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 해가 끝나간다. 무대 위에서 한 편의 작품이 펼쳐지는 두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해 본다. 때로는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일 때도 있지만 평생에 걸쳐 진한 흔적을 남기는 사랑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 아이가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나 국가의 수장이 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이렇게 보면 새삼 52만5600분이라는 1년의 시간이 얼마나 장대한지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2018년 마지막으로 무대 위에 올려지는 공연은 이 기나긴 인생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추운 계절을 덥혀주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을 보며 떠오르는 얼굴들에게 오랜만에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어르신들의 생애 마지막 로맨스를 통해 인연과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 오토바이로 매일 우유배달을 하는 할아버지 만석과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할머니 송씨. 눈 내리는 새벽녘의 골목길,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여느 연인과 다를 바 없는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한편 이웃에는 치매에 걸린 아내 순이와 그를 살뜰히 보살피는 남편 군봉이 산다. 희끗한 머리의 네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자락에서 인연을 맺고 서로를 의지하며 우정과 사랑을 나눈다.
작품은 만화가 강풀의 동명 웹툰 원작으로 제작됐다. 2008년부터 연극으로 공연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으나 이번 공연은 이전 버전과는 차이가 있다. 연출가 이해제는 원작 특유의 따뜻함과 감동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지금의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각색 과정을 거쳤다. 이해제 연출은 최근 연극 <톡톡> <앙리 할아버지와 나> 등을 통해 삶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위트와 함께 무대 위에 펼쳐 내 왔다.
이번 작품에는 브라운관과 연극 무대를 오가며 활약 중인 은발의 스타들이 캐스팅됐다. 오랜만에 찾아온 사랑에 어쩔 줄 모르는 성격 급한 할아버지 만석 역은 배우 이순재와 박인환이, 무뚝뚝한 성미의 만석의 마음을 흔드는 할머니 송씨 역은 손숙과 정영숙이 연기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배우 이순재가 세 작품에서 만석 역을 연기했다는 것. 그는 영화와 드라마에 이어 이번 연극 무대에서도 만석 역을 맡게 됨으로써 장르를 뛰어 넘어 같은 역할을 세 번이나 소화하는 남다른 기록을 세우게 됐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한 청년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멋진 인생’의 주인공처럼 크리스마스이브에 세상을 떠난 이는 앨빈 켈리. 그의 어릴 적 친구 토마스는 문득 앨빈과 오래 전 했던 약속을 떠올린다. 둘 중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망자를 기리는 글인 ‘송덕문(頌德文)’을 서로 써주기로 한 것.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글을 써내려가던 토마스는 앨빈과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하나씩 마주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곱 살 때 핼러윈 파티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더 없는 단짝으로 지낸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앨빈은 고향에 남아 아버지의 서점을 물려받고, 토마스는 대학 진학을 위해 도시로 떠난다. 대학을 졸업하며 여러 권의 책을 써낸 토마스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한다. 그러면서 사는 곳도, 하는 일도, 어딘가 사차원적인 행동도 모두 어린 시절과 똑같은 앨빈을 무시하고 두 사람은 멀어진다. 그리고 토마스는 송덕문을 쓰는 동안 비로소 깨닫는다. 지금까지 자신이 써온 모든 글의 영감의 원천은 바로 자신의 소중한 친구 앨빈이었다는 것을.
작품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세월의 흐름 속에 자연스레 변해가는 두 인물을 통해 관객들에게 인생에서 잊고 살아온 소중한 무언가를 떠올려보게 만든다. 작품의 피아노, 첼로, 클라리넷으로 구성된 3인조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음악은 감동을 더한다. 무대를 가득 채운 앨빈의 책방과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은 동화 속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공연정보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12.6-2019.1.27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 02-3672-0900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11.27-2019.2.17 | 백암아트홀 | 1588-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