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 시대에 바람직한 스승상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의 말이 되어 버렸다. 요즘 교실에서 선생님을 폭행하고, 선생님을 희롱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선생님을 고발하는 일이 뉴스에서 전해질 때마다 걱정과 안타까운 마음을 억제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일찍 교직을 떠나는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마저 종종 듣는다. 과연 우리 시대에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왜 이렇게 되었고 디지털시대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없는지 고민하게 된다.
20세기 산업화시대의 교육은 정형화된 전문지식의 습득이 제일 중요했다. 전문지식을 습득하여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처럼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어 공부 잘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적이 되었고, 학부모들은 유치원부터 선행학습 등으로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고 다른 친구들에게 지지 않는 것을 자식교육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도 지식을 더 잘 전수받기 위한 계약관계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나 지덕체(智德體)의 교육은 사라졌다. 도덕이나 가치, 팀 스포츠 등과 같은 신체발달, 미술·음악 등 예술교육보다도 지식만이 최고의 가치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으로 공교육에서 스승의 위치는 설자리를 잃고 사교육에서 지식전수만을 효율적으로 잘하는 일타강사 같은 사람들이 존경받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새로 생긴 중학교라서 다른 여러 중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모셔왔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영어선생님이셨는데 기독교인으로서 인품이 뛰어나신 분이었다. 영어도 잘 가르쳐 주셨지만, 아이들의 품성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어느 날 감기로 몸이 아파 책상에 엎드려 있는 나를 보건실로 직접 데리고 가셔서 보건선생님에게 “우리 아들인데 많이 아프네요. 잘 돌봐주세요”하시며 친히 부탁하셨다. 선생님은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중학교는 미션스쿨이었고 새로 생긴 학교라서 교목실이 있었다. 교장선생님 다음에 교감선생님이 아니고 교목선생님이 학교를 지도하던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처음 생긴 학교라서 말썽꾸러기도 많았다. 주말에 영화관에 가거나 담배를 길에서 피우다가 적발되면 무조건 퇴학시키거나 전학시키는 엄격한 교칙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교목선생님은 이런 방침에 크게 반발하셨다. 졸업한 다음에 들은 이야기인데 교목선생님은 퇴학시키려는 학생부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조금 잘못했다고 퇴학이나 전학을 시키는 것은 반대입니다. 교육이 그처럼 쉬운 것이면 누군들 교육자가 되지 못하겠습니까?”
사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인격적 만남이 있어야 하고 선생님은 인생의 롤 모델이 되어야 하는 데 그런 관계가 무너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마 가정에서 학부모들이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지고 지식 전달자로서만 대접하는 책임이 클 것이다. 이처럼 선생과 학생 사이에 신뢰가 깨지게 되면 어린 시절 인생의 푯대를 상실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제 지식 전달은 인터넷강의나 비디오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디지털시대에는 원격교육이나 인터넷강의가 공부하는데 더 잘 맞을 수 있다. 학교현장에서만 인성교육이나 지덕체를 골고루 갖추는 전인교육이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 그리고 선·후배들을 통해서만 직접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현장인 것이다.
노르웨이에 가면 난센학교(Nansen School)라는 곳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가는 학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더 배운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재수학원을 떠올리겠지만, 노르웨이의 난센학교는 삶의 목적과 자신의 가치, 그리고 자신의 장단점을 알아가는 갭이어(gap year)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이다. 노르웨이의 유명한 탐험가 난센이 설립한 학교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발견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미술·철학·역사·연극·음악 등 다양한 체험을 일 년간 선생님과 함께 기숙하며, 스스로 찾아가며 배우는 학교이다. 처음에는 한두 군데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노르웨이 고등학교 졸업생의 20%가 졸업 후 대학을 직접 가는 것이 아니라 일 년간 난센학교에 진학한다고 한다. 정부도 이런 취지에 공감해서 난센학교를 지원하기 시작해서 이제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보편적으로 진학하는 학교가 되었다. 이곳을 졸업한 학생들은 유럽의 명문대학에 더 많이 진학한다고 한다.
교육은 지식만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배우는 것이다. 이제 디지털시대의 선생님은 지식전수는 디지털화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배우도록 하고, 디지털이 할 수 없는 인간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백세시대를 맞아 고등학교까지 배우는 얄팍한 지식의 공부가 평생의 삶을 좌우하지 않는다. 21세기 디지털시대에 정말 필요한 선생님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삶의 롤 모델이 되는 참 스승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