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논술의 선구자 권영부 교사

2013.06.01 09:00:00

교과 간의 경계를 허무는 통합적 교육방식인 융합교육이 최근 교육계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앞서 서울 동북고등학교는 지난 2005년부터 사회, 경제, 과학, 윤리, 역사 등 각기 다른 교과의 교사들이 한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진행하는 릴레이 팀 티칭을 도입, 통합논술의 토대를 마련했다. 동북고의 통합논술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데는 권영부 교사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창의력 키우는 릴레이 팀 티칭

동북고등학교 방과후 프로그램 중 하나인 통합논술 시간에는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학생들로 언제나 진풍경이 펼쳐진다. 자리를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교탁까지 내주어야 할 정도. 권영부 교사가 중심이 되어 이끄는 통합논술 수업은 지난 몇 년 동안 수차례 언론에 소개되며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1999년도에 동료 교사들과 함께 ‘동북독서토론모임’을 만들었어요. 교사들끼리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칠 것인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모임이에요. 같은 책을 읽어도 교사들마다 느낀 점이 다 다르다 보니 늘 열띤 토론이 벌어지곤 했어요.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걸 수업으로 만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죠.”
권 교사는 한 교실에 여러 명의 교사가 들어가 150분 동안 수업하는 릴레이 팀 티칭을 고안, 2005년 실행에 옮겼다. 하나의 주제를 사회, 경제, 과학, 윤리, 역사 등 다양한 교과의 시각으로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적게는 2명, 많게는 7명의 교사가 수업에 참여했다. 가령 과학교사가 촉매라는 개념을 설명하면, 윤리교사가 이를 인문학에 접목시키고, 바통을 이어받은 사회교사는 경제 논리에 적용해 설명하는 식이다. 개별 교과 지식을 다른 교과에 연결시키는 이른바 영역 전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단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게 권 교사의 생각이다.
“기존의 교육 방법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인재 육성에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지식을 창의적으로 응용하고 사고력을 키우는 수업을 해야만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작은 좋지 않았다. 2005년 1학기에 1학년 방과후 수업으로 통합논술반을 개설, 희망자를 모집한 결과 7명의 학생만이 수업을 신청한 것. 결국 2학년 5명을 추가 모집해 총 12명의 학생들과 함께 6명의 교사가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2학기가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실시한다는 서울대학교의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문장표현력 중심의 논술이었다면 이제는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을 발휘하는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게 된 거예요. 제가 늘 강조하던 영역 전이 능력이 있는 학생들에게 유리한 출제 방식인거죠.”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의 논술 출제 경향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통합논술반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학부모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권 교사를 비롯한 동료 교사들은 겨울방학과 이듬해 봄방학까지 모두 반납하고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통합논술반을 개설하는 과정에서 반신반의하던 주변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는 순간이었다.

세상이 변하듯 교육도 달라져야
권 교사가 남들보다 앞선 시각을 갖고 행동할 수 있었던 건 교사가 되기 전 경험한 회사생활 덕분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교사를 꿈꿨지만, 부모님은 아들이 법대에 진학해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기를 원했다. 부모님과 실랑이 끝에 결국 그는 차선으로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해 4년간 근무했다.
“기업에서는 사원들을 위한 교육을 많이 실시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핵심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죠. 저 역시 회사 생활을 하며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을 키웠습니다.”
회사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늘 마음 한 켠에 교사의 꿈을 품고 있었던 그는 1989년 마침내 교직에 첫 발을 내디뎠다. 대부분의 동료 교사들이 학점을 따기 위한 연수에 열을 올릴 때 권 교사는 일반 기업 연수를 찾아다니며 세상의 흐름을 관찰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교사가 되고난 후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내용들이 상당부분 그대로 담겨있는 겁니다. 시대는 계속 변화하고 있는데 정작 학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세상이 변하듯이 교육도 달라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겠구나, 생각했죠.”

수많은 기업 연수를 들으며 그가 찾은 핵심 키워드는 창의성과 융합. 이 두 가지를 수업에 녹여낸 것이 바로 통합논술이다.
통합논술이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권 교사와 뜻을 같이 하려는 교사들도 많아졌다. 동북고에서는 현재 통합논술의 모태가 된 독서토론모임 교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팀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수업 역시 통합논술을 비롯해 융합독서, 인성교육과 창의적 글쓰기 등 다양하다. 교사들은 그날그날 주제에 따라 뭉치기도 하고 때로는 흩어져 수업을 진행한다. 하나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최대 7명의 교사들이 모여 브레인스토밍 작업을 거쳐야 하지만 새로운 수업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일인 만큼 자부심도 크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아이디어 얻기도
지난해 대학입시가 끝나고 고3 학생들과 학부모 30여 명이 권 교사를 찾아왔다. “학교에서 배운 통합논술이 대학 진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러 온 것이다.
“논술 수업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글쓰기만 가르치는 건 아닙니다. 글을 잘 쓰는 요령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뇌를 말랑말랑하게 하는 작업입니다. 바로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일이죠. 책을 읽고 재미있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어느 순간 글쓰기의 기본을 배우게 됩니다.”
논술 교재는 아무리 바빠도 직접 집필한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많아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한다. SNS나 블로그 등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주제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동북고 통합논술 프로그램이 입소문 나면서 이 수업을 듣기 위해 입학하는 학생들도 생겨나고 있다. 올해부터는 영재반 수업도 새로 개설해 운영 중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 아니라 대학입시와는 완전히 별개로 순수하게 토론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수업입니다. 전부터 이런 수업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시작하게 됐어요. 다행히 학생들의 반응도 좋습니다.”
수업 준비와 교재 집필, 외부 강의 등으로 날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학생들과 소통할 때 권 교사는 가장 행복하다.
한 달에 두 번, 다른 학교를 찾아가 직접 수업을 진행하는 공교육 강좌 나누기 운동 역시 더 많은 학생들과의 만남을 위해 그가 자처한 일이다.
“주말까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에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 일이 참 좋고 행복합니다. 게다가 올해 수석교사가 되어 좀 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고요. 모든 학생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날까지 제 연구는 계속될 겁니다.”
김혜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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