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그들만의 책임일까?

2023.04.07 09:02:37

 

학교폭력에 대해 국가·사회적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폭력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학교폭력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
첫째, 발생한 피해와 상처의 회복이 부재한 것이 원인이다. 연구에 의하면 ‘가해자의 44%가 피해경험이 있고, 피해자의 54%가 가해경험1’이 있다. 가해학생들을 만나보면, 그들도 따돌림이나 배제·혐오 등 다양한 폭력 피해경험이 있다. 이로 인한 피해가 회복되지 않은 채 방치되면 새로운 폭력을 낳게 된다. 아물지 않은 상처와 트라우마는 다시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향하는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 구조적 접근의 부재가 원인이다. ‘폭력’은 가시적으로 보이는 직접적 폭력(구타·욕설·혐오 발언·테러·강간)과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구조적 폭력(폭력을 정당화하는 전통·신념, 차별·선입견, 부정부패와 사회불평등, 빈곤)이 있다. 문화적·구조적 폭력은 직접적 폭력의 근본 원인이 된다. 문화적·구조적 폭력이 해소되지 않은 한, 학교폭력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지금의 학교폭력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동·청소년 개인들이 아니다. 아동·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폭력적인 문화와 불평등한 사회구조다. 학교폭력 문제해결 과정에서 구조적 문제를 다루지 않는 한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셋째, 창의적 접근의 부재가 원인이다.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문제는 사고 자체가 아니라 사고의 과정’임을 강조하면서, ‘과정의 문제’를 놓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제정신이 아님이란 유사한 일을 반복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제해결 방법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 봐야 한다. 그러나 2004년 「학교폭력대책에 관한 법」 공포 이후로 학교폭력은 일관되게 엄벌주의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가해자 처벌 강화’ 여론이 형성되고, 정부와 교육부는 이에 반응하여 더 강한 엄벌정책을 발표해왔다. ‘과정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채, 유사한 정책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은 창의력과 유연성을 발휘하여 협력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학교폭력의 교육적 해법
무엇보다 학교폭력의 모든 해결과정은 아동·청소년의 성장을 돕는 교육적 접근이어야 한다. 그러면 학교폭력의 교육적 접근은 무엇인가?

 

첫째, 성장지향적 접근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학생을 ‘통제가 필요한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통제대상으로 여겼다. 더불어 교육의 주된 관심은 ‘미성숙한 학생의 부정적 행동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였다. 그러나 학생들의 미성숙함이란 존재론적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생물학적 발달단계로서의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학생에 대한 교육적 관점은, ‘학생들은 발달과 성장의 과정에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열린 존재’가 되어야 한다. 더불어 바람직한 교육은 학생들의 성장과 존재를 단정 짓지 않고, 그들의 내적 강점과 잠재력을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학교폭력의 해법은 잘못을 한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이 타인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자각하게 하고, 행동의 책임을 지게 하는 성장지향적 접근이 되어야 한다.

 

둘째, 회복적 정의에 기반한 접근이다. 회복적 정의는 처벌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인 응보적 접근의 한계를 보완하고, 피해회복에 방점을 둔 접근이다. 회복적 정의는 잘못을 규칙 위반에 한정하지 않고, 존엄과 관계의 침해가 발생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문제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에 집중하고, 피해회복을 위한 책임 있는 구체적 실천에 주목한다. 피해회복의 과정에는 개인 당사자와 공동체가 참여해야 한다. 이는 모든 문제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문화적·구조적)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복적 정의에 기반한 접근은, 침해된 존엄과 관계, 피해와 책임, 공동체와 정의의 회복을 의미한다. 회복적 정의는 대화를 통해 만들어 가는 과정이며,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회복적 대화모임(서클)이 있다. 

 

회복적 대화모임과 실천사례
● 첫째, 회복적 대화모임
회복적 대화모임은 ‘공동체가 겪고 있는 갈등에 대해 서로를 비난·공격하거나 회피하는 방식이 아닌, 오히려 갈등을 환영하고 지원하고 직면하여 성장과 배움의 기회로 삼기 위한 것’이다. 회복적 대화모임의 과정은 ‘사전 모임 → 본 모임 → 사후 모임’으로 진행된다. 

사전 모임이란 진행자와 당사자 간의 1대1 대화모임이다. 발생한 사실과 갈등의 핵심내용을 확인하면서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듣는 시간이다. 대화 말미에 본 모임의 참여 동의를 확인한다. 


본 모임은 회복적 대화모임에 참여하기로 동의한 사람들의 대화모임이다. 회복적 질문을 통해 피해로 인한 고통과 책임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대화 말미에 책임과 재발방지 및 예방을 위한 약속을 합의한다.
사후 모임은 본 모임 이후 일정한 모니터링 시간을 가진 뒤에 다시 만나는 것으로 대화모임 이후의 상호복지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 둘째, 회복적 대화모임의 실천사례
A(중1. 남)와 B(중2. 남)는 우연히 거리에서 시비가 붙었다. C(고1. 남)가 A와 B의 싸움을 부추기면서 B가 A에게 일방적 폭력을 가했고, 그 일로 A는 코뼈가 부러졌다. A의 부모가 B·C를 경찰에 신고했고, 이후로 B와 C는 보호처분을 받게 되었다. A는 B·C에게 사과받기를 원했고, 자신을 왜 때렸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법원의 도움을 받아 A는 1대1로 B와 C를 각각 회복적 대화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

 

대화모임 중에 A는 코뼈가 부러졌던 고통과 후유증, 그리고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B는 지나가던 A가 자신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고,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때렸다고 했다. 그리고 B는 A의 고통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는데, 그 말을 듣기 전에는 억울한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기 행동이 후회스럽고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C와의 대화모임에서 C는 어린 동생들에게 싸우도록 부추긴 자기 행동이 후회스럽고, 그 일로 크게 다친 A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A는 B와 C의 진심어린 사과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했다. 그리고 회복적 대화모임에 참여해준 B와 C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후 A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고, 학년말에 어려움을 극복한 학생으로 장학증서를 받기까지 했다. 


회복적 대화모임이 열리기까지 쉽지 않았다. 부모들과 많은 대화가 있었고, 아이들의 성장과 회복을 위해 사과와 용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모아져서 가능했다. 부모의 이해와 지지 속에서 학생들이 용기를 내기까지 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자책과 후회, 두려움을 안전한 공간에 내놓으면서 사과와 용서의 시간을 가졌고, 아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돌보며 회복해 나갔다.

 

마무리
앞에서 언급했듯이, 학교폭력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학생 개인과 공동체의 피해회복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정부는 2012년 학교폭력근절대책을 발표하면서 학교폭력 조치결과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게 하는 강력한 엄벌정책을 발표했고, 그로 인해 단기간의 학교폭력감소 효과를 보았지만, 오히려 후유증으로 학교는 법적 쟁송의 장이 되어 버렸다. 학교는 교육기관으로서 교육적 해결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일부 교사단체에서 지속적으로 학교폭력문제의 회복적 접근을 주장해왔고, 2019년 교육부는 다소 정책의 변화를 발표했다. 그것이 ‘학교장 자체 해결제’와 ‘관계회복 프로그램’이었고, 이로 인해 회복적 대화모임을 진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후 2022년 학교폭력의 교육적 대응 강화를 위해 시·도교육청별 ‘관계회복 현장지원단’ 구축 정책이 발표되었다. 이러한 정책변화는 학교폭력의 회복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반가운 소식들이다. 


하지만 현재 「학교폭력대책법」은 큰 틀에서 기존의 형사사법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가해자 처벌 강화의 여론에 밀려서 교육부는 엄벌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교육부는 교육적 소신을 가지고 학교폭력에 대한 회복적 관점의 필요성과 가치를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박숙영 평화비추는숲 대표 jebo@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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