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교단수기 대상] 넘실대는 파도를 보면 떠오르는 한 아이

2017.03.23 10:02:14

해마다 바쁜 시월을 보내고 나면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부산을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대구에서 가깝기도 하거니와 조개구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 때문이다.   

부산에서도 알아주는 태종대 조개구이 가게로 향했다. 이곳은 포장마차처럼 천막을 엮어서 만든 가게들이 즐비한 곳인데, 해안가를 따라 스무 개 이상의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TV에도 여러 번 소개될 만큼 명소이기도 해서 항상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기도 했다. 

“제대로 온 거 맞아요?”

차창 밖을 보던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나도 차를 세우고 앞을 바라봤다. 늘 같은 자리에 있었던 조개구이 집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믿지 못한 채, 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폈다. 

호소문이라고 진하게 적혀 있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떠들썩하게 보도된 태풍 사바 때문에 천막으로 된 가게가 모두 날아가고 잔해까지 바다가 싹 쓸어가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생계의 터전을 잃게 된 상인들이 부산시에 빠른 복구를 부탁하는 간절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마음이 짠했다. 누군가의 부모이고 누군가의 자식일 상인들이 일터를 잃고 마음을 졸이고 있다는 것이 짐작됐다. 바다를 원망스레 바라봤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출렁이고 있는 바다에 한 아이의 얼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8년 전, 모든 것을 집어 삼켜버린 바다와 같이 사나운 눈빛을 지니고 있던 재완이(가명)를 만났다.  재완이는 5학년 때 제주도에서 대구로 전학을 왔다. 

“제주도에서 왔어. 앞으로 잘 부탁할게.”

씩씩하게 말하는 재완이를 보며 무난히 잘 적응할 거라고 예상했다. 나의 교직 경력이 오 년을 넘어섰으니 그 정도는 ‘척 하면 삼천리’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이 큰 오류였다는 걸 판단하기까지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선생님, 재완이가 제 돈 빌려가서 계속 안 갚아요.” 한 아이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말했다.
“돈 가져온다는 걸 깜빡했어요. 내일 갚을게요.” 재완이는 별치않게 말했고 나 또한 재완이의 말을 믿었다. 돈을 빌려준 아이도 선생님 앞에서까지 다짐했으니 돈을 받을 수 있겠다는 안심이 되었던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재완아, 돈 가져왔니?”

재완이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또 깜빡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거짓말 하다가 늑대에게 잡혀 먹은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내일은 꼭 가져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다음 날, 여러 친구들이 나를 찾아와서 재완이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재완이가 돈을 빌린 친구가 한 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재완이는 서 너 명 이상의 친구에게 돈을 빌려 쓰고 갚지 않았다. 그 친구들에게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친구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꺼번에 말한 거였다. 

나는 재완이와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완이 부모님과 통화하기로 결심했다. 

“재완이 어머니 되십니까?”

재완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다소 연세가 지긋하신 듯했다. 

“재완이 엄마 아빠가 삼 년 전에 이혼했어요. 원래는 재완이 엄마가 제주도에서 재완이랑 여동생을 데리고 살았는데, 재혼을 하면서 아이들을 아빠한테 보내게 됐어요.”

할머니께서 긴 한숨을 내쉬시며 속사정을 털어놓으셨다. 가슴이 먹먹했다. 

“재완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나는 조심스레 재완이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이혼하고 나서 저랑 단 둘이 살 때는 만날 술 먹고 자고 하다가 애들이 다시 오고부터는 그래도 일 있으면 나가서 일하고 와요. 그래도 워낙 술을 좋아하다보니까 한 번씩 술 먹으면 횡설수설하고 그러네요.”

할머니께서도 힘드셨는지 넋두리하듯 긴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힘드신 할머니께 안 좋은 이야기를 전하려니 마음이 무거웠지만, 무엇보다 재완이를 위하는 마음에 힘겹게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는 전화로 연신 사과를 하셨고 내일 당장 돈을 갚겠다고 하셨다. 

결국 다음 날, 친구들은 모두 재완이에게 빌린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나 또한 그 일 이후로 재완이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지속적으로 상담을 하며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바쁜 학교 행사와 더불어 시간이 훌쩍 지났고 재완이도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아서 나도 한시름 돌렸다. 

“얼마 전 글쓰기 대회 행사에 가면서 택시를 타고 가게 됐거든요. 한 대는 제가 타고 다른 한 대는 재완이에게 택시비를 건넸어요. 다음 날이 돼서야 택시비 거스름돈을 받지 않은 기억이 나서 재완이에게 말했더니, 돈을 다 쓰고 없다는 거예요. 그날 받았어야 하는데 제 불찰이기도 해서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셔야 될 것 같아서 결국 말씀드려요.”

후배 선생님이 미안함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교차된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순간 꺼졌던 불씨가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재완이 할머니의 긴 한숨 소리도 떠올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다음 날, 교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거였다.
 
“김재완 학생이 5학년 1반에 있습니까?” 경찰서에서 온 전화였다. 

“어제 새벽 2시경, 어린 학생이 신천 강변을 걷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학생을 집으로 데려다줬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이 복잡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재완이에게 새벽에 혼자서 길을 걸었던 이유를 물어봤다.

“아빠한테 맞아서 집에 있기 싫었어요. 엄마가 있는 제주도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재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재완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재완이와 이야기를 마친 후, 재완이 아버지와 상담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직 생활 처음으로 가정방문을 했다. 재완이의 집은 학교 앞 허름한 5층짜리 아파트였다.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좁은 현관 입구에 언뜻 보이는 방 두 개도 아주 작았다. 

재완이 아버지께서 피곤해 보이는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셨다. 나는 예의바르게 인사를 드린 후, 조심스레 재완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에게 가고 싶어하는 재완이의 마음도 전했다.

“이혼하고 애들 보내고 나서, 자포자기하고 살았는데 요즘은 애들 때문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 번씩 술 마시고 혼낼 때도 있지만 월급 받으면 갖고 싶어 하는 컴퓨터도 사주려고 했는데….”

재완이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히시며 말끝을 흐렸다. 재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주 주말, 나는 재완이를 데리고 부산 태종대에 갔다.

“재완아, 많이 힘들지? 사실 선생님도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출한 적이 있단다. 학교 간다고 집을 나와서는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간 거야. 그 때 간 곳이 바로 여기야. 태종대에 높은 자살 바위가 있는데 낭떠러지 같은 바위 위에서 파도치는 바다를 보니까 속이 탁 트이는 것 같더라. 솔직히 말하자면 철썩대는 파도가 무섭기도 했고 말이야.”

내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내자 재완이가 놀란 듯이 바라봤다. 

“재완이도 힘들 때면 바다를 보고 기운을 얻으면 좋겠어. 물론 출렁이는 파도가 배를 덮쳐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기도 해. 하지만 바다가 있어야 물고기를 잡고 항해도 할 수 있으니 바다와 함께 살아가야하겠지? 선생님도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때의 방황이 작은 파도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의 파도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재완이를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르고 말이야.” 넋두리하듯 긴 이야기를 풀어놓고 재완이를 바라봤다. 재완이가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완이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6학년 진급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재완이는 제주도에 있는 엄마한테 돌아갔다. 다시 엄마랑 함께 살게 된 것이다. 

헤어지기 마지막 날 재완이가 편지를 건넸다.

 선생님,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거예요.
 제주도에 가서도 파도를 보면 선생님이 떠오를 거예요.
 넘실대는 파도를 보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꼭 기억할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재완이의 성격처럼 길지 않은 글이었지만 진심어린 마음이 전해져서 뭉클했다. 나 또한 재완이 덕분에 넘실대는 파도를 볼 때마다 재완이가 떠오른다. 성난 파도가 아무리 밀어 닥쳐도 모난 돌이 매끄러운 돌이 되어 가듯 재완이가 삶 속에서 둥글고 아름답게 영글어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태종대의 상인들도 분명히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날 것임을 믿는다. 푸른 바다가 존재하는 한 반드시 희망도 존재할 것임을 믿기에.

백대성 대구 매호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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