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학습 버스기사 음주측정…누가 하나 ‘혼란’

2016.10.25 18:17:02

공문 보냈어도 시기 몰려 제때 못 와
일부 시·도, 감지기 보급…“교사가 하라”
법적 근거·권한 없어 vs 시간낭비 줄 듯

 

 

#. 이달 초 경북 A초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떠나는 날. 학교에 대절 버스들이 들어섰다. 학생들이 탑승을 마치고 떠날 준비가 됐지만 이들은 출발하지 못했다. 음주측정을 해줄 경찰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인 전화를 해도 경찰은 10분 넘게 도착하지 않았다. B교장은 더 이상 일정을 미룰 수 없어 결국 음주측정을 포기하고 학생들을 출발시켰다. 그는 ‘별일 없겠지’ 하면서도 혹시 문제가 되면 어떡하나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현장학습과 수학여행 시즌이 다가오면서 일선 학교들이 혼란에 빠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가 만든 안전강화 매뉴얼 때문이다. 학교는 버스를 대절해 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경찰에게 버스 운전기사에 대한 음주측정을 요청해야 한다. 문제는 특정 시기와 특정 시간에 몰리면서 협조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25일 오전 8시 45분. 서울양목초 앞에 버스기사들의 음주측정을 위해 경찰이 도착했다. 당초 학교가 요청했던 시간보다 5분여 늦게 도착했지만 그래도 이날은 양호한 편이었다. 경찰은 서둘러 음주측정을 했고 학생들은 무사히 체험학습을 떠날 수 있었다.

 

이 학교 박향연 교감은 “오늘 같은 날은 다행이지만 미리 공문을 보내도 혼선이 생겨 연락 없이 안 오기도 한다”며 “전화를 다시하고 기다리는 과정에서 출발시간이 지연되는 일이 다반사”라고 털어놨다. 그는 “결국 오지 않아 측정을 못하고 출발시킨 적도 있었다”며 “학생들의 안전관리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은 맞지만 이런 방식이 계속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어렵기는 경찰도 마찬가지다. 이날 협조 지원을 나온 C경사는 “출발시간이 대개 러시아워인데다 학교들이 겹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며 “오늘만 해도 8건의 요청이 있어 팀원들이 분산해서 나갔다”고 말했다. 학교가 바뀐 출발시간을 알려주지 않거나, 다른 급한 출동이 겹치는 경우 혼선은 더욱 커진다. 그는 “오후 출발 학교도 있고, 일일이 지원을 나가다보니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수학여행 같은 숙박형 체험학습의 경우 사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학교가 이동하는 행선지마다 관할 경찰서에 음주확인 도움을 요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26일 수학여행을 떠난 경기 D중 E교사는 “한참 몰리는 시기라 협조가 어려울 것 같아 임시방편으로 여행업체 직원이 측정기를 갖고 와서 도와주기로 했는데 아직 행선지에 협조공문을 보내지는 않은 상태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세종과 대구 등 일부 시‧도에서는 아예 교육청 차원에서 음주감지기를 일괄 구입, 전체 초‧중‧고교에 보급하고 학교별로 운전기사의 음주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대구교육청은 올해 초 9000여만 원의 예산을 들여 730여대의 음주감지기를 보급했다. 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경찰청 인력에 한계가 있고 학교도 행선지마다 요청하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에 보급했다”며 “출발 시에 측정해도 식사 때 반주를 할 수도 있으니 학생 안전 차원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수시로 체크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학교가 직접 음주측정을 하는 것에 대해 교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경기 F초 G교장은 “교사가 음주측정을 할 법적 근거도 없거니와 운전기사가 거부할 경우 강요할 권한도 없으므로 비현실적”이라고 일축했다. 서울 H초 I교감도 “경찰청과 버스회사가 협조해 음주측정을 한 후 학교에 오는 것도 방법”이라며 “학교가 협조공문을 보내고 재촉전화를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을 할 필요가 없도록 근본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보급 받은 감지기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세종 J초 K교사는 "공문을 보내거나 경찰을 기다리는 일이 없어 빨라졌다"며 "운전기사들도 당연한 절차라 생각해 거부하거나 불편한 내색을 보이지는 않지만 경찰 일을 교사가 대신하는 것이 달갑지는 않다"고 말했다. 세종 L중 N교사는 "행정실에서 기기 보관 및 측정을 담당하는데 불필요한 절차가 없어져서 편해진 느낌"이라며 "체험학습을 여러 군데로 나눠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기 한 대로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매뉴얼에 법적 구속력은 없다"며 "책임소재를 따지기 전에 서로 협조해 예방·점검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자유학기제, 수영교육 강화 등 체험학습이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대책 마련을 위해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예람 기자 yrkim@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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