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외눈박이 시각으로는 안 된다

2012.01.15 18:14:00


해와 달이 싸웠다.

“나뭇잎들은 초록색이야”하고 해가 말하니까, 달이 “아니야, 은색이야”하고 대받았다. 달이 “사람들은 일도 하지 않고 주로 잠만 자지”하고 말하니까 해가 “아니야, 사람들은 열심히 움직이며 일을 해”하고 말했다.
“그럼 왜 지구가 이렇게 종용하니?” 달이지지 않고 다시 해에게 말했다.
“넌, 누구한데 무슨 소릴 들었니? 지구는 늘 시끄럽기 짝이 없어.”
“아니야, 너야말로 누구한테 그런 소릴 들었니? 지구도 다른 별들처럼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어.”

정호승 시인의 인생동화<울지 말고 꽃을 보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 나오는 해와 달의 이야기는 모두 맞는 말이다. 해가 떠오르면 지구는 환한 대낮이 되면서 나뭇잎들은 싱그러운 초록의 기운을 마음껏 뽐낼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자신의 일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구는 새 노래에서부터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공사장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까지 온통 소음이 가득한 곳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저녁에 동산 너머로 솟아오른 달에게는 이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은백의 아름다운 지구가 동화처럼 펼쳐진다. 사람들은 하루의 바쁜 일상을 접고 꿈속에 빠져들게 되면서 세상은 온통 고요에 묻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해와 달은 자신들이 본 모습을 지구의 유일한 모습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왜곡된 시각과 일치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지난 연말 대구에 이어 광주와 대전의 학교폭력자살 사건과 관련,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월 12일에는 국회과학기술위원회를 열었지만 뾰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위의 동화에 나오는 해와 달의 대화처럼 겉돌고 말았다고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하나뿐인 귀중한 생명을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버린 그 행위의 이면에 담긴 메시지가 결코 적지 않음에도 사건 발생 23일이 지나서야 위원회가 열린 것도 문제지만, 뚜렷한 대책 하나 세우지 못한 사실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대책이라고 내 놓은 것이 고작 ‘상담교사 배치’와 ‘117 원스톱 구축’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학교폭력의 원인과 대책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선 급한 불 끄는데 물 한 바가지 더하는 것 정도에 그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학교폭력이 왜 급증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고, 학교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시스템상의 문제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학교폭력 대응시스템으로는 아무리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해도, 전문상담교사를 확대배치해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교실에서 무너져 내린 교사의 권위를 되살리지 않고서는 어떤 대안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그리고 학부모의 자기자녀 중심의 극단적 이기주의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 익숙해져 있는 이분법적 사고는 사건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는 바, 학교폭력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한쪽에서는 학생인권조례 등 학생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일을 그르치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한쪽에서는 학력중심의 경쟁 풍토가 학교폭력을 불러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화에 나오는 해와 달의 이야기처럼 모두 맞으면서 모두 틀린 이야기다.

이것은 외눈박이 시각으로 본 나름대로의 해석일 뿐 종합적인 대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를 교육적 행위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하는 공간으로 회복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생님이 학생의 비행에 대하여 눈감아 버리게 하는 구조를 우리는 깊이 있게 통찰해야 한다. 교사들이 학생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해야 하는 현실, 교사들에게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대드는 아이들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이다.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제안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교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 최근 교육개혁 운운하며 교사때리기에 급급한 교원정책이 교권을 크게 위축시켰다. 학생의 인권을 강조하듯 교사의 교육권도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무관용원칙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리 어린 학생이라도 책임을 지게 하는 교육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책임 뒤에 얻어지는 인권의 소중함을 적극적으로 체험하게 해야 한다.

셋째, 자녀에 대한 부모(보호자)의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 물론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모가 자녀의 교육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을 이해하지만,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수 없는 문제이다. 자녀와 함께 하는 교육적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부모의 역할 중 자녀교육 지원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인성교육이 배재된 교육은 사회를 파괴시키는 독약이 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성은 부모다움의 알파요 오메가임을 되새겨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사태나 문제를 종합적으로, 본질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학교폭력 또한 예외가 아니다. 왜 교육적으로 문제가 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나 파장을 고려한다면 어떤 이념이나 논리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의 본질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외눈박이의 고정된 시각은 전체를 아우르는데 제약이 된다는 사실에 유의하면서 보다 본질적이고, 심층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였으면 한다.
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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