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보지 말라”니. 공연을 추천해주는 칼럼에 이 무슨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볼 만한 공연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에 요즘 필자의 대답은 한결같다. 어느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지만, 체감기온 영하 20도와 영상 40도의 그야말로 ‘극한 기후’를 겪어본 우리는 안다. 냉방기도 온열기도 필요 없이 창문을 활짝 열어둘 수 있는 계절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리고 만다는 것을.
이에 필자 역시 극장으로 관객을 이끌어야 하는 본분(?)을 잠시 내려놓으려 한다. 컴컴하고 사방이 막힌 극장은 상쾌한 봄의 공기 앞에서 매력을 잃고 마니까. 대신 계절의 향취를 만끽하면서도 문화생활의 갈증을 달랠 수 있는 곳, 미술관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려 한다. 갤러리의 화사한 작품들은 관람객의 마음을 봄볕 같은 따사로움으로 충전시켜줄 것이다.
반 고흐를 만지다
바야흐로 전시도 4차 산업혁명시대다. 멀찍이 떨어져 감상해야 했던 예전과 달리, 기술은 관람객을 작품 속 세계를 만지고 느끼게 만든다. 전시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展>은 작품을 보고, 듣고, 만져보며 오감으로 반 고흐를 느낄 수 있는 전시다.
이곳을 찾은 모든 관람객들은 갤러리에 들어서기 전 오디오 가이드를 지급받는다. 이는 고흐가 생전에 동생 테오에게 남긴 편지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어린이용, 성인용으로 눈높이에 맞게 녹음된 음성 안내를 따라 전시장에 들어서면 황금빛의 너른 밀밭과 함께 화가 반 고흐의 인생이 펼쳐진다. 그가 사랑했던 동생 테오의 담담한 이야기는 예술가로서의 면모는 물론,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고흐를 이해하게 돕는 역할을 한다. 대형 디스플레이로 섬세하게 구획된 6개의 공간을 통해 관객들은 고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소인 마을과 집, 작은 카페 등을 거닐게 된다. 고흐의 천재적인 상상력, 불안했던 심리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인 셈이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인터랙티브 체험이다. 특수한 3D 프린트 기술을 통해 진품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이 재현된 복제품을 만져볼 수 있다. 반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인 ‘추수’의 일부분을 확대 제작한 조형물 만져보며 고흐의 화법을 손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 또한 그가 사용했던 원근틀을 사용해 그림을 그려보는 코너는 원근법 개념의 이해를 돕는다.
살아있는 거장을 만나다
영국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 서울을 찾았다. 그런데 여기에 쏠리는 관심이 심상치 않다. 개막 3일 만에 관람객 만 명을 돌파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살아있는 가장 비싼 화가’라는 그의 별명에 대한 관심이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영국 요크셔 브래드포드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호크니는 1960년대 런던 왕립예술대학에 재학할 때부터 일찌감치 주목을 받기 시작해 60여 년 동안 왕성하게 작업을 이어왔다. 그에게 특별한 별명을 안겨준 작품은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으로, 지난해 11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9030만 달러(약 1019억 원)에 거래되면서 생존 작가 작품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드로잉, 판화, 사진 등 총 133점을 만나볼 수 있다.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기’, ‘로스앤젤레스’, ‘자연주의를 향하여’, ‘푸른 기타’, ‘움직이는 초점’, ‘추상’, ‘호크니가 본 세상’이라는 7개의 소주제 아래 1950년대 초기 작업부터 2017년에 제작한 최신작까지를 망라한다. 전시장을 거니는 동안 풍경과 인물, 추상 등 어느 한 가지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주제의 작품과 더불어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중 ‘더 큰 첨벙’, ‘클라크 부부와 퍼시’, ‘움직이는 초점 시리즈’, ‘더 큰 그랜드 캐니언’과 최신작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는 처음으로 한국 관객과 만나는 작품으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