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계를 넘어 비상한다”

2023.05.08 10:30:00

‘꿈·보람·감동’의 서울신서중 

 

“신서인이여, 한계를 넘어 비상하라.” 손기서 서울신서중학교 교장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학생들이 좌절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당당하게 도전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월드컵 축구 대표팀이 남긴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와 맥을 같이한다. 


지난해 9월 부임하자마자 ‘꿈·보람·감동’을 학교경영의 키워드로 삼았다. 학생에게는 꿈을, 교사에게는 가르치는 보람을, 학부모에게는 감동을 안겨주는 교육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는 모든 교육구성원과 수시로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원팀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원팀’이 된 신서중, 활화산처럼 폭발한 학교분위기 
침체됐던 학교분위기는 어느 순간 으라차차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단초는 운동부였다. 지난해 선서중은 지역 스포츠리그에서 축구와 농구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 풋살은 준우승에 올랐다.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우승 트로피를 받아본 적이 없는 학교였다. ‘꿈꾸는 신서인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이 학교 곳곳에 걸렸고 학생들 얼굴엔 자신감이 넘쳤다. 


그해 가을 열린 학교축제는 신서중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공연이 시작됐지만, 웬일인지 조명이 들어오지 않았다. 암흑이 빛을 몰아낸 당혹스러운 순간, 누군가 객석에서 스마트폰 조명을 켜 무대 쪽으로 흔들었다. 이내 학생들도 스마트폰을 꺼내 들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전교생 1천여 명이 비추는 불빛이 흰 물결을 이루며 가을밤을 수놓았다. 학생들은 극적인 반전 이벤트에 열광했다. 


사실 이날 스마트폰 조명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축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조명업체가 갑자기 철수해 버린 일이 발생했다.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이를 전해들은 손 교장은 일단 교사들을 안심시킨 뒤,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껏 기대하고 있는 학생들을 실망시키면 축제 분위기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코로나19로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축제였기에 어떻게든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컸다. 이내 축제가 시작되고 하이라이트 무대가 열리는 순간, 객석 맨 앞에 앉아있던 손 교장이 스마트폰 조명을 켜 흔들었다. 학생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조명을 없애고 스마트폰 불빛으로 대체한 것이 미리 계산된 연출이라고 여긴 학생들은 손뼉을 치며 열광했다. 축제는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며 대성공을 거뒀다. 교장실엔 지금도 당시 상황을 알리는 커다란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그날을 학생들이 오래도록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학교경영은 소통이다
 

손 교장은 소통의 교장이다. 크고 작은 교육활동을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과 SNS를 통해 수시로 소통한다. 모든 교육구성원이 학교 살림살이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을 정도다. 


실제 학생들이 수련회를 떠난 지난 4월 14일. 언제 어디서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진행상황이 실시간으로 학부모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현장 인솔교사가 사진을 찍어 손 교장에게 보내면 이를 다시 학부모 단체대화방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석면이나 냉·난방 등 학교공사를 할 때면 공사 진행상황도 일일이 사진을 찍어 알려줬다. 


학교 현관에 걸린 디지털액자에 들어가는 글자체 하나에도 학부모 의견을 반영한다. 손 교장은 “글자 바탕색이나 글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여섯 번이나 수정한 경우도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학부모 의견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학생들과 연관된 일이라면 사전에 알려주고 의견을 들어 실행에 옮긴다. 학교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교문 근처 느티나무가 학생들 통학로에 방해가 된다는 배움터지킴이의 건의가 있었다. 손 교장은 즉시 나무가 서 있는 위치의 사진을 찍어 학생대표에게 보냈다. 편안한 통학로 확보를 위해 옮겼으면 하는데 학생들 생각이 듣고 싶다며 의견을 구한 것이다. 지난 3월 신입생 입학식 때는 손 교장과 학생회장이 공동으로 환영사를 해 학부모들로부터도 큰 박수를 받았다. 학생이 공교육의 주체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학교 예산내역도 소상히 공개한다. 이번에 추진하려는 사업은 무엇이고 왜 하려는 것인지, 그리고 어디서 얼마를 지원했는지 등을 모두 밝힌다. 번거롭고 불편할 법하지만 ‘소통’이 학교경영의 제1덕목이라고 했다.


얼마 전 손 교장은 학교급식조리원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휴게실에 안마의자 등을 설치해 준 데 대해 고맙다는 뜻을 보내왔다. 편지에는 ‘항상 애정 어린 관심과 따뜻한 배려에 감사드린다.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맛있는 급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손 교장은 “여교사 휴게실에 헬스케어 제품과 안마의자를 들여놓으면서 조리종사원 휴식공간에도 같이 설치하도록 했는데 맛있는 급식이 돼서 돌아왔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앞서 근무했던 강서양천교육지원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인사이동으로 교육지원국장을 떠나게 되자 장학사들이 감사의 뜻을 담은 앨범을 선물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한 장학사는 “국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고 어려운 일은 앞장서 해결해 주는 덕분에 복 많은 장학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전국 최초 발달장애인 야구대회 개최 
신서중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게 또 하나 있다. 플로피 건물 기둥에 걸려있는 커다란 사진들이다. 세종대왕부터 일론 머스크, 배구선수 김연경, 개그맨 유재석 등의 얼굴이 보인다. 학생들이 투표를 통해 존경하는 인물 10명을 선정하고 그들을 본받자는 취지에서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를 매겨 사진을 걸어 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손 교장 사진도 있다. 그는 학생투표에서 10위를 차지했다. 교장이 유명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인기를 얻는 것은 극히 드문 일. 톱10 안에 든 비결을 묻자 “내년에는 어떨지 모르죠. 탈락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네요”라고 한다.


유재석과 김연경 씨 등 유명인의 사진을 걸 때는 곡절도 있었다. 초상권 문제 때문에 위탁했던 업체가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자 손 교장이 직접 기획사에 연락해 허락을 받았다. 6위를 차지한 황희찬 선수의 사진은 축구협회를 통해 영국 현지 구단의 승인을 받아냈다. 


이처럼 손 교장은 웬만한 대소사는 직접 한다. 학교 홍보물도 사진 편집은 물론 카피까지 직접 쓴다. 언론사에 보내는 보도자료 역시 그가 전담한다. “우리 학교 슬로건이 꿈·보람·감동이잖아요. 교사들이 보람을 갖기 위해서는 수업과 생활지도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래야 학부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죠.” 
손 교장은 또 웬만한 결재는 교감이나 행정실장에게 위임한다. 재량권을 갖고 소신껏 일하라는 취지에서 아예 도장까지 맡겼다. 대신 책임은 교장인 자신이 진다고 했다. 그는 “교장은 학교를 통할하는 사람이어서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가 요즘 가장 공들이는 것은 오는 6월 신서중에서 국내 최초로 열리는 이만수배 발달장애인 티볼 야구대회이다. 프로야구선수 출신 이만수 전 SK 감독과 손잡고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체력증진과 사회적응을 위해 마련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시중은행과 교회 등 각계에서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손 교장의 노력은 이뿐 아니다. 학생 통학로에 콘크리트 화단이 놓여있어 장애학생들이 불편을 겪자 과감하게 해체하고 휠체어 등이 원활하게 다닐 수 있도록 개선했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교육받을 기회는 공평하게 제공돼야 한다는 손 교장은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학교 현관 출입구에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그의 장애이해교육 열정을 높이 산 KBS는 장애인을 다룬 특집 드라마 <갈채> 시사회를 신서중에서 열고 학생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한편 사라진 화단 근처, 통학에 불편을 주지 않는 자리에는 학생들이 꿈을 이루기를 기원하는 ‘‘꿈 소망석’이 세워졌다. 지난 3월 열린 꿈 소망석 제막식에는 이원실 강서양천교육장과 황희 국회의원, 최재란 서울시의원, 유영주 양천구의원, 황현준 학교운영위원장, 최은영 학부모회장, 김호석 학생회장 등이 참석했다.

 

손 교장은 우리나라 IT 활용교육의 소위 1세대 멤버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실시되면서 주목받은 미러링 학습을 교직 5년 차 교사이던 1994년부터 교실수업에 도입한 인물이다. 컴퓨터 화면을 교실 TV로 송출하면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이 기법은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교육부장관 표창까지 받았다. 


지난 2020년에는 미래교육포럼 공동대표를 맡아 인공지능기술을 교육현장에 접목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손 교장은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인성과 창의력은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며 “학생은 꿈을 실현하고 교사는 보람을 느끼는 교육현장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월간 새교육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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