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 봉명산(鳳鳴山)에 있는 다솔사에 다녀왔습니다. 다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입니다.
출발할 때부터 다솔과는 별 연관이 없을 듯한 수미산 꼭대기 선인들이 기거한다는 도솔천을 떠올렸습니다. 도솔천의 천녀들은 감로수를 먹고 살기 때문에 4천살까지 사는데,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사의 400년에 해당한다지요? 그렇게 백년을 살러 우리는 다솔사로 떠났습니다.
순천에서 사천으로 길은 여유롭고 한적했습니다. 절의 입구에도 한 두명의 등산객이 보일뿐 적막하고 쓸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날씨는 이성을 깨우는 싸늘하고 투명한 겨울날씨, 그 파란 하늘이 가을하늘의 공명보다 더 높고 푸르렀습니다.
차를 세우니 절로 들어가는 입구의 수려한 소나무들이 사열하듯 늘어서 솔바람 소리로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다솔(많을다 거느릴솔)의 뜻을 되짚으며 들어선 경내는 놀랍게도 한겨울 속에 깊이 숨어 있는 경이로운 가을숲 이었습니다. 아직도 붉고 노란 단풍나무들이 환하게 가득 서 있었으며 그 곳으로 햇살이 스며들어와 따뜻하고 평화롭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잠시 시간을 멈춘 듯 고요하고 적막함이 세상과의 인연을 끊은 듯한 별천지였습니다. 몇 해전 미국에서 보았던 ‘한겨울 속의 여름’이라는‘인디언 섬머’처럼 계절의 한가운데서 다른 계절을 맞이 한다는 것은 놀라움과 찬탄이었습니다.
법당에서는 갓 이틀 전부터 100일 기도에 들어갔다는 노스님의 불경소리가 낭랑하고, 이것도 인연이라는 듯 풍경소리에 때맞춰 아기단풍잎 하나가 제 어깨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숲길로 들어서자 발 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빨갛고 노란 아기 단풍들! 하늘에서 밤새 쏟아져 내린 별처럼 소복하고 예뻤습니다.
이 절은 일제 때 한용운 선생이 머물러 수도하던 곳이며,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등신불 等身佛』을 쓴 곳이기도 하답니다. 이 밖에도 절 주위에서 재배되는 죽로차(竹露茶)는 반야로(般若露)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유명한 절이기도 합니다. 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의 사찰이기도 합니다.
절 한쪽 마당에 작은 포장을 치고 그만그만한 할머니 세분이, 커피도 팔고 쑥떡도 팔고 이것저것 산나물도 팔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행 중에 기념품이나 허튼 물건을 잘 사지 않는 성격인데 손님을 끄는 할머니들이 말이 하도 예뻐서 쑥떡과 커피를 사 마시고 더덕과 도라지도 샀습니다. 세 할머니에게 골고루 사드리려고 깎아 말린 밤도 샀습니다.
절을 내려올 때는 올라간 길과 다른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가 다솔사에서 백년을 살았는지 한세월이 흐른 듯 내려오는 길에는 잠시 전의 일도 까마득하였습니다. 우리의 상상 속에서 도솔가의 도솔천은 아름다웠고, 다솔사를 뒤에 두고 도솔가를 외우며 우리는 다시 속세로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용루에서 오늘 산화가를 불러
청운에 한 떨기 꽃 뿌려 보냈네
은근히 굳은 마음에서 우러나
멀리 도솔천의 큰 선가(仙家)를 맞았네
다솔사를 다녀와서. 2012.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