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교감다움에 대한 소고

2023.02.03 10:30:00

나의 첫 교감발령은 2021학년도 3월,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지침에 따라 원격수업으로 시작하던 해였다. 봄·여름·가을·겨울 두 번을 코로나와 함께했다. 개학식 날 학교 방송으로 부임 인사를 했다. 5인 이상 집합금지라서 전체 직원회의도 비대면으로만 하니, 복도를 지나가는 교감에게 2학년 담임교사는 “코로나 상황이라 학부모 출입이 제한되는데 어떻게 들어오셨어요?”라며 말을 건넸다. 이 시기에는 교직원 간에도 친밀한 소통이 어려웠고, 대신 교육공동체 간의 갈등과 요구는 더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수업과 생활지도가 최우선인 교사들을 지원하는 교감다움
#01 _ 교사들의 수업과 생활지도를 지원하는 것이 교감의 소명이라는 생각에 또래에서 겉도는 아이들을 챙기려고 애썼다. 아무 거리낌 없이 지각하고, 배가 아파 보건실 간다는 핑계로 복도를 배회하는 학생들을 교실로 돌려보내기 위해 그들의 응원단장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차가운 기운이 갑자기 밀어닥친 10월 중순, 쌀쌀해진 날씨에 교문 앞에서 30분을 기다렸지만 결국 ○○이는 오지 않았다. 5학년인 ○○이는 또래보다 성장발달이 늦어 같은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이 어머니는 예전과 달리 같은 반 친구들이 잘 챙겨주지 않아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니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있는 다른 반으로 학급을 교체해달라고 했다. 반면 ○○이와 같은 반 친구들은 ○○이 때문에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교감실을 찾아와 항의했다. 학부모 십여 명도 ○○이 때문에 같은 반 친구들이 교육적으로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교장실을 항의 방문했다. 어느 한쪽도 양보가 없는 상황에서 교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의 유급을 막아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온 학교가 ○○이를 돌보겠다’는 각오를 보여주기 위해 매일 아침 교문에서 ○○이를 기다렸고, 심리·정서지원과 대안교실 운영 등 행·재정적 지원도 최대한 투입했다. 다행히 ○○이는 6학년에 진급하였지만, 보호자의 동의가 없어 풀배터리 검사는 해보지 못했다. 6학년이 돼서도 어려운 상황이다.

 

#02 _ 위드코로나로 마스크와 가림판에 가려진 채 수업을 받는 학생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교사들은 최선을 다하지만, 학부모들은 펜데믹 상황에 비대면수업도 많고 소통이 부족하다 보니 오해가 쌓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부모들은 수업상황에서 일어나는 교사의 단편적인 언행을 지적하고, 당장 개선되지 않으면 교육청에 고발하겠다며 내년에는 절대 담임을 맡지 못하게 조치해달라고 으름장을 논다.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를 구하려는 교감에게 교사 편만 든다며 공정하지 않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반면 교사들은 교감이 학부모 말을 차단하고 무조건 교사 편을 들어주길 바란다. 
교사의 단편적인 언행을 문제 삼아 학부모들이 뭇매를 가하고 있을 때, 동료교사들의 지지와 응원은 상처받은 교사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힘이다.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교권침해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실하고 강직한 교사들은 올바르게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상처받는 경우를 종종 본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갈등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 교감으로서는 힘든 순간이 아닐 수 없다. 

 

#03 _ 겨울이 되면 교감은 내년 교육과정의 정상 운영을 위해 교사를 배치한다. 물론 교내 인사자문위원회를 거쳐 교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될 수 있도록 체제를 마련하여 희망서를 받는다. 하지만 선호하는 학년은 특정돼 있고, 힘들고 귀찮은 업무는 담당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다. 사람 사는 일이니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교감은 교육과정의 정상 운영을 위해 교사 개개인의 희망사항을 모두 수용해 줄 수 없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고 기피하는 업무를 부탁한다. 다행히 교사들이 애쓰는 교감을 봐서 부탁을 들어준다. 사실 교감에게는 교사들을 설득할 만한 기재가 하나도 없다. 기피하는 업무를 담당한 교사에게 성과상여금에서 우대하겠다는 약속도 교감은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성과상여금은 교원업적평가 중 교감과 교장 의견을 제외하고 다면평가관리위원회에서 정한 정량평가와 다면평가자가 평가한 정성평가 결과만 활용된다. 교직 특성상 대부분의 교사는 퇴직할 때까지 자신의 업적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성실히 교육한다. 교사들에게는 수업과 생활지도가 최우선이지만, 수업과 생활지도가 잘 되려면 행·재정적 업무는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교감이 되어야만 알 수 있다.


학교의 인비져블맨이어야 하는 교감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학교장의 방침을 따르도록 때로는 악역도 담당해야 한다. 교감은 지침과 방침에 근거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데 교사들에게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한 조직문화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가 정착되고, 학교의 방침을 세울 때 top-down 방식이 아닌 bottom-up 방식은 교장·교감 의견을 배제한 다수의 교사 의견으로 수렴된 결정에만 정당성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교감은 교육공동체 안에서 민원 또는 의견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보이지 않게 조율하는 임무를 마음 졸이며 수행하는 인비져블맨(invisible man)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교직원의 임무)에 따르면 교장은 교무를 통할(統轄)이 아닌 총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하고,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고 되어 있다. 


교감의 중요한 일은 일요일 밤 10시든, 월요일 아침 8시든 교사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출근이 어렵다고 갑자기 연락하면 당연히 시간강사를 즉시 구해야 한다. 시간강사를 구하면 아무 일 없는 것이 되고, 시간강사를 구하지 못해 교사들에게 보결수업을 배당하면 무능한 교감이 된다. 교사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은 인비져블맨이 교감인 셈이다.


세상은 곳곳에 많은 인비져블맨이 있기에 잘 유지되고 발전한다. 하지만 인비져블맨으로서 교감의 역할도 초거대 정보화시대에 맞게 최소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는 지원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중간 관리자 역할에 맞는 대우가 수반되어야 한다. 교감에게 직책급 업무추진비가 주어진다면 교사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사기를 진작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2급 정교사가 1급 정교사 자격을 받으면 한 호봉 승급되듯이, 1급 정교사가 교감 자격을 받으면 한 호봉 승급되어야 책무성도 높아질 것이다.

 

둘째, 교감 업무경감을 위해 교감에 대한 학교장의 신뢰가 기반되어야 한다. 교감들은 20~30년 내외의 교육경력을 갖고 부단히 노력하여 교감 자격을 얻었고, 그만한 업무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소소한 일까지 학교장에게 일일이 구두보고 해야 하는 조직문화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셋째, 교감학습공동체를 활성화하여 교감의 업무효율성을 높이고 적극 행정을 할 수 있는 행·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게하면 교감 상시 네트워크를 통해 시기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시행착오 없이 체계적으로 처리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아울러 유사 민원에 대한 합리적 응대 방법도 공유하며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넷째, 교육공무원인 교감도 휴업일을 적극 활용하여 교육자료 수집, 연수 참여 등 전문성 신장 기회를 갖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육공무원은 수업일에는 연가 사용이 제한되며, 미사용 연가에 대한 보상이 없다. 휴업일에 교감은 당연히 교무실에 출근해야 한다는 조직문화는 개선되어야 한다. 반면 학교 행정실에는 수업일·휴업일 상관없이 장기재직휴가·학습휴가·연가 등을 사용하며, 사용하지 않은 연가는 보상받을 수 있다. 교육공무직도 마찬가지다. 휴업일 중 발생하는 교무업무를 원격업무로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는 이미 갖춰져 있다. 휴업일에 교감이 교무실을 혼자 지키며 시간을 보내기보다, 다양한 연수 참여와 교육자료 수집·연구 분위기 조성으로 교직소양을 갖춰 전문성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육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교감을 컨설팅 위원으로 위촉해야 한다. 교감들 대부분은 교사시절에 누구보다 열심히 교육활동을 한 사람들이다. 교감들은 소속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컨설팅을 통해 우수사례를 확산하는 코디네이터가 되도록 해야 한다. 타 학교 컨설팅 방문을 통해 각 학교의 우수사례도 경험할 수 있게 되고, 적극적인 학교 간 소통을 위한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감다움은 시대에 맞춰 변해야 한다. 교감은 학교장과 교사들이 빛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인비져블맨이다.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코디네이터로서 교육공동체의 성장을 촉진하는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 더불어 학교 간 커뮤니케이터로서 항상 존재감 있는 적극적인 학교구성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영주 서울오정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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