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특집 좌담회] 2030 교사들이 말하는 ‘나는 교사다’

2021.05.06 10:30:00

“키팅을 꿈꿨던 나, 불안한 미래... 정년까지 갈 수 있을까”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을 꿈꿨던 선생님, 특수학교 아이들과 천천히 함께 걷는 선생님, 생활지도와 학부모상담에 어려움을 겪지만 언젠가는 선배들처럼 존경받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전국의 2030 세대 선생님들 눈에 비친 교육현장을 좌담회 형식을 빌어 조명해 본다. 소위 MZ세대 불리는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좌담회에는 손경은(28·전남 해남삼산초 병설유치원 교사), 박찬성(30·강원 태백상장초 교사), 조은비(29·세종온빛초 교사), 한지호(29·서울선린중 교사), 신화진(31·부산혜성학교 교사) 교사가 비대면으로 참석했다.

 

코로나19로 고생들 많으시죠. 학교는 좀 어떤가요?

 

손경은 많이 아쉽죠. 아이들을 마음껏 안아 줄 수도 없고, 봄날 야외 체험학습 나가기도 힘들어요. 교사와 학생 간 기본적인 상호작용마저 꽉 막혀버린 것 같아 답답합니다.

 

조은비 학교에서 마스크만 쓰고 생활하니 3월 한 달이 지나도록 반 친구 이름을 다 못 외우는 아이들이 많아요. 여전히 서먹한 분위기가 남아있죠. 학교 교육활동도 가급적 협업을 피하다 보니 활발한 의사소통이 힘들어요.

한지호 중학교 역시 마찬가집니다. 모둠활동이나 실험·실습 등은 가능하면 하질 않아요. 학교교육활동을 통해 사회성을 익혀야 하는데 그게 걱정입니다.

 

신화진 특수학교도 어려움이 많아요. 등교수업이 진행됐지만 체험학습을 거의 못 했죠.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지역사회 적응을 위해서는 직접체험이 꼭 필요한데 코로나 때문에 학교 밖을 못 나가니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박찬성 한 가지 좋은 점은 불필요한 행정업무가 줄어들었어요. 학교행사들이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바람에 교사들 부담이 가벼워진 거 같아요. 공문은 여전히 많아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말이죠.

 

어려운 임용시험을 뚫고 교사가 됐습니다. 교직생활을 해 보니 어떤가요.

 

손경은 이제 갓 2년 차에요.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는데 유치원 교사가 됐어요.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합니다. 아직 물정을 몰라 그런가요(웃음).

 

한지호 뭐니뭐니해도 제자들이 찾아올 때 제일 보람 있더군요,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고요.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이니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교직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조은비 대학을 졸업할 때 소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주인공을 꿈꿨습니다. 한 사람을 의미 있게 성장시키는 멋진 선생님이었죠. 그런데 막상 교실에 들어선 날 아이들의 첫 질문은 “오늘 점심 뭐 먹느냐” 이었어요. 그리곤 화장실은 어디 있는지, 사물함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설명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게다가 우유 배식 첫날, 아이들이 우유팩을 열지 못하겠다며 도와달라더군요. 너도나도 우유팩을 들고 오는데 진땀깨나 흘렸죠. 지금은 웃지만 그땐 이러려고 교사 됐나 싶었어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을 주는 게 교직의 매력이죠. 하지만 남모를 고충도 많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거 하나만 꼽아 볼까요.

 

손경은 병설유치원은 교사 한 명이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해요. 게다가 촉박한 행정업무는 왜 이리 많은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때가 많아요.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벌써 번아웃 됐을 거에요.

 

한지호 전 학부모상담이요. 아무래도 인생 경험이 짧다 보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았습니다.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 길러봤으면 학부모와 공감대 형성이 쉬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커요. 특히 코로나 상황에 맞춰 원격수업을 하다 보니 학생 파악도 쉽지 않아 더욱 힘들었고요.

 

박찬성 5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아무래도 생활지도가 가장 버거워요.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생활지도를 하고 싶은데 뜻대로 잘 안되더라고요. 아이들이나 보호자들과 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고요. 어떡하면 잘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습니다.

 

조은비 다들 비슷하시네요. 교직 5년 차이지만 생활지도는 늘 어렵습니다. 반 아이들 모두 사랑스럽고 예쁘긴 한데 그중에는 말썽꾸러기들이 있기 마련이죠. 맞춤형 해결책이 딱딱 나와주면 좋으련만 그게 쉬운가요. 홀로 가슴앓이 할 때도 많았죠. 학년이 새로 시작될 때마다 로또 번호 고르듯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올해는 제발….

 

신화진 하루는 수업 중 얼굴을 다쳐 피가 났어요, 좀 상처가 심했지만, 특수학교에선 가끔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마침 금요일이어서 창원 본가엘 갔는데 부모님이 깜짝 놀라며 눈물까지 흘리시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토요일에 본가에 가요. 금요일 오후에 푹 쉬고 컨디션 잘 조절해 최상의 모습만 보여 드리고 있죠.

 

부모 마음은 다 똑같죠. 오는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교사가 되고자 했을 때 꿈꾸는 스승상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교사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박찬성 스승의 날이요? 부담스러운 날이죠(일동 웃음). 스승의 은혜 운운하는 거창함은 가고 이제는 교사들이 더 조심해야 하는 날이 된 거 같아요. 사실 전 매년 하는 다짐이 있습니다. 친절하고 단호한 교사가 되자 입니다. 아이들과 한없이 친하게 지내지만 옳고 그름과 예의범절은 꼭 가르쳐주려 하죠. 살면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 주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한지호 “그래, 그때 그런 선생님이 계셨지”라며 떠올리는 교사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간혹 학창시절 친구들과 만나보면 그 시절 선생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속으로 다짐하곤 했죠.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선생님이 되자고 말입니다.

 

조은비 ‘덕업일치’하는 교사가 제 꿈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 빠져 그것을 아예 직업으로 한 이들을 보고 ‘덕업일치 했다’고 하죠. 저는 제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그림책 읽기 등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과 나누며 함께 배우는 그런 교사였으면 합니다.

 

손경은 헬렌켈러를 가르쳤던 설리번 선생님을 너무 존경해요. 그분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빛나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선생님이 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소위 MZ세대들인데 2030교사는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시나요?

 

신화진 워라밸을 중시하는 거죠. 학교에서는 집에 늦게 갈수록 열심히 하는 교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반대라고 봐요. 출근 후의 나를 위해 퇴근 후의 나를 희생시키려 하지 않죠.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이 행복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운동·캠핑·여행은 물론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친구들이 많죠.

 

조은비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 아이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거 같아요. 특히 인터넷 환경에 익숙하다 보니 원격수업 적응력도 빠르고요. 교직관도 전통적인 틀에 얽매이려 하지 않아요. 교사는 전문직이면서 동시에 노동자인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지호 역시 워라밸입니다. 교사로서의 삶도 개인으로서의 삶도 모두 중요하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 같아요.

 

박찬성 학교일을 내일처럼 하라고 말씀 하시지만 학교일은 학교일, 내일은 내일이죠. 힘든 일 생기면 ‘남자 선생이 해야지’ 하는 말도 전 동의하지 않아요.

 

선배교사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세대차이를 많이 느끼시나요?

 

신화진 학생지도는 물론 학부모상담까지 척척 해내는 노련한 모습을 볼 때면 부러워요. 세대차이를 느끼기보다 난 언제 저렇게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앞서는 거죠.

 

한지호 선배들 수업을 보면 몇 마디 하지 않은데도 아이들의 시선을 확 집중시키는 마력 같은 게 느껴져요. 그게 부러워 노력해보지만 비슷하게도 안 되더라고요.

 

박찬성 일명 ‘라떼 선생님’들은 좀 기피 대상이죠. 우리 학교 이야기는 아니지만, 본인이 경험했던 일이 정답이고 새로운 의견은 잘못된 것이라며 외면하는 분들을 보면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곤 합니다. 저 또한 후배들이 있어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0년 이상 교직생활을 하게 될 텐데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찬성 앞서 세대차이 말씀하셨는데 저희도 마찬가지에요. 매년 달라지는 학생들 모습에서 제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하는 게 가장 걱정이죠. 학생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기 힘들어진다고 느껴지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워요.

 

한지호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도 달라지는데 그 흐름에 뒤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죠. 낙오하는 선생님으로 남지는 말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정년까지 가기보다 기회가 주어지면 제2의 인생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신화진 전 반대로 정년까지 교직에 있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실 특수학교는 교사의 체력이 중요하거든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아이들 곁에서 지켜주고 싶어요.

 

조은비 연금이 불안해요. 자꾸만 줄어든다는 말은 들려오고…. 노후가 걱정이죠. 뭔가 대비를 해야 할 거 같아 재테크에도 눈길을 돌려봅니다.

 

요즘 2030세대는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교사들 모임에서도 재테크가 가장 큰 화제라고 하던데요.

 

신화진 전 얼마 전 주식 사이트에 가입했어요.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 뭔가 세상에 뒤처지는 느낌, 나만 모르고 사는 건 아닌지 하는 압박감 때문이에요, 예전 같으면 열심히 저축해서 돈 모아 집 사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자고 나면 천정부지로 아파트값이 뛰는 판이니, 주식이든 뭐든 해야 할 것만 같았어요. 결혼한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집값·전셋값 걱정이고요. 비트코인으로 얼마 벌었다, 부동산으로 성공했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뭐하나’ 하는 불안감과 박탈감이 몰려오죠.

 

조은비 저도 최근에 유튜브로 경제공부를 시작했는데 ‘내가 많이 늦었구나, 나만 몰랐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학생들에게도 어려서부터 기초적인 경제지식을 재미있게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박찬성 서울에서 집사는 건 이제 언감생심이고, 공무원연금도 준다고 하니 별수 있나요. 자구책을 찾아야죠. 또 결혼도 해야 하는데 지금 같아선 엄두도 못 낼 일이고요. 노후대비 재테크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2030은 고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세대죠. 교사로서 교육당국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손경은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관사에서 생활했어요. 그런데 시설이 낡고 때론 물이 나오지 않은 적도 있어요. 전국 곳곳에 관사에서 생활하는 선생님들이 많은 데 그분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지호 학교와 교육당국이 손발이 잘 안 맞는 거 같아요. 일률적 지침이 필요할 때는 학교 더러 알아서 하라 하고, 자율이 필요할 때는 획일적으로 규제를 하곤 하죠. 정보과학부에 있다 보니 원격수업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조은비 행정업무 좀 덜어 주세요. 공문 처리하느라 수업준비를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대기업에 다니다 교직에 들어온 선배 말로는 학교 업무강도가 훨씬 세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업무스트레스와 중압감 때문에 학생들에게 쏟아 부을 에너지가 방전되는 경우가 많아요. 세상이 급변하면서 교사들에게 주어진 책임과 업무는 더 늘어 났는데 교육당국만 잘 모르시는 거 같아요.

 

박찬성 전 인사문제를 언급하고 싶어요. 승진대상자 선정 때 전문직 시험처럼 동료들의 의견을 묻는 문항이 추가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관리자의 능력 중 중요한 게 소통과 공감 아닐까요.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교직에 임하실 건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지호 교육이란 물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다양한 물감이 쓰이듯 저도 아이들이 인생을 그려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물감이고 싶습니다. 그들이 어떤 그림을 그리든 말이죠.

 

박찬성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을 때 대책을 생각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풀어나가는 충분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습니다.

 

신화진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느려도 괜찮아’ 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한다 해도 서두르거나 채근하고 싶지 않아요. 조금 느리면 느린 대로 괜찮아하면서 지켜봐주는 그런 교사이고 싶습니다.

월간 새교육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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