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와 함께 부산 갈맷길 트레킹

2013.12.02 15:54:00

‘누가 더 빠른지’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세상에 천천히 여유를 누리며 걷는 산책길이 이렇게 각광 받을 줄이야. 집으로 들어가는 길, 즉 큰 길에서 집까지 양 옆으로 현무암이 쌓여있는 골목을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 올레가 붐을 조성해 각 지자체에서 만든 걷기길이 전국에 넘쳐난다.

겨울철에도 비교적 따뜻한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에도 걷기길이 참 많다. 그런데 걷기길을 사방으로 연결하며 겹친 구간은 이름이 많아 혼란스럽다. 지난달 23일, 청주의 815투어 산악회원들과 다녀온 송정해수욕장에서 대변항까지의 10여km 해안길도 그렇다.

이곳은 부산의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출발점으로 하여 출입신고서를 작성한 후 이용할 수 있는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70km 해파랑길의 부산구간 4코스 중 2코스이고, 기장군청에서 문텐로드에 이르는 부산 갈맷길의 1코스 2구간이며, 기장역에서 구덕포에 이르는 대변해안길에도 속한다.


미포, 청사포, 구덕포가 해운대의 삼포다. 동백섬에서 해운대와 미포를 거쳐 청사포에 이르는 문텐로드는 몇 번 다녀간 곳이라 이번에는 한적한 어촌마을 구덕포에서 대변항까지 해안 길을 트레킹하기로 했다. 철길 굴다리를 통과하면 왼쪽으로는 송정해수욕장, 오른쪽으로는 구덕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계획대로 가까운 거리의 구덕포로 가서 수령300여년의 용비늘 와송나무를 보고 싶지만 다수가 송정해수욕장에서 시작하길 원한다.

금연 홍보 조형물이 맞이하는 송정해수욕장은 백사장이 넓고 수심이 얕으며 경사가 완만하여 가족단위의 피서지로 적합하다. 해변의 끄트머리에 대숲이 울창한 죽도공원이 있고, 이곳 바닷가 바위 위의 팔각정자 송일정에서 바라보면 구덕포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이 아름답다. 송정해수욕장은 해운대나 광안리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아있어 정이 간다. 해안을 따라 자연산 회를 취급하는 횟집들이 많다.

동해와 남해의 경계지점이 어디일까? 행정기관도 목적과 편의에 따라 제각각이라 논란이 되고 있다. 남구는 오륙도 앞바다, 해운대구는 달맞이고개 앞바다가 경계지점이라고 주장한다. 이곳 송도해수욕장이라는 주장도 있다.




송정해변입구 사거리를 지나 기장해안로를 걷다가 시랑리 공수마을의 해안으로 들어선다. 공수란 마을명은 이 마을에 있던 공수전에서 유래되었는데 고려시대에는 관청의 영선비와 관리들의 숙박비나 접대비 등을 충당하는 밭(공수전)이 있었다. 이곳의 푸른 바다와 해안절경이 도시민의 휴양지로 각광받으며 바닷가에서 양쪽으로 그물을 끌어당겨 물고기를 잡는 전통어법 후릿그물 체험마을로 유명하다.

공수마을을 지나면 공사장 앞에서 길이 막히는데 바닷가의 억새길을 지나면 시랑산 건너편의 해동용궁사까지 해안로가 연결된다. 방금 지나온 공수마을 방향의 멋진 풍경이 바라보이는 바닷가로 내려서면 평평한 암반들이 쉼터를 제공한다. 낡은 철조망 등 군 시설물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치 좋은 곳에서 해동용궁사의 돌탑과 동암마을이 가깝게 보인다.


공수마을부터 기장 제일의 명승지로 시랑리, 시랑산 등 시랑이라는 명칭을 만들었다는 시랑대의 모습이 궁금했지만 지도에 표시된 곳이 다르고, 안내판이 부족해 뚜렷하게 이것이라고 단정지을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해동용궁사의 뒤편에서 시랑대를 알리는 작은 안내판을 만난다. 담장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평평한 암반위에 돌탑들이 서있고 아래편으로 해동용궁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안내판의 내용대로라면 이곳이 본래는 원앙대로 불렸고 시랑대(侍郞臺)라는 글자가 바위에 새겨있다는 시랑대다. 하지만 글자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고 주변에도 멋진 암반들이 많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사찰 해동용궁사는 고려시대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 혜근이 창건한 보문사로 1976년 부임해 백일기도를 하던 정암 스님이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꿈을 꾼 후 해동용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찰 입구부터 십이지신상이 늘어선 숲길, 교통안전기원탑과 모자상, 황금색 일주문과 관음성전 표석, 코와 배를 만지면 득남한다는 득남불과 108장수계단, 불이문과 소원성취 연못을 차례로 만난다.

만복문에 들어서면 황금돼지와 신비한약수터, 대웅보전, 용궁단과 포대화상 등이 맞이한다. 사찰을 둘러보고 다시 108장수계단의 해가 제일 먼저 뜨는 절을 알리는 일출(日出) 표석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바닷가에 있는 지장보살을 만난다.


해동용궁사 옆 바닷가에 우리나라의 유일한 해양수산연구 국립기관 국립수산과학원이 있다. 해안로에 출입구가 있어 내부를 둘러보거나 쉬어갈 수 있다. 수산과학원을 지나면 바로 동암마을이다.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마을풍경과 작고 아담한 포구가 매력적이다. 똑같은 모습이더라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물고기들이 줄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야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할아버지 한 분이 방파제 옆에서 고추를 말리는 모습은 왠지 낯설다.

오랑대는 일출 명소로 사진작가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오랑대라는 명칭은 기장에 유배 온 친구를 만나러 왔던 다섯 명의 친구들이 바다 풍광에 반해 술을 마시고 즐겼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 인근의 해광사에서 지은 용왕단이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오랑대에서 서암마을과 대변항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온다. 직접 걸어보면 꽤 시간이 걸리는 이곳의 앞바다에 흔히 마주치는 일반적인 등대와 모습이 다르고 개성이 넘치는 등대들을 만난다.

기장해안로에서 연화리 방향 해안으로 들어서면 등대길이 시작된다. 연화리를 1구는 서암, 2구는 신암으로 구분하는데 서암마을에서 바다방향을 바라보면 4개의 등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의 오른쪽과 왼쪽에 흰색의 젖병등대와 빨간색의 차전놀이등대, 멀리 대변항의 출입문인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등대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는 월드컵등대까지 바다위에 등대박물관을 만들었다.

젖병등대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다. 부산은 전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도시였다. 방파제를 따라가면 젖병등대를 축소한 사랑의 편지함이 있다. '젖병등대, 부산의 미래를 밝히다.' 젖병등대의 동판에 있는 문구처럼 부산의 미래를 밝힐 144명 영유아의 손과 발을 하나하나 양각한 타일이 이색적이다. 뱃머리를 닮은 차전놀이등대는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닭의 벼슬처럼 보여 닭벼슬등대로도 불리는데 나무계단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가면 사랑의 징표인 자물쇠가 난간에 걸려있다. 육지 사람에게는 바닷물로 배추를 절이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연화리와 대변리는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이웃이다. 연화리 2구 신암선박출입항신고소 앞에 있는 섬이 대변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죽도다. 올해 완공된 너비 2미터, 길이 65미터의 보도교가 대변항과 죽도를 연결한다. 다리위에서 바라보면 대변항과 뒤편의 봉대산이 멋진 풍경을 만든다.

옛 이름이 용암인 대변항은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곳 중 하나로 천혜의 조건을 가진 어항이다. 또한 영화 친구에서 주인공들이 학창시절을 보낸 배경지로 유명하다.


대변항은 해마다 5월초에 멸치축제를 여는 항구다. 미역도 이곳 기장의 자랑거리다. 해안을 따라 멸치회와 장어구이를 파는 횟집들이 즐비하다. 인심 좋은 횟집에서 2만원짜리 멸치회를 시켜놓고 아내와 두런두런 인생살이를 얘기한다. 가족과 함께 건너편에 자리잡은 일행이 소주병을 들고 와 술을 한 잔 따라준다. 이래서 삶은 늘 감동적이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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