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프랑스, 교사와 학생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2023.03.06 10:30:00

거리로 나선 중·고생들
프랑스 교육계가 심상치 않다.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도화선이 되면서 학생과 교사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13일 파리 19구에는 2~300명의 교사·학부모·아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파업으로 인해 프랑스 전체 187개의 학급이 폐쇄된 것에 대한 반대 시위였다.

 

파업 시위와 파업 반대 시위가 공존하는 가운데 하원에서는 연금 법안 심의를 시작했다. 앞서 지난 2월 10일자 ‘레볼루션 페르마넝뜨(Revolution permanente)’ 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 운동연합(le Mouvement national lycéen)을 비롯해 파리 근교의 수많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프랑스 전국학생연합(UNEF)은 3차 시위 때 18만 명, 4차 토요일 시위 때 12만 명이 참여했다고 발표했다. UNEF는 대학 내 기숙사 부족, 정부의 장학금 삭감에 대한 불만과 교내 급식비 삭감 등 학생들의 삶과 연관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며 불평등에 맞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넝테르 대학학생연합의 대표인 빅토르 멍데즈는 “모든 대학이 모두 문을 닫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목표이며 모두 힘을 합쳐 투쟁해주길 바란다” 호소했다. 중·고생들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취업·물가상승·실업급여·학교환경 개선 등의 문제를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의 목소리(La Voix Lycéenne)’ 연합회장 꼴린은 ‘르 에뛰디엉(Le etudiant)’과의 인터뷰에서 “2차 시위가 있던 날 200여 개의 고등학교가 문을 닫았고 일드 프랑스 지역 30개 도시에서 300여 개의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졌다”라고 전했다.

 

파리뿐 아니라 보르도·투흐·브장송 등 지방 지역에서도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브장송의 십여 명의 고등학생들은 “우리는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일한다”라고 외치며 거리 행진을 했다. 2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이번 연금개혁 때문에 우리 아빠는 2년 더 일해야 하고, 우리 엄마는 그보다 더 많이 일해야 한다. 이건 불공정하다”라고 외쳤다. 


보르도 몽테스키외 고등학교 앞에는 새벽 6시부터 14명의 학생이 쓰레기통과 바리케이드로 건물 입구 두 곳을 막아 다른 학생들의 등교를 방해했다. 파리 20구의 볼테르 고등학교 앞에는 십여 명의 학생이 입구를 막았고, 일부 학생들은 대중교통이 없어 등교조차 못했다. 물론 모든 지역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아무 문제없이 학교수업을 받는 학교도 있다. 

 

매달 한 번, 교실 대신 거리로 나서는 교사들 
교사들의 연금반대 시위 참여도 두드러진다. 1차 시위 후 교육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들의 시위 참여율이 42.35%, 중·고등학교 교사는 34.66%로 평균 참여율이 38.5%라고 발표했다. 2차 시위 때는 25.92%로 참여율이 떨어졌고, 3차 시위 때는 14,17%까지 더 떨어졌다. 참여율이 떨어진 이유는 리옹·그르노불·보르도 등이 포함된 A존 지역(8개 교육청)이 2주 동안 겨울 스키 방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월 13일과 20일에 파리에서는 코로나에 대비해 학교의 명확한 방역지침과 교사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줄 것을 요구하는 교사노조의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교사라는 직업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피곤한 직업이다. 정년을 늘리고 연금을 늦추는 건 말도 안 된다. 좋은 근무환경을 먼저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항의했다.


4차 시위현장에서 만난 영아 담당 보조교사 에밀리(Emilie)는 “나는 22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아기들을 돌보고 재우느라 등과 어깨통증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 이 생활을 2년을 더 해야 하나? 마크롱 대통령이 내 일을 1년이라도 해보고 그런 말을 해봤으면 좋겠다”라며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필자의 딸아이 담임도 정기적으로 매달 한 번씩 시위에 참여하면서 수업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받아줄 수가 없다고 했다. 출근해야 하는 필자는 급하게 이웃들에게 부탁해 아이를 맡겼다. 그 후로는 하루에 100유로(시간당 10유로+점심+간식)를 현금으로 지급하며 아이돌보미에게 아이를 맡겼다.

 

매달 100유로씩 지출되는 것에 화가 잔뜩 나 있던 어느 날, 그날도 여전히 담임교사는 시위 참석을 위해 결근했다. 딸아이를 봐줄 수 없다는 다른 교사의 말에 “내가 오늘 아이돌봄 비용으로 100유로를 지출하는데 영수증 가져올 테니 학교에서 나한테 환불해라”라고 소리치자 그제야 “그럼 너희 딸만 특별히 돌봐줄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필자는 아이를 학교에 맡기고 일할 수 있었다. 물론 아이가 제대로 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그냥 아이들을 맡아주는 수준이다. 프랑스는 교사들의 파업권을 보장하는 나라다. 그러나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자 결국은 교사를 탓하기보다 교사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주지 않는 교육부를 탓하게 됐다.

 

보조교사들의 지속적인 파업도 이미 몇 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30% 떨어진 교사의 수와, 국가에서 시험응시료 200유로를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학교보조 교사의 수는 턱없이 부족해 업무부담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프랑스는 몇 해 전부터 부족한 교사수를 은퇴한 교사를 동원해 충원하고 있다.

 

고강도 노동에 저임금, 학교를 떠나는 교사들
한 반에 24~28명의 아이들을 혼자 감당하는 바람에 교사들의 정신적·체력적 소모가 많으며, 교사가 되기 위해 석사까지 공부한 것에 비해 충분치 않은 급여도 문제다. 한때는 방학 때 함께 쉴 수 있다는 장점에 교사라는 직업이 좋은 직업으로 평가되었지만, 실제로는 다음 학기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부담과 노동력에 대한 보상이 부족하면서 인기가 하락했다.


보조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에 비해 책임감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만 급여가 낮다. 풀타임 근무가 아니어서 중간중간 쉴 수 있지만, 아침 7시 30분부터 18시 30분까지 학교를 지켜야 하는 단점 때문에 많은 보조교사들이 다른 직업을 찾아 학교를 떠나고 있다. 장애인학생 수업을 도와주는 장애인 동행 보조교사도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에 불만을 터트렸다. 

 

시위현장에는 아이들과 동행한 가족들이 많았다. 공연 연출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어린 두 딸과 함께 현장을 찾아 “나의 일이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의 일이기도 하다. 당연히 현장에 나와 함께 해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최대 학부모 연맹인 FCPE는 공식사이트를 통해 이번 연금개혁 시위는 우리 모두의 일이며, 교사들에 대한 지지와 모든 직업을 가진 이들과 함께 단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 학생들도 시위할 수 있고, 교사들도 자신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시위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며 모두의 권리를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가 팬데믹 시대에 학교 문이 닫히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프랑스도 학교가 폐쇄되자 부모들이 일을 할 수 없었고,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코로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급히 학교 문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계는 혼란스러웠다.


이번 연금개혁 시위는 단순히 연금을 2년 늦게 받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교육부의 혼란스러운 정책, 교사들의 근무환경에 대한 불만, 어린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정부에 대한 불신, 몸으로 느끼는 불평등이 학생과 교사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 


프랑스 교육계의 몸살은 비단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교사들이 투쟁하기 위해 학생들을 버리고 교문 밖으로 뛰쳐나가기 전에 교사들의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는 방안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표정희 전 EBS 프랑스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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