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의 숨결을 만나다

2019.04.29 11:18:24

멋과 체험이 있는 고령

 

경북 고령은 일찍이 찬란한 고대 문화를 살찌우고 꽃피웠던 고장이다. 삼국시대 6가야의 하나인 대가야의 도읍지로서 곳곳에 남아 있는 고색창연한 유물 유적들은 그 가치와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대가야는 고령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한 고도(古都)로 시조인 이진아시왕을 시작으로 도설지왕에 이르기까지 16대, 52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봄기운이 더 진하게 퍼진 4월 말, ‘가야문화특별시’로 불리는 고령으로 가본다. 
 
주산길에서 만나는 대가야의 자취

 

중부내륙고속국도와 88올림픽고속국도를 번갈아 타고 고령 나들목으로 나오면 바로 군청이 있는 대가야읍내다. 대가야의 흔적은 이곳에 집중돼 있다. 먼저 대가야박물관에 들러본다. 구석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야외전시장, 어린이 체험학습관 등 대가야의 모든 것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대가야박물관 옆에는 돔 식 구조로 만들어놓은 왕릉전시관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장묘인 지산동 44호 고분(일명 ‘금림왕릉’)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은 곳으로 발굴 당시의 대가야 역사와 순장풍습, 축조 방식, 고분의 구조, 출토된 유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왕릉전시관을 나오면 주산(主山)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300미터 정도 오르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고분군을 만나게 된다. 제일 큰 지산동 44호 고분을 비롯해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수백 개의 고분군이 주산의 남동쪽 능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데 이들 고분은 대가야시대의 왕과 왕족 등 통치자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대가야의 숨결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이들 유물들은 대체로 5~6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44호 고분은 지름 27미터 높이 6미터의 크기로 고분 중앙에 왕을 안치한 주석실이 있고, 남쪽과 서쪽에 부석실을 두고 그 둘레를 32개의 순장석곽이 둘러싸고 있다. 
 

고분길은 중간 중간에 관광 안내판과 벤치를 둬 탐방객들이 대가야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자연석으로 다듬은 계단길과 부드러운 흙길이 번갈아 이어져 걷는 재미도 있다. 대가야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어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고분이 끝나는 곳에서 왼쪽 길을 타면 미숭산(해발 733미터)으로 오를 수 있다. 미숭산은 자연휴양림을 두고 있는 명산으로 원래 이름은 상원산(上元山)이다. 
 

주산 고분군을 찬찬히 둘러본 뒤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www.daegayapark.net)에도 가보자. 고분 전망대를 비롯해 대가야시네마, 대가야유물체험관, 토기방, 철기방, 임종체험관, 우륵지, 대가야탐방숲길, 대가야왕가마을(펜션), 가마터체험관 등 고대 가야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있다. 유물체험관에선 우수한 제련술을 보유한 대가야가 일본, 중국과도 교류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철기방과 토기방에서는 대가야의 토기와 철기를 만들어 볼 수 있다. 

 

3대 악성(樂聖) 우륵 선생의 고장

 

얼마 전 인근 안림천변에 ‘대가야 생활촌’이 문을 열었다. 기와마을과 초가마을로 이뤄진 전통한

옥 숙박시설에 머무르며 1500년 전 찬란했던 대가야 시대의 문화와 역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인줄마을, 볼묏골, 골안마을, ‘상가라도’ 못, 용사체험장, 주산성 등 주제별로 대가야 사람들의 생활을 재현해놓았다. 상가라도 못에서는 돛배를 타고 옛 어부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상가라도는 우륵의 가야금 12곡 중 대가야인 고령 지방의 음곡을 말한다.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이자 가야금을 창제한 우륵(于勒) 선생은 이곳 고령에서 태어난 걸로 알려져 있다. 우륵기념탑이 서 있는 고령읍 쾌빈리(가얏골마을)는 우륵이 제자들과 함께 가야금을 연주한 곳으로 그 소리가 정정하게 들려서 ‘정정골’로 불린다. 
 

이곳에 건립된 우륵박물관은 우륵과 가야금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며졌다. 박물관 한 켠에는 전문 장인이 가야금을 만드는 가야금 공방과 가야금을 연주해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고령군에서는 ‘우륵’과 ‘가야금’을 테마로 한 전통문화 체험코스를 개발‧운영하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가얏골마을 한옥에 1박 2일 동안 머무르며 가야금을 배울 수 있는 코스로 하루면 ‘아리랑’을 연주할 정도로 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산동 당간지주와 양전동 암각화도 대가야의 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곳이다. 지산동당간지주(보물 제54호)는 통일신라가 대가야의 도읍이었던 이곳에 절을 세워 망국의 한을 안고 살아가던 고령 사람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장기리 회천변 알터마을 입구에는 남향의 커다란 바위 면에 동심원과 십자형, 가면 모양 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 양전동암각화(보물 제605호)가 있다. 이 그림은 당시 주민들의 농경의식이나 제사 때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에 새겨진 각종 문양들은 우리나라 선사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여기서 대구 방면 개진면 쪽(67번 지방도)으로 가면 낙동강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푸른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개포나루터(개진면 개포리). 개경포(開經浦)로도 불리는 이곳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경상도 내륙 지역의 곡식과 소금을 운송하던 큰 포구였다. 서해안에서 나는 소금도 낙동강을 따라 엄청나게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는 인천에서 큰 배로 팔만대장경을 싣고 와 내렸던 곳으로 그 당시 합천 해인사 승려들이 경판을 머리에 이고 날랐다고 한다.

 

개경포의 원래 이름은 개산포((開山浦)로서 지명이 개경포(開經浦)로 바뀌게 된 것은 뫼 산(山)자 대신 글 경(經)자를 넣었기 때문이다. 한문 그대로 풀어보면 ‘글자가 열리는 나루터’가 된다. 당시 이곳이 지리적으로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개경포를 그냥 개포라고 부른다. 개경포기념공원에 세워져 있는 표지석이 아니라면  이곳이 포구였다는 사실을 알기조차 어렵다. 

 

 

체험과 쉼이 있는 마을과 숲

 

읍내에서 조금 벗어나 쌍림면 소재지에서 합천 방면(33번 국도)으로 올라가다 보면 우측으로 개실마을이 나온다. 영남학파의 종조(宗祖)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2)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선산 김씨 집성촌으로 화개산이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한옥마을이다. 무오사화 때 화를 면한 김종직의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종가의 대를 이어오고 있다.

 

350여 년 전통이 말해주듯 마을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마을 안에 조상을 모시는 재실이 다섯 개나 되고, 열녀비 효자비도 여럿 있다. 마을의 핵심을 이루는 점필재 종택은 1800년경에 건립해 몇 차례 중수한 고택으로 앞쪽의 사랑채와 뒤편의 안채, 좌우의 고방채와 중사랑채가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개실마을은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돼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개실마을 홈페이지(www.gaesil.net) 참조.
 

 

개실마을에서 안림천을 따라가다 보면 산기슭으로 우람한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신라 말 경향 각지의 선비들이 찾아와서 토론을 벌이고, 유생들을 가르쳤다고 전하는 벽송정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八)자 모양의 정자 안쪽에는 통일신라 말의 학자인 최치원(崔致遠)과 정여창(鄭汝昌), 김광필(金宏弼)의 시문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어 그 유래를 얼추 헤아려보게 해준다. 벽송정에서 길(26번국도 거창 방면)을 따라 조금 더 가면 물 맑은 안림천 옆으로 아까시나무와 느티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신촌숲’이 나온다.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이 시원하고 연초록의 숲이 마음을 어루만지는 풍치 뛰어난 곳이다. 

김초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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