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시간에 감사 뜻으로 주는 사탕도 못받아

2017.09.29 14:39:54

청탁금지법 시행 1년 학교는
법 이유로 거절하긴 편해져
교직 청렴문화 정착됐는데
‘못 믿나?’ 자괴감 힘 빠져
‘교육목적’ 특수성 감안해야

경기도 한 초교 2학년 담임 A 교사는 최근 현장체험학습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학생이 건넨 쿠키 한 봉지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잘 다녀왔다는 인사의 뜻인 줄 알지만 법 때문에 받을 수 없다고 말했더니 아이는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지난달 28일로 시행 1년이 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학교 현장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교총이 지난달 20일부터 25일까지 법 시행 1년 교원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일선 교사들은 학부모도, 동료 교사도 일단 안 만나고 학생이 주는 것은 무조건 안 받는 분위기가 확산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의 자유기술 방식으로 접수한 청탁금지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문항에서 현장 교사들은 “청탁금지법과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명절 선물 등을 신경쓰지 않아 좋다”, “부담스러운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 학부모나, 업체 관계자들에게 청탁금지법을 이유로 거절하기 편해졌다”는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8월 법 시행 전 실시한 설문에서 ‘평소처럼 정직하게 생활하면 법 시행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온 부분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다수의 교원들은 학교가 교육을 하는 일선 현장이라는 특수성이 감안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운 목소리를 전했다.


“야간자율학습 때 선생님 고생하신다고 건네는 초콜릿도 받을 수 없고, 현장체험학습 때 주는 음료수 한 캔도 받을 수 없는데 상대의 배려나 헌신에 감사를 표하는 작은 성의까지 막는 것 같아 아쉽다”는 것이다. “스승의 날 학생이 개인적으로 주는 카네이션도 받을 수 없는데 이것이 청탁과 무슨 관계인지 알 수 없다”며 “사제 간의 정을 바탕으로 한 교육 현장을 위축시킨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또 “법 때문에 현장체험학습 때 어려운 가정 학생들의 무료입장이 어려워 졌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한 답변도 있었다. 법 시행 이전에는 현장체험학습에 교사를 비롯한 무료입장 여분이 제공 돼 배려대상 학생을 위해 제공되기도 했지만 법 때문에 무료입장 제공 자체가 제한되면서 저소득층 학생까지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밖에 회식을 자제하거나 교사 간의 만남 자체를 꺼려하는 분위기 때문에 동료 교사와 사무적 관계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권력형 비리나 정경유착 등 사회적 파장이 큰 법 비리는 잡지 못하면서 애꿎은 학교와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 감정적인 답변도 눈에 띄었다.


일선 교원들은 사회 상규상 교육 목적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법 적용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구했다. 뇌물이나 청탁이 아닌 감사의 뜻 정도는 허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공식행사와 직무와 무관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의견과 선물 등을 거절했음에도 신고해야 하는 의무 규정 등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는 답변도 많았다.


설문과 관련해 장승혁 교총 교권강화국 연구원은 “교원들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에도 각종 규정이나 시도교육청 지침 등을 통해 해당 법보다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음에도 청탁금지법에 교원들이 포함돼 지나치게 규제를 받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학생과 교사, 교사와 교사 간의 교감, 공감이 이뤄지는 학교 현장과 교육의 특성 고려해 현장성이 떨어지는 규제는 완화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백승호 기자 10004ok@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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