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엔 詩가 없다

2012.11.19 10:25:00

학교에 시가 없다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정말 학교엔 시가 없다. 아니, 문학교과서에 실린 그 많은 시가, 시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언성을 높인대도 단연코 시가 없다. 시는 교과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시는 보충 수업 시간에 유령처럼 떠도는 괴상한 문자의 나열이 아니다. 시는 학교의 존립 콘텐츠에 학생들 가슴에 살아 있어야 시다. 당연히 있어야 하고 있을만한 장소에 시가 없는 것은 농촌에서 점점 제비가 사라지는 현상과 다를 바가 없다. 점점 서식 환경이 나빠지니까 제비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듯이 시가 살만한 환경이 되지 못하니까 시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원래 학교는 시의 온상이었지 불모지가 아니었다. 불모지는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살 수 없는 삭막한 땅이다. 울창하게 나무가 우거지고 새들이 집을 짓고 노래해야 할 장소에 새 한 마리, 나무 하나 없는 황무지로 바뀐 데는 분명히 그 까닭이 있다. 바로 세상의 그릇된 풍조가 학교교육에 흘러들어, 산사태를 맞아 황폐화된 농경지 처럼, 혹은 태풍을 맞아 쑥대밭이 된 인삼밭 처럼 된 것이다. 교과서엔 시가 있지만 학생들 가슴엔 시가 없다. 시를 읽는 선생님이 없고 시를 쓰는 학생이 없다. 연애편지에 시를 인용하지 않는다. 시에 재주가 있어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다. 누구 하나 그 재주를 끌어내어 격려하지 않는다.

옛날엔 연례행사로 실시되던 백일장도, 해마다 발간되던 교지도 사라졌다. 백일장이라야 어느 특정 기관이 실시하는 ‘학교폭력 근절 글쓰기 대회’, ‘통일 기원 교내 백일장’처럼 상투적이고 형식적인 글쓰기가 있을 뿐 학생들의 고운 심성을 마음껏 담아 낼 순수 백일장은 없다. 입시공부에 지쳐 스트레스가 푹푹 쌓였을 가슴 속의 답답함을 속 시원히 꺼내 놓고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필 그런 백일장은 사라졌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오랜 옛날에도 춘계, 추계 두 차례 교내 백일장이 있었고 거기서 입상한 학생들과 문예부 학생들이 서울의 각 대학에서 실시하는 전국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참석하곤 했다.

일 년에 한 번씩 어김없이 발간되는 교지는 학생들이 자기 글을 발표하는 유일한 매체가 되어, 글이 소개되었을 때 학생들은 대단한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스마트폰과 이메일과 수많은 인터넷 카페가 있는데 옛날식 백일장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할지 모른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모든 글이 다 똑같을 수는 없다. 인터넷 카페에 쓰는 글, 핸드폰으로 주고받는 문자가, 학교 백일장의 작품과 비교될 순 없다. 글을 쓰기 위해 몰두하는 시간에 미처 몰랐던 천재적 문재가 비로소 발현되기도 한다.

백일장에서 상장이라도 하나 받는다면 그 학생의 가슴엔 문학의 씨앗 하나 옥토에 떨어진 것과 다름없다. 장차 그는 시인이나 소설가로 진로를 정할 수도 있다. 대학입시 논술이 왜 그렇게 문제가 되는가. 평소 글쓰기를 가까이한 학생이라면 논술이 그렇게 난해한 것만은 아니다. 이미 글쓰기를 통해 논리적 사고능력을 배양했기 때문이다. 꼬박꼬박 교지를 발간하고 있는 학교가 요새는 거의 없다. 만약 교지를 발행한다면 지면을 대폭 학생들에게 할애해야 된다.

교장선생님 장황한 훈화 말씀을 교지 첫 머리에서 발견하는 순간 그 교지의 가치는 반감되고 학생들의 호기심은 떠나버린다. 어디 그뿐인가. 석사학위 논문 같은 최신 영어교육이론을 어디서 복사 해다가 선생님 이름으로 싣거나, 첨단 과학 이론을 짜깁기 해다가 수십 페이지씩 지면을 차지한다면 그런 교지는 곧장 쓰레기장으로 직행하고 만다. 선생님들의 글은 10% 내외로 줄이고 학생들의 창의적인 글을 대폭 실어야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전교생이 보는 교지에 내 글이 실렸다는 그 자부심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 된다. 시를 발표했다면 시인의 씨앗 하나 마음속에 심겨진 것이 되고, 수필이나 소설을 발표했다면 평생 사라지지 않을 수필가나 소설가의 씨앗 하나 그의 부드러운 심전에 뿌려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떤 학생은 논설을 쓰고 어떤 학생은 과학 관찰 일기를 소개하기도 할 것이다. 통일의 방안을 제시하거나 청소년들의 건전한 문화를 소개하는 글을 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그 필자로 하여금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귀중한 동력이 된다.

학생들의 글은 진지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쓴 글을 마구잡이로 싣는다면 교지의 품격은 떨어지고 가치 없는 인쇄물로 전락하고 만다. 시 속에는 진선미가 들어 있다. 직접 윤리도덕을 역설하면 금방 식상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시 한편을 읽으면 저절로 고운 심성이 마음에 자리하게 된다. 여러 번 문학작품을 접하다 보면 언어는 순화되고 사고는 깊어져 언행에 분별이 생기게 된다. 학교엔 이제 시가 없다. 대학입시를 향한 무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교육의 본질은 망각되고 비교육적인 경쟁만이 팽배하다.

학급과 학급의 경쟁, 학교와 학교의 경쟁, 교육청과 교육청의 경쟁이 각을 세우고 있다. 무엇을 위한 경쟁인지 학교도 모르고 학부모도 모르고 교육청도 모른다. 그냥 맹목의 경쟁일 뿐이다. 그렇게 경쟁을 시켜 얻게 되는 결과는 무엇인가. 교장의 체면, 교사의 승진, 교육청의 면책이 전부다. 학생의 미래를 볼모로 잡고 기성세대의 이권을 챙기는 꼴이다. 그렇게 청춘을 저당 잡혀 공부한 학생들이 장차 사회에 나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공부만 강조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만 추켜세우던 학교는 학생들이 졸업하자마자 학생들에 의해 토사구팽되고 만다. 아이들은 악몽 같은 고등학교를 폐기처분하고 비로소 세상의 보편적 질서에 편입하게 된다.

어느 대학에 몇 명 입학이 최종목표가 되는 기상천외한 교육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가고 있다.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는 교육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로 내몰릴 뿐이다. 소질과 능력을 찾아내고 앞날의 목표를 세울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꿈을 꾸어야 한다. 기성세대는 모든 직무를 유기한 채 학생들을 일사분란하게 한 방향으로 몰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 키워야 할 꿈도 대학으로 막무가내로 밀어내고 있다. 중고등학교의 공동화 현상은 심각하다. 꿈을 꾸어야 할 학창시절에 꿈을 빼앗긴 아이들은 어디서 빼앗긴 꿈을 보상받는단 말인가.

대학에서 할 일은 따로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사랑과 우정과 행복을 대학을 위해 모두 희생해야 한단 말인가. 중고등학교 때 간직했던 꿈이 평생을 좌우한다. 대학은 꿈꾸는 곳이 아니다. 꿈의 실현을 위해 방향을 잡고 매진하는 곳이다. 중고등학교는 대학입시를 명분으로 더 이상 직무를 유기하지 말아야 한다. 대학을 구실로 학생들의 꿈을 짓밟고 있다. 소질을 찾아내고 길을 찾도록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빼앗은 꿈을 온전히 다시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노숙하는 아이들

한 때는 콩나물 시루였었지
지금은 열실이야, 터질 지경이야
육군 훈련소 가스실 통과하듯 아이들 열실을 통과하네
눈물콧물 쏟아내며 아우성치며 내달리지
스트레스가 나이테처럼 감기지 세상을 비정의
정글로 만들지, 대낮에 떠도는 잠들을 보았는가
찜질방 속에서 아이들 낮잠을 자네
부모가 낀 강도에게 쫓기다 그냥 자는 것이네
학문이 존중되지만,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말지
학자도 맹신에게 맥을 못 추지
열실효과 퇴치를 놓고 논쟁을 벌이지
지지하는 세력이 되어야 하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반대에 가담하네, 교사들
열실에서 기른다고 대추나무 밤나무 되겠는가
장미꽃이 배추포기로 자라겠는가
얼룩말은 얼룩말로 하이에나는 하이에나로
길러야지, 세상이 광신도처럼 울부짖네
광풍으로 옷을 벗기려 하지
하이에나를 얼룩말로 키우려 하지
폭력 세력의 우두머리는 어른들의 맹목
매번 이성에게 혼쭐나도 정책부재는 근절되지 않는다
진리는 지지하는데 타성은 끊임없이
반기를 들지, 누가 자연을 이기고 진리를 거역할 수 있나
누가 상식을 역행하고 보편을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욕심은 매번 진리에 끌려가면서도 그 버릇 놓지 못하네
어서 지지하는 세력이 집권하여
대낮에 떠도는 잠들을 밤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책상 위에 노숙하는 잠들에게 집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필자의 졸시 전문>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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