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쉬는 시간] 선생님의 일상, 글로 써 보세요

2020.09.03 13:53:12

“선생님, 학교폭력으로 책을 쓰면 어떠세요?”

    

처음 책을 냈던 출판사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함께 작업하던 편집자님께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바람에 새로운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책을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원래 책을 내던 출판사에는 ‘제가 책을 쓸 시간이 없어서요'라는 말로 새로운 책의 계약을 에둘러서 거절했었어요. 자꾸 거절하다 보니 이번에는 학교폭력은 업무를 담당하니까 학교 업무도 하면서 책도 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주더군요. 
    

사실, 출판사 입장에서 학교폭력은 별로인 주제에요. 소구점이 없거든요. 힘들기는 한데 굳이 그걸 책으로까지 읽고 싶지는 않은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해주는 바람에 고민이 생겨요. ‘한 번 써볼까?’ 하고요. 어차피 학교폭력 업무를 하고 있으니까 학부모님들께 할 말이 많거든요. 

 

‘학교폭력 사안이 있으면 합리적으로 감정을 표현해주세요.’
‘학교에 전화해서 선생님에게 소리 지르지 말아 주세요.’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에게 화내지 말아 주세요.’
‘감정싸움은 학부모님들끼리 해주세요.’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대뜸 전화해서 소리부터 지르시는 학부모님. 사안 때문에 상담하다 보면 책상에 있는 물건을 던지면서 “이런 개XX" 욕을 하시는 학부모님. 진짜 별일 아닌데 소송까지 거시는 학부모님. 학부모님이라고 정중하게 표현해드리고 싶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님’자를 지워버렸어요. 똑같이 욕만 안 해도 다행이지요. 학교폭력 책임교사는 어쩌면 학교의 공식 ‘욕받이’가 아닌가 싶어요. 온갖 욕을 앞에서 받아내야 하니까요. 
    

학교폭력 업무를 하면서 ‘이렇게 좀 안 했으면 좋겠다’하는 것들이 보여요. ‘내가 만약 학부모라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학부모님들의 인식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싶기도 해요. 심각한 사안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별 것 아닌 일로도 부모끼리 감정싸움을 하게 되니까요.

 

그런 감정싸움의 놀이터가 학교라는 사실은 우리 교사들에게도 굉장한 부담이에요. 마음속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놓고 싶은 마음에 통화가 길어졌어요. 거의 한 시간을 학교폭력 이야기만 했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책을 한 권 쓸 만큼 할 말이 많다는 것을 느껴요. 
    힘들고 짜증 나고,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풀리지 않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던 날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지속하고 있는 슬기로운(?) 학교폭력 생활. 학교폭력 뿐만은 아니지요. 담임이라서 만나게 되는 생활지도의 여러 난관. 거기에 요즘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서로 받게 되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우리의 스트레스는 한 권의 책을 위한 소중한 씨앗이 돼요.
    

요즘 교단에서도 책을 쓰고 계신 선생님이 많으세요. 자녀 교육서의 반 정도는 선생님들이 작가일 만큼 말이지요. 그만큼 교사들이 교육전문가로서 대접받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교사 개개인의 일상과 업무가 책이라는 콘텐츠로 내놓아도 경쟁력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쉽지 않은 교사의 일상. 몸속에 사리가 쌓이는 것 같은 흔들리는 순간들은 자신도 모르게 콘텐츠가 쌓이는 순간이에요. 혹시 요즘 업무 때문에, 생활지도 때문에 힘드신가요? 그럼, ‘다행이다’ 생각하세요. 선생님도 모르게 콘텐츠를 쌓고 계시는 거니까요. 그런 일을 글로 풀어 보세요. 한 권의 훌륭한 책이 될 테니까요. 

이진혁 경기 구룡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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