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뉴욕에 가다’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2023.02.03 10:30:00

최근 한류의 물결을 타고 한국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한국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직접 한국을 찾는다. 경복궁 주변에서는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의 발걸음은 한국적 정서가 짙게 남아있는 곳, 서촌이나 북촌으로 향한다.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한 정거장 거리에 안국역이 있다. 이 근방을 일컬어 북촌(삼청동·가회동·재동 일대)으로 불렀다. 청계천과 종각의 북쪽에 있는 동네라는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북촌은 조선시대 왕족이나 권세 있는 양반들이 주로 모여 살았다. 많은 사적과 문화재가 남아있어 이곳을 거닐다 보면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빠져나와 중앙고등학교 방향으로 걷다 보면, 옛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작은 상점들을 만나볼 수 있다. 대구참기름집·믿음미용실…, 상호에서부터 삶의 정취가 느껴진다. 이곳에 독특한 공간이 생겨 주목을 끌었다.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한 미술관이 생긴 것이다. 


‘중앙탕’은 1960년대에 영업을 개시하여 2010년 중반까지 영업을 했던 대중목욕탕이다. 이곳 계동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이곳을 기억할 정도로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 공간이다. 3층 높이의 건물은 푸른색 타일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에는 목욕탕 타일과 온수를 데웠던 대형 보일러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에 살았던 주민들은 그 시절이 떠오른 듯 “어쩜 그대로네요” 하고 말한다. 간판이나 샤워시설, 욕조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지금 후지시로 세이지의 작품들이 걸려있다. 

 

 

 

 

 

 

 

후지시로 세이지는 2021년 예술의전당에서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展>을 통해 대중들과 만났다. 이전에 롯데 애비뉴엘 개관전으로 한국에 소개된 적이 있지만, 대형전시를 통해 본격적으로 만난 것은 2021년이 처음이다. 일본에서는 팬클럽도 있을 만큼 인기 있는 작가인데 한국에 알려진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그의 미술관이 북촌에 들어선 것이다. 

 

사랑과 공생으로 빚어낸 ‘빛과 그림자의 세계’
후지시로 세이지는 일본과 해외에서 100회 이상의 전시를 개최한 바 있으며 해외 언론으로부터 동양의 디즈니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는 10대에 이미 일본의 독립미술협회전·국화회전·춘양회전·신제작파전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이른 나이에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그는 홀로 걷는 길을 택한다. 그는 ‘카게에’에 전념하며 그 방면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카게에 거장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카게에란 그림자 회화를 뜻한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디지털 프린트가 아니냐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교하고 화려하기 때문이다. 밑그림을 잘라낸 곳에 셀로판지나 컬러 필름지 등을 붙여 완성한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 뒷면에 조명을 비추어 색감과 그림자로 원근감과 색채를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두운 빛과 밝은 빛의 밸런스, 또 재료의 질감이나 투과율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야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카게에는 오늘날 버스 정류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이팅 간판광고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은 미술관인 북촌스페이스는 3층짜리 건물이다. 1층 라운지, 2층 전시실, 3층 아카이브 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양이 뉴욕에 가다> 카게에 원화, 스케치, 잡지·사진·영상 자료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넓은 범주에 걸쳐져 있기 때문에 소개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작가이다. 여기에는 한 개인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있다.  


북촌스페이스의 강혜숙 관장은 그의 작품세계를 오랜 기간 주목해오며, 한국에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고민해왔다. 그와 후지시로 세이지 작가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일본에서 우연히 후지시로 작가의 카게에를 본 강 관장은 큰 감동을 받았다. 지금도 그의 작품을 보면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아도 작가가 평생의 주제로 다루어온 사랑·평화·공생의 메시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재작년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展> 이후에 그의 팬이 되었다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으며, 그때 방문했던 사람들이 그 감동을 다시 느끼기 위해 이 공간을 찾는다.

 

고양이 뉴욕에 가다
후지시로의 작품에는 고양이·새·강아지 같은 동물들이 모티브로 자주 등장한다. 말을 하지 않아도 새와 개와 고양이는 귀여워해 주면 기뻐하며 다가온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마음 교류가 인생에서 가장 멋진 행복 중 하나이며, 인간의 사귐과는 달리 이해관계의 의도가 전혀 없는 순수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고양이 뉴욕에 가다> 작품에는 이런 작가의 사랑스러운 시선이 잘 녹아있다.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은 바다를 건너 뉴욕으로 건너간다. 거기서 하얀 건물에 도착하는데 그곳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한 소녀의 병실이다. 고양이들은 꽃밭이 보고 싶다는 소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빌딩의 창마다 꽃 그림을 그려 넣는다. 창밖을 보고 싶은 마음에 소녀는 다리를 내려 천천히 창 쪽으로 다가가며 이야기는 끝난다. 

 


후지시로 작가가 처음 카게에를 만들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다. 그는 초토화된 도쿄에서 어디에서라도 구할 수 있는 골판지 조각과 전구를 사용해 카게에 작품을 만들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일본은 자주 전기가 끊겼다. 자주 어둠이 내리는 상황 속에서 후지시로는 카게에를 만들며 한 줄기 빛을 찾고, 아름다움을 만났으며, 마침내 평화를 만났다. 그의 작품이 동화적 모티브를 다루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은 작가가 힘든 상황에서 피워낸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소통과 재생의 공간 북촌스페이스
북촌은 경복궁·창덕궁을 비롯한 미술관·박물관과 최근 개방한 청와대와 함께 즐길 거리가 많은 곳이다. 또한 한국 고유의 풍경과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 다양한 스토리텔링도 가능하다. 한국 최초로 서양화를 개척한 고희동 미술관과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 청전 이상범을 사사한 배렴의 가옥이 북촌스페이스 가까이에 있다. 바로 옆에는 만해 한용운이 <유심>이라는 잡지를 창간한 곳이자, 그 유명한 ‘님의 침묵’을 탈고한 유심당이 위치하고 있다.

 

이외에도 3.1 운동의 발원지인 중앙고등학교, 최초의 외국인 주문모 신부가 세례를 주었다던 석정보름우물도 북촌스페이스에서 모두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서울의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북촌을 걷다 보면 교과서 속 인물들이 살던 곳이나 역사적 장소들과 만나게 된다. 북촌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북촌을 찾는다. 젊은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은 식당들이 있고, 옛 정취에 흠뻑 빠질 수 있는 한옥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이곳 북촌에 예술로 마음을 씻어내는 공간이 있다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김광희 한국창의인성교육진흥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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