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얻는 해인사 소리길

2013.12.16 10:44:00

간난 아기 때는 듣는 일이 먼저다.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부모님의 목소리 등 여러 가지 사물을 하나, 둘 구분한다. 그런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오랜시간 듣는 것보다 말을 앞세운다.

입을 닫고 귀를 열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소리길이 해인사가 위치한 합천에 있다. 2011년 개장한 소리길은 대장경축전장에서 해인사까지 6.3㎞에 이르는 일명 '해인사 가는 길'로 알려져 있다. 해인사 소리길은 자연생태계가 온전히 보전된 계곡 길을 걸으며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 우주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경사가 완만하고 노면이 평탄하여 탐방객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자연에 접근할 수 있는 산길과 무릉도원으로 들어간다는 무릉교, 신라시대 문장가 최치원 선생이 노닐던 농산정, 가을이면 붉은 단풍으로 인해 흐르는 물이 붉게 보인다는 홍류동계곡, 계곡을 넘나드는 8개의 다리가 어우러진다.

올해 가을 남산제일봉 산행 후 시간에 쫓겨 그냥 지나쳤던 해인사 소리길을 지난 12월 7일 지인 부부와 함께 다녀왔다.


가야산(1430m)은 경남의 합천군과 거창군, 경북의 성주군에 걸쳐있다. 소리길을 성주 방향에서 가면 가야산 줄기의 암릉들을 바라보며 달린다. 경상북도 표석이 서있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과 경남 합천군 가야면 경계선상의 솔티재는 조망이 좋은 쉼터다.


해인사 소리길은 대장경기록문화테마파크와 대장경천년관이 있는 축전의 야천삼거리 아래편 각사교에서 시작된다. 소리길은 대장경테마파크, 무릉교, 칠성대, 생태연못, 해인사 일주문, 홍류동계곡, 농산정, 길상암, 낙화암, 해인사 주차장으로 연결되는데 해인사소리길 표석과 소리길을 알리는 일주문이 초입을 알리고 북서쪽 방향의 가야천을 따라가며 농촌의 들녘 풍경이 소리길오토캠핑장까지 이어진다.


황산2구 경노당과 주민들이 음식을 파는 가게들을 지나면 소리길탐방지원센터를 만난다. 이곳에서 가까운 계곡에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뜻하는 무릉교가 있다. 상징적인 의미인지 다리를 찾아볼 수 없다. 계곡을 따라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산길이 다리 아래편 칠성대까지 이어진다. 일곱 개의 별이 떨어졌다는 칠성대는 북두칠성을 예향하던 곳이다.


칠성대를 지나 산길을 걷다보면 바닥에 박힌 검은 돌들이 눈에 띈다. 자세히 보면 깨알같이 작은 글씨에 메시지들이 담겨있다. 시간을 넘나드는 팔만대장경과 같이 돌에 적힌 글자들을 조합하면 '당신이 떨치지 못하는 한 고통은 여기 남아 있다, 나의 내면을 듣는다'와 같이 깨달음에 관한 글들이다. 발에 밟히는 돌들이 지난 기억을 되짚으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걷다가 힘들 땐 기도하며 쉼터가 되어주기도 하는 그런 부처님을 바위에 새겼다는 조형물 '바위에 갇힌 부처를 보다'와 물고기 모양의 징검다리를 설치해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하는 '생태연못'을 지난다.


산길을 걷다가 동화 파랑새를 통해 마음의 안식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진정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일상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조형물 '둘러 가다'를 만난다. 나 자신이 제일 중요하고 지금 소리길을 같이 걷고 있는 사람들이 제일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해인사 일주문까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길을 걸으며 여러 개의 다리를 건넌다.

잠깐 계곡을 벗어나 아스팔트길을 걷는다. 입장료 3000원을 내고 '법보종찰가야산해인사'가 크게 써있는 해인사의 일주문에 들어서면 바로 수석과 산림이 가장 아름다운 홍류동계곡이 시작된다. 무지개형 다리를 건너면 농산정(籠山亭)을 만난다. 농산정(경남문화재자료 제172호)은 신라 말의 학자이며 문장가로 이곳에서 은거생활을 했던 최치원이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선인이 내려와 피리를 불던 바위 취적봉과 풍월을 읇는 여울 음풍뢰, 선경의 풍경이 빛나는 여울 광풍뢰, 옥을 뿜듯이 쏟아지는 폭포 분옥포는 나뭇가지가 가려 형태만 희미하게 보인다. 밤에 달빛이 잠겨있다는 연못 제월담은 맑은 물이 가득하고 가끔 가야산 줄기도 나타난다. 왼편으로 갈지자(之) 나무계단을 따라 200여m 올라가면 계곡에 자리한 길상암을 만난다.




하심(下心)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이다. 길상암 건너편 물가에서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하는 하마비와 같이 누구나 머리를 숙이게 만드는 나뭇가지를 만난다. 지나고 나면 다 비슷해지는 게 인생살이다. 길을 걸으며 조금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꽃이 떨어지는 낙화암, 암석이 쌓여있는 첩석대, 선인이 모여 노는 회선대를 지나 가야산휴게실이 있는 해인사 입구까지 가면 소리길이 끝난다. 이 구간에서 굽이 굽이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깎아지른 절벽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경치를 만든 낙화암이 멋지다.


봉고차에 올라 해인사관광호텔 아래편에 있는 산장별장여관·식당(055-932-7245)으로 갔다. 음식 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원하는 곳까지 봉고차를 이용할 수 있어 자가용으로 와서 소리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편리하다. 배가 고픈 시간이었지만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밥과 반찬이 맛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경북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에 있는 회연서원(檜淵書院)을 둘러봤다. 누각 견도루(見道樓)와 수령 400여 년의 느티나무 보호수가 맞이하는 회연서원(경북유형문화재 제51호)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영남 5현 가운데 1명인 정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뒤편의 물가에 봉황이 하늘로 날아가는 형상의 봉비암이 있다. 봉비암은 무흘구곡의 제1곡으로 깎아지른 바위절벽과 양정소의 맑은 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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