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부터 이틀간 아내와 전라남도 신안군의 증도를 오가며 주변을 돌아보는 여행을 다녀왔다. 증도는 우리나라에서 국제슬로시티인증을 받은 11곳 중 하나로 주변이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역이고, 단일염전으로는 국내 최대인 태평염전이 있으며, 침몰한 선체를 비롯해 도자기와 동전 등 14세기 중국 원나라 시대의 고대 유물이 많이 발견된 곳이다.
전남의 남서쪽 해안은 청주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장거리 여행은 피로를 이겨낼 만큼의 체력도 필요하다. 1년 전 구입한 애마 QM5가 경부, 호남, 서해안, 무안광주고속도로를 갈아타며 3시간 30여분 부지런히 달린다.
차창 밖으로 서해안의 질퍽한 갯벌이 보이고 처음 도착한 곳이 전남 무안군 망운면 송현리에 있는 조금나루해변이다. 조금나루해수욕장은 마을 끝에 툭 불거져 나온 백사장이 4㎞나 되고 곰솔 숲이 울창한 천혜의 해수욕장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황홀한 낙조와 기절낙지가 별미다. 아내와 둘째 아이가 같이 했던 전남 백경 여행 중 이곳에서 맛있게 먹은 세발낙지가 생각나 들렸으나 비수기라 횟집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세발낙지에서 세발의 '세'는 숫자 3이 아니라 '가늘다'는 뜻의 한자어로 소주와 함께 가늘고 긴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감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차를 몰아 조금나루에서 바라보이는 무안군 현경면 오류리의 홀통해변으로 갔다. 울창한 해송과 긴 백사장이 장관인 홀통해수욕장은 수심이 낮고 파도가 잔잔하여 해수욕, 야영, 바다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름 피서지로 윈드서핑 대회 개최 등 해양스포츠의 최적지다. 겨울철의 해수욕장은 사람이 없어 왠지 쓸쓸하다. 남북이 휴전선으로 나뉘듯 찬바람이 불어오는 송림과 햇볕이 따뜻한 백사장이 눈길을 경계로 대립하고 있는 풍경도 이색적이다.
홀통해변을 나와 24번, 77번 국도를 달리며 일출과 일몰을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는 도리포로 향한다. 어느 지역이든 길가의 풍경에 특색이 있다. 이곳에서는 밭에 가득 심어져있는 양배추와 멋진 모습을 자랑하는 팽나무가 자주 보인다.
도리포로 가는 길에 수암교차로에서 가까운 무안생태갯벌센터(http://getbol.muan.go.kr)에 들린다. 동쪽 바닷가에 위치한 생태갯벌센터는 습지환경과 갯벌의 중요성을 배우는 국내 최대의 자연생태학습장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규모의 내부 전시관과 외부에 갯벌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전시관 내부는 갯벌과 갯벌 생물의 다양한 특징을 학습할 수 있도록 3D입체 영상으로 갯벌생물들을 만나는 다목적 영상관을 비롯하여 갯벌생태관과 갯벌탐사관을 갖췄다.
전시관 밖으로는 넓은 갯벌생태공원이 펼쳐져있다. 갯벌생태공원은 생태공원, 생태체험장, 야외학습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최고의 자연생태학습장이다. 나무데크를 따라 걸으면 갯벌이 넓게 펼쳐진 바닷가 풍경과 바다헌장비 조형물 등을 만난다.
무안생태갯벌센터에서 바닷가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고개를 내밀고 함평만을 바라보고 있는 전남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의 도리포에 도착한다. 북동쪽으로 길게 나온 지형이라 동쪽 바다의 일출과 포구 반대편 칠산바다 방향의 일몰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매년 1월 1일이면 대규모 일출 행사가 개최되는 곳이다.
시멘트로 만든 2층 정자가 맞이하는데 길의 끝에 있는 갯바위가 희망봉(환선바위)이고 희망봉 위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먼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여인상 옆에 행운을 비는 나무(무안군 보호수)가 있다.
희망봉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건너편의 함평항이 가깝게 보인다. 함평항과 도리포가 연결될 날도 멀지 않다. 영광군 염산면 옥슬리 향화도와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도리포를 연결할 영광대교 공사가 진행 중이다. 희망봉 앞 방파제 끝에 낙지조형물도 있다.
자그마한 포구에 횟집이 늘어선 도리포는 영광군과 함평군을 경계로 하는 칠산바다와 인접해 바다낚시를 즐기고 숭어회가 맛있는 곳으로 소문이 났다. 도리포는 중국과 가까웠던 포구로 인근바다에서 고려시대의 상감청자 639점이 인양되어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도리포에서 증도까지는 해제면과 지도읍, 솔섬과 지도대교, 사옥도와 증도대교를 지난다. ‘천사섬 신안’을 알리는 표지판, 다리 밑의 한가로운 바다풍경,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 100선 2위 증도’ 표지판, 붉은색의 증도대교가 인상적이다.
증도의 낙조를 보기 위해 증도면사무소를 지나 서쪽 끝으로 간다. 이곳에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 낙조전망대, 보물섬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앞 바다에 소단도, 대단도, 내갈도, 외갈도 등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나무데크로 연결된 소단도에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관이 있다. 주변의 풍경을 돌아보고 한참동안 증도 바다의 멋진 낙조를 구경했다. 인생의 끄트머리가 저렇게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해가 넘어가자 사방이 어둠으로 물든다. 여행지에서는 먹거리와 잠자리 잘 찾아다니는 것도 중요하다. 보물섬로 바닷가에 있는 갯풍황토펜션(061-271-0248)으로 갔다. 펜션에서 민어·장어 정식과 짱뚱어탕을 전문으로 하는 갯풍식당(010-3602-3544)을 운영하고 있어 먹거리와 잠자리를 한 곳에서 해결하는 것도 장점이다.
세상은 참 좁다. 얘기를 나눠보니 여주인의 여동생이 청주시 복대동에 살고 있다. 정직한 맛과 정성으로 모시는 주인 내외의 인심이 후하고 식당 바로 앞에 바다 쪽을 제방으로 막은 타원형 저수지 '증서지'가 있어 경치도 좋다. 싱싱한 숭어회와 곁두리 반찬이 맛깔스럽고 방안의 편백나무와 황토가 잠자리를 편안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