

자갈을 골라
삼태기에 담고 계셨네
반쯤 허리를 펴곤 이내
생사(生死)를 나르셨네
-이하 생략

위 시에서 우리는 전쟁터에서 전쟁을 하듯 묵정밭을 일궈 온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읽을 수 있다. 포탄이 비 오듯 하는 그 산에 심장을 내놓고 계신 어머니는 바로 희생과 사랑으로 목숨까지 내놓고 자식들을 길러낸 우리들 어머니의 숭고한 넋이 아닌가. 그 생사가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자갈을 골라 삼태기에 담고 계신 어머니에게서 치열한 삶을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의 강인한 모성애를 읽을 수 있다.

가난하던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 앉아 꽁보리밥을 비벼먹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꽁보리 비빔밥), 벚꽃이 필 무렵 생전에 벚꽃나들이를 다녀오셔서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벚꽃놀이) 어머니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 외갓집 가던 일이 있을 것이다. 시인은 한겨울 꽁꽁 언 시골길을 따라 어머니와 함께 외갓집 가던 길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어머니 등에 업힌 누이동생, 세찬 눈보라, 얼어붙은 방죽, 마치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가듯 외갓집을 찾아가던 모습이 시인의 언어로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이 시인의 관심의 대상은 어머니뿐이 아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읊은 시가 네 편이 있는가 하면 아들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노래한 시도 두 편이 보인다.

결혼한 지 30년
사랑한다는 말 해봤을까  
무던한 아내 투정 한 번 안하고
곁에 있어준 것 만해도 감지 덕분 하지
서양인들은 얼굴 비벼대고 입 맞추고
껴안고 사랑한다는 말
닭 모이 쪼듯 하건만
쑥스러운 말 멋쩍어
눈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전하고
이제까지 토닥거리지 않고 살아 왔는데
그냥 이대로 살아도 무심하다 할 것 같지는 않으나
그것은 단지 내 생각일 뿐        
언젠간 언젠가는
낮 뜨겁더라도 한 번쯤
그 말 한 마디 해야 될 것 같은데 
오늘도 출근하는 대문 앞에서
다녀오세요, 하는 아내의 거칠어진 손마디를 보니
혀가 돌같이 굳어져
그래,
멋대가리 없는 말 한마디.
- ‘그 말 한마디’ 전문-

이 시는 바로 아내에 대한 시인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는 시다. 서양인들은 밥 먹듯이 말하는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며 시인은 회한에 젖는다. 그리고 멋대가리 없는 자신을 깊이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식 사랑이다. 남들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듯 하는 것이 우리에겐 오히려 낯설고 어색한 것이다.

이 시인은 아들에 대한 사랑도 잊지 않는다. 수많은 소재 중에서 시인이 어떤 소재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그 대상은 시인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이 시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별을 따듯 어렵다는 취업에 성공했을 때의 기대와 든든한 생각을 두 편의 시에 담아놓았다.

아들이
첫 봉급 탔다고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한다
세상에 이런 날도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했던가
우리 가족 셋은
송도 모 음식점에 가서
회사 이야기와 세상 이야기 그리고
가족의 행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음식을 먹었다 먹다가
그놈 얼굴을 보니 마음이 울걱한다
자식도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라 했는가
이렇게 훌쩍 커서
제 밥벌이 하는 것을 보니
자기 세상을 찾아갈 때가 됐나
탯줄을 끊어 줘야 할 때가
창밖엔 나를 투영한 눈발이 하얗게
일고 돌아오는 길
2월의 밤은 짙은데
라일락 향기 가득하다.
-‘라일락 향기 가득한 날‘ 전문-

아들이 첫 봉급을 타던 날 시인의 가족은 송도의 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그윽한 눈길이 느껴지지 않는가.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그 아들을 길렀을 것인가. 아들을 키워 이제 독립시켜 놓으려 할 때쯤이면 부모는 늙는다. 그 아들이 태어났을 때 시인은 혈기왕성한 젊은 아빠였을 것이다. 그 아들을 뒷바라지하며 무수한 풍설 속을 지나 아들이 첫 월급을 타던 날 가족들이 함께 식당에 모여앉아 있다. 그 정경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다. 아들이 그만큼 크는 동안 아버지도 나이를 먹었다. 이제 예전처럼 젊은 아빠가 아니다. 정년이 임박한 환갑 불원한 부모가 되었다. 시적인 성취 이전에 이러한 가족풍경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 시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시인의 정신 풍경을 가장 잘 드러내 주고 있는 시어가 바로 ‘바다’다. 대부분의 시인은 자연에 관심을 갖는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자연으로 나아가라는 루소의 외침을 상기하지 않아도 시인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탐색하고 자연 속에서 예술의 소재를 찾게 마련이다. 자연만큼 진리에 가깝고 신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두용 시에 나타난 바다는 어떤 바다인지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얼마나 열심히 살았었는지
지금도 짭짜름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소래 갯고랑 갯물이 흐르는 이곳에
바둑판같은 염전 결정지역에
꽃 중에 꽃, 바다가 피워낸 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하얀 꽃, 소금꽃이 만발 하였을
것이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옹패 같은 사람들은
삼복을 등짝에 걸치고 옹패판을 피로 밀었으리라
그러다 염전에 어둠이 내리면 
늦태지역에 잠긴 눈썹달과 싸라기별, 바다의 슬픈
이야기와 갈대 울음에 한 숨이 또 꽃을 피우고
소금꽃 물로 밥을 짓던 이곳을
지나노라면 울 아버님 생각과
그 옛날 옹패 같은 머슴들은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지
지금도 짭짜름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옹패판 -항아리 등 옹기 깨진 것으로 만든 결정지역
*늦태지역-- 제2증발지 (염도 10~15)
- ‘옛 소래 염전’ 전문 -

위 시에서 우리는 이두용 시인의 바다는 어떤 바다인지 짐작케 하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소래염전을 지나며 아버지의 모습과 염전에서 일하던 머슴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소금꽃 물로 밥을 짓던 이곳을
지나노라면 울 아버님 생각과
그 옛날 옹패 같은 머슴들은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지
- 3연 -

그렇다면 시인의 아버지는 아마 바닷가 염전에서 염업을 하던 염부였을 것이다. 아마 시인의 유년기에 시인의 바다는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내면화되지 않았을까. 염전은 주로 서해바닷가에 있지 않은가. 시인의 고향이 서해안의 어디쯤으로 유추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어서 우리는 시인의 시에 나오는 많은 바다풍경이 염전과, 그리고 서해안 어촌과 관련 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한층 가까이 시인에게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다.

바다는 단번에 그 의미가 들어오지 않는 광대한 공간이다. 엊그제 고은 시인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지구(地球)라는 표현은 잘못 되었다며 수구(水球) 혹은 해구(海球)라고 해야 맞다며 바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망망대해를 포함하고 있는 바다 이미지 중에 이두용이 차용하고 자기를 투영하고 있는 바다는 어떤 바다인가? 그의 바다는 ‘나의 혼불 같이 태양이 솟구쳐 오르는 바다’(정동진에서)이고 ‘사랑이 애절하고/ 삶이 소금에 절인 듯하면/ 묵호바다에 나가/ 등대의 눈빛과 숨소리를 들어라 (등대의 숨소리를 들어라)와같이 동해바다의 등대를 노래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이시인의 바다는 갯벌과 갯고랑이 있고 갈대가 나부끼고 석양이 있고 간만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서해바다 쪽에 더 가깝다. 이런 바다에 대한 그의 사랑이 때로는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아들이 결혼하면
손자가
할아버지
게는 어떻게 걸어 다녀요 라고 물으면
푸른 집 개 같이 걸어 다니지 또
조개가 어떻게 생겼어요 하면
그 집 똥간같이 생겼단다
그리 말할 것 같다
 
오직 높고 길게 많이 그것이 최선의 삶이 아닌데
우리는 지금 최상 최고만을 고집한다
그것도 감히 대자연을 상대로
 
나는 어제도
소래 갯벌을 거닐면서
수 만개의 게집을 보았다
다소 조금의 차이는 있으나 어느 이상으로
크게 짓거나 높게 지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갯고랑도 활 휘듯
이리 저리 부드럽게 휘어 있었지
고속도로 마냥 곧게 난 갯고랑은 없었다
 
나 때는 높이고 막고 넓히고
손자 때는 낮추고 트고 좁히고 할 것은
아침에 해님 보는 일과 같은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를 보며’ 전문-

위 시는 새만금 방조제로 갯벌이 없어지면 생겨날 새로운 풍속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왜 자연 그대로의 갯벌과 바다를 인위적으로 막느냐는 분노며 비판이다. 그는 이 시에서 게와 조개를 모르는 손자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선문답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환경문제는 지구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다. 온갖 오염물질로 뒤덮여가는 지구를 생각하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땅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오염은 날로 심각하여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갖가지 묘안을 짜내어보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

핵무기의 위협은 항존하고 이번 일본의 사태처럼 원전의 위협 또한 상존한다. 갯벌을 메우는 작업이 먼 후손에게 과연 이익이 되는 일인지 면밀하게 검토하여 추진해야 하는데 목전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시인은 강한 어조로 질타하고 있다. 부당한 처사를 보고 분노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인으로써 직무유기다. 다른 어떤 시편보다도 이 시에서 그의 시정신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꼭 짚고 넘어가야할 작품이 있다. 바로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는 사물과 생명체를 노래한 시가 10편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묵묵히 그 삶을 견뎌 보람을 창출하는 모습들이다. 아래 시 ‘천리포 보리밭에서’는 긴 겨울을 견디고 이른 봄 밟히고 밟혀 몸이 으스러지도록 밟히고서도 살아남은 보리. 땡볕과 세찬 바람 속에서도 올곧은 자존심으로 삶을 지탱하여 마침내 들녘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보리의 미덕을 칭송하고 있다. ‘독파는 아주머니’ ‘겨울나무와 낙엽’ ‘워낭소리’ ‘수도국산 달동네’ 같은 시들이 이 부류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삼엄한 땡볕과
달래는 바람에도
고개만은 숙이지 않는
보리의 자존심
 
어느 곡식 중
긴 긴 겨울 서릿발 솟는 흑암에서
갖은 설움 받아가며
검은 세상 살아 보았는가 
 
이른 봄
고개를 내밀면
실하지 못하여 죽는다고
숨통이 막히도록 밟히던
 
잊었는가
보릿고개
어느 곡식이 보리를 탓하랴
들판에 펄럭이는 황금 깃발.
-‘천리포 보리밭에서’ 전문-

몇 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각 소재별로 이두용 시인의 시를 훑어봤다. 이 외에도 이두용의 시엔 사랑의 문제, 죽음의 문제, 인간의 원죄, 일상생활의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경향을 보이고 있다. 나는 옛날에 한 유명 시인의 시학강의를 들은 일이 있다. 한 편의 짤막한 시를 가지고 1시간 강의를 꽉 채우는 것을 보고 혀를 찬 일이 있다. 그만큼 시란 오묘하고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한 편의 시엔 그 시가 태어나기까지의 역사가 있고 복잡한 시론이 있고 시인의 사상과 철학이 있다. 그리고 시인만의 독특한 경험이 녹아있기도 하다. 내 짧은 안목으로 어찌 한 시인의 시를 '안다'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의미를 감추고 독자에게 얼른 모습을 드러내려하지 않는 시가 이 시집에도 여러 편이다. 때로는 시가 분명한 의미를 내보이지 않고 모호할 때도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일이 자연계에도 또 인간 세상에도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시가 그것을 따라서 모호하게 만들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적절한 표현을 찾아보아도 그렇게 표현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시인의 그런 고충을 때로는 이해해야 한다.

다 알다시피 우리의 천재시인 이상(李箱)은 건축기사가 아니던가. 그만큼 공학은 한국시와 밀접하다. 2009년도 한국 최고권위의 미당문학상은 김언 시인에게 돌아갔다. 김언 시인은 혜성같이 나타난 30대 중반의 젊은 시인이다. 그는 산업공학과 출신이다. 너무나 유명한 조병화 시인도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가 아니었나. 시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경찰관, 은행원, 군 장성, 변호사, 의사 등 모든 직업군을 막론하고 시를 쓰고 시인이 될 수 있다. 농부, 가정주부, 노점상, 10대 시인부터 90을 넘긴 노시인까지 남녀노소불문하고 시를 쓰고 시를 사랑한다. 천 명의 시인에겐 천 개의 시론이 있다는 말도 있다. 시는 어떤 주어진 틀이나 공식에 잘 꿰어 맞추면 되는 것이 아니다. 개성에 따라 자기의 방식대로 시론을 수립하고 전개하고 확산시킬 수도 있다. 시가 난해하면서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시적 성취의 길이 이렇게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두용 시인은 뒤늦게 문단에 나온 시인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시도 하루아침에 큰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꾸준하게 문장수업을 하고 자신의 언어를 확보하고 수많은 시적인 경험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해가며 이두용 시인이 시와 함께 풍요로운 삶을 가꾸어가길 바란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만개하고 라일락 향기가 날리는 가운데 어제 밤부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있다. 이 봄비에 저 꽃잎들 다 지고 말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저 꽃 지고나면 또 신록이 우거지고 다시 장미의 계절이 오고 아카시아향기 또 진동할 것이다. 우리의 4계절은 정말 아름답다. 계절마다 그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서점에 가 시집 한 권 사 읽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를 바란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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