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선의 궁이다 창덕궁, ‘얼쑤’ 돈화문 국악당 

2023.05.08 10:30:00

산책은 어슬렁거리고, 기웃거리고, 생각 없이 들어가 보는 호기심 어린 동작이다. 정해진 코스가 있든 없든 산책의 주제어는 ‘슬슬’이다. 도심의 떠들썩함 뒤로 거짓말같이 평화로운 산책길이 펼쳐지는 ‘창덕궁 후원의 서쪽’ 원서동은 이른바 ‘어슬렁 슬슬족’들의 구역이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하급관리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이었다지만, 현재는 ‘인사미술공간’, ‘은덕문화원’ 등의 문화공간과 ‘전통 홍염공간’, ‘북촌 단청공방’ 등이 자리하고 있다. 골목 끝에서 고희동 미술관을 들어갔다 빨래터까지 돈화문에서 직선으로 걸으면 10여 분이지만 한두 시간이 걸릴 수도, 반나절이 걸릴 수도 있는 마법 같은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원서동에는 창덕궁이 있다. “우리 좀 걷자”라며 원서동에 갔는데, 창덕궁을 패스하는 것은 반칙이다. 창덕궁을 한 번만 가보았다면 이거야말로 법에 어긋날 일이다. 창덕궁은 사시사철 매년 가는 것이 ‘국룰’이다. 
 
나쁜 마음은 모두 흘려보내고 입궐하라!
창덕궁은 1405년(태종) 건립 이래 가장 오랜 기간 임금들이 거처한 궁이다. 명령은 잔인한 시간(형제의 난)을 잊고 싶었던 태종이 하였으나, 세계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게 만든 일등공신은 아름다운 건축들과 응봉자락의 산세이다. 가장 오랜 기간 임금들이 거처하며 위엄과 품격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수많은 왕과 왕비의 사랑을 받더니 최근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의 폭발적 사랑까지 받으며 창건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입궐하면 화려한 단청의 이층누각인 돈화문을 통해 금천교에 이른다.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궁글어 2개의 홍예를 튼 진입로가 우아하다. 


돌다리에서 나쁜 마음을 씻고 입궐하라고 만들었다는데, 신하들이 잘 지켰는지는 모르겠다. 물길은 투명하나 사람의 마음은 확인할 길이 없으니. 홍예와 홍예의 사이 귀면형의 부조와 남쪽의 해태상(산예), 멍엣돌 위 천록은 굳이 해설사의 설명이 없어도 지나치기 쉽지 않다. 이들의 임무는 재앙이 제때 도착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벽사(辟邪)와 국태민안에 힘쓰시며, 비바람에 닳고 닳아 둥글둥글 이제는 귀여운 모습이시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다시 천 년 동안 부디 사직을 지켜주시길 부탁드려본다. 화려한 단청의 중층 전각 인정전은 창덕궁의 법전으로, 희정당은 침전에서 임금의 집무실로 용도 변경된 곳이다. 두 곳 다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건축하여 당대 건축양식이 드러나는 소중한 곳이다. 

 

1천도의 뜨거움을 견딘 인고의 파랑
인정전 동쪽의 파란 기와 건물 선정전은 왕이 고위급 신하들과 조정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하는 편전이다. 궁궐 내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기와는 도자기만큼 시간과 정성이 든다. 선정전 청기와는 특히 회회청이라는 중동산 특수안료와 고가의 염초가 어우러져야 했기에 기와 한 장에 집 한 채라는 후일담이 있다. 청기와 한 장에 여덟 냥이었다는데, 경복궁 중건 시, 대원군이 민가 한 채 보상비 가격으로 다섯 냥을 주었다 하니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선정전 기와의 파랑은 1천도의 뜨거움을 15시간씩 이겨내고 3일 동안 고르게 숙성하는 인고의 시간을 버티어 탄생하였다. 더하여 쨍한 햇살과 눈비를 몇백 년 받아내고 있는 파랑이라 생각하니 대견하고 기특하다. 


양끝에 넙적한 두 개의 독은 드무이다. 목조 건물 화재 시 물을 담아 두었다가 진화하기 위한 용도에다 불귀신이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니 그 귀신이 약간 모자라는 축에 드나 보다. 헌종이 김재청의 딸 경빈을 맞이하며 지었다는 낙선재는 가장 최근까지 조선의 흔적을 안고 있는 곳이다. 여느 사대부 집과 같은 구조로 단청도 하지 않아 소박하고 다정한 우리네 전통가옥이다. 그러나 수준 높은 다양한 문양의 창호들이 예사롭지 않은 이의 공간임을 알려주고 있으며, 특히 누마루와 그 뒤 온돌방 사이의 달이 꽉 들어찬 만월문은 달 없이도 달을 사가에 들여놓은 로맨틱함이 사랑스럽다.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한다 
인정전·선정전·궐내각사·대조전을 지나 당도하는 후원이야말로 궁궐 나들이의 꽃이다. 이곳은 면적이 6만 평에 이르는 임금님의 산책지이다. 온갖 사극의 핫스팟으로 전 세계에 ‘내가 조선의 궁이다’라며 미친 존재감을 떨치고 있다. TV 드라마 <킹덤>과 <옷소매 붉은 끝동>의 인기를 놓칠세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발 빠르게 경복궁·창경궁·덕수궁 영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도 하였다. 


영화당 우측마당에서는 왕이 친전하는 최종단계의 과거시험이 펼쳐졌단다. 주합루 내부는 규장각이라 칭하는 창덕궁 후원 내 왕립도서관이자 학문을 연마하는 연구소이다. 500년 젊은 꿈들의 기운에 더 나은 세상을 이루려는 정조의 의지까지 더해진 이곳이야말로 문예부흥의 메카이다.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부용지 수면은 발을 담근 초석으로 인해 부용정 안에서 바라보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하다. 오! 이 신박함이라니. 부용정에서 관료들과 시회를 주관하던 정조는 정해진 시간에 시를 짓지 못하는 관리를 부용지 가운데 작은 섬에 귀양 보내고 부용정 앞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전한다. 장난도 지나치시지. 귀양 보내진 신하의 서늘해진 간담은 어쩌라고…. 위로 오를수록 후원의 깊은 숲 냄새가 짙다. 가장 깊은 곳에 바위를 깎고, 홈을 파 물길을 만들었다. 수려하고 현란한 물길로 술잔을 띄우며 시를 읊는 ‘유상곡수연’을 펼쳤다 한다.  


최근 공적기관 행사 중 가장 뜨거운 찬사를 받는 행사는 ‘창덕궁 달빛기행’이다. 제목을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달빛 아래 청사초롱 불 밝히고, “문을 여시오”라는 수문장의 외침과 함께 금천교·진선문·인정전·낙선재·부용지·애련정·연경당, 후원 숲길로 이어지는 야간 기행이라니.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합니다’라는 평화롭지만, 진심이 담긴 그들의 활약에 박수를 보낸다. 달빛기행은 낮에 걷는 창덕궁과는 차원이 다르다. 해설사는 오백 년 조선왕조 속 왕과 왕비를 살려내고, 권력과 파멸 사이에 갇힌 숱한 영혼들의 몸부림을 위로한다. 청사초롱이 어두워 살짝 옆 사람의 팔짱을 끼게 만드는 효과도 있으니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을듯하다. 그러나 올해도 단 1분 만에 매진되었다니 도대체 그 사람들 손끝은 무엇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국악, 세계인의 심장에 꽂히다. 돈화문 국악당
놀다 보면 하루해가 너무나 짧다. 창덕궁을 나와 창덕궁 삼거리에서 좌측을 바라보니 저녁노을 아래 ‘돈화문 국악당’이 우뚝 서 있다. 여느 대가 집의 풍모보다 기운차게 하늘을 향해 치켜든 처마와 장식기와가 멋지다. 2000년 중반 즈음 심상찮은 기운이 국악계에 번져가기 시작했다. 잠비나이, 악단 광칠, 고래야 등 우리 귀에 익숙한 국악 그룹들에 더하여 퓨전 국악그룹 비단, 국악 앙상블 ‘불세출’, ‘숨’ 등의 등장으로 국악의 판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새로운 판소리에 전자음악을 입히고, 빠른 박자에 중독성 강한 노랫말, 파격 실험과 퍼포먼스 등 형식과 내용은 물론 작곡·연주·연출·기획에 이르기까지.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는 ‘아름답게 낯설다’라는 평가를 쏟아내며 열렬히 환호했다. BTS 슈가의 ‘대취타’가 세계 아미들의 떼창으로 불리어지던 시기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 ‘Feel the Rhythm of Korea’ 또한 3억 뷰 이상의 흥행 대박을 터트렸다. 


서울시가 창덕궁 맞은편 주유소 부지를 매입, 국악 전문공연장 조성을 결정한 것도 이들이 막 수면으로 떠올라 떠들썩하던 시기이다. ‘돈화문 국악당’에서는 2016년 개관 이후 대금·가야금·장고·태평소 등 다양한 우리 악기의 연주와 판소리를 비롯한 소리창이 울려 퍼졌다. 무엇보다 무대를 완성시키는 최고의 공은 이들 모두를 자연 음향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한 건축설계에 있다. 무대를 바라보고 A부터 H, W까지 1부터 21까지 어느 좌석에 앉아 있어도 자연 청음이 가능하고, 서로 엇갈린 좌석 덕분에 시야도 자유롭다. 140석 규모의 객석과 창작자가 하나 되는 공연장 내부는 옛 창틀로 디자인하여 품격이 돋보인다. 무명의 기나긴 세월을 예술이라는 자부심으로 견디어낸 선배들과 ‘굶어 죽어도 놓지 않겠다’는 후배들이 엮어낸 감동적인 성과는 관객들에게 ‘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최고의 공연’이라 칭송하게 만들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진심인 20~30대가 국악당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와 ‘얼쑤’를 외치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2만 원대의 공연료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책을 읽는 것은 숲속의 산책과 같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 같은 범인은 산책으로 길 위에 펼쳐진 이야기를 읽어낸다. 어제를 읽고 오늘을 느끼며 내일로 향하는 것, 그리하여 우리의 산책은 계속될 것이다.

 

 

글 | 양인숙 전 리라아트고 교사, 그림 | 박지숙 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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