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사라지면 교육이 무너진다

2023.07.05 10:30:00

 

1990년대 말부터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교실붕괴’와 ‘학교붕괴’ 위기가 현실화된 가운데 학교교육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공교육 위기설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무고성 아동학대를 비롯한 교권침해 등 공교육의 존립마저 부정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교육 관련 사안의 인터넷 댓글을 보면 학교교육과 교사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지 쉽게 확인된다. 


학교교육 붕괴현상에 대한 원인 분석과 극복방안들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지만, 학교교육의 본질적 기능은 더 약화됐다. 교사·학생·학부모·교육관계자들 간 불신 풍조가 만연한 것이 작금의 실태이다. 학교교육 붕괴현상이나 교육주체 간 불신 문제는 어떤 특정 요인에 의해 생겼다기보다 사회구조의 변화, 학교를 둘러싼 구성원들의 갈등적 상호작용, 각 주체 간 불신을 유발하는 각종 정책과 법률, 이해할 수 없는 문화트렌드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산업화 사회에서 지능정보화 사회로 변화
공교육 및 교육주체 간 불신의 원인을 거시적 관점에서 찾아보면 사회구조의 변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난 산업화 시대에서는 학교교육이 학생들 미래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학교교육에서의 성취를 통해 직업을 얻을 수 있고 한 번 얻은 직업으로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았다.

 

이렇다 보니 주입식 교육과 체벌 등 부적절한 시스템 속에서도 학교교육은 권위를 갖고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교육은 학생들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성공이 명문대학 진학을 보장할 수는 있지만, 직업세계에서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고 안정적인 미래의 삶을 만들어주지도 못한다.

 

산업화 사회시스템에 정체되어 있는 학교교육은 지능정보화 사회로 변화된 시스템에서 학생들에게 미래사회를 살아갈 역량을 길러주지 못하면서 학교교육은 점점 더 깊은 불신의 늪에 빠져들었다. 

 

교육주체 간 책임 전가와 소통의 문제
학교교육 붕괴와 불신의 원인에 대해 교육주체 간에 생각하는 바가 매우 다르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기초학력 부족, 기본생활예절과 습관 결여, 학업 무관심, 학부모의 가정교육 소홀, 자녀 과잉보호 및 이기주의, 과도한 교육열을 학교교육 붕괴와 불신의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학부모는 교사의 자질 및 노력 부족,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무사안일한 태도, 미숙한 통제 방식, 학생의 기본생활습관 결여, 기초학습능력 부족을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학생은 교사의 학생에 대한 이해와 사랑 부족,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수업방식, 자질 부족을 학교교육 붕괴와 불신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학교에서 원인을 찾는다면 획일적인 교육, 학교운영의 경직성, 면학 분위기를 상실한 교실 등도 원인으로 꼽는다.

 

교육주체들이 바라보는 학교교육 붕괴와 불신의 원인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소통의 부재이다. 교사·학생·학부모·학교는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목표·요구·의견 등에서 차이가 난다. 만약 잘못된 의사소통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여 신뢰를 무너뜨린다.


불신을 키우는 각종 정책과 법률
학교교육 붕괴와 교육주체 간에 불신을 키우는 데에는 정부의 설익은 교육정책과 추진방식도 한몫했다. 정부는 교육개혁을 명분 삼아 교직사회가 원치 않는 교육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밀어붙였다. 또 교육적 관점보다는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관점에서 교육을 이해하려고 하였으며, 일방적이고 지시하달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교육개혁을 주도하였다.

 

관료적이며 행정 편의주의적인 교육개혁 추진은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렸으며, 교사와 학교의 능동적 변화를 가로막아 갈등과 불신을 유발하였다. 또한 수시로 변하는 입시제도와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쏟아낸 정책(늘봄학교·돌봄교실·유보통합·학교시설복합화 등), 시행착오 끝에 존폐기로에 선 교육전문대학원 등은 구성원들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으며 교육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다.


이와 더불어 구성원들의 충분한 의견수렴과정과 토의·토론 없이 만들어 낸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학생인권조례」 등의 일부 조항들은 교육주체를 서로 감시하고 불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특히 가정 내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만든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경우 법적조치가 학교까지 무분별하게 확대·적용되면서 배움·성장·즐거움이 가득해야 할 교실 공간을 법적분쟁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최근 교권침해 이슈와 맞물린 「학생인권조례」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충분한 의견이 반영되지 않다 보니, 교권과 학생인권이 충돌하는 개념이 아님에도 마치 교사와 학생이 싸워서 한쪽이 이겨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이해할 수 없는 문화트렌드
교육을 붕괴시키고 불신을 증폭시키는 원인을 한 가지 더 꼽자면 자녀 양육문화를 들 수 있다. 다음 카페 ‘소울드레서’에 올라온 ‘학부모 진상은 소수가 아니라 대다수의 문화입니다’라는 글을 보면, 자녀 양육문화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자녀 과잉보호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제는 과잉보호를 넘어서서 자녀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고, 자녀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발생하면 이에 대한 개선과 사과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일부이긴 하지만 학부모들의 양육문화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도를 넘는 것은 다반사이고 상호신뢰를 깨버리는 말과 행동이 오가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소진하게 된다. 이것이 정상적인 문화이고 트렌드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다시 신뢰회복을 위해! 교육을 견고히 하기 위해
학교교육의 붕괴와 불신의 원인이 위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훨씬 많을 것이다. 현 상황을 탓하고 내버려 두기보다는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어야 한다. 교육당국은 지금의 문제를 과학적·입체적으로 분석하여 학교교육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하며, 사회 변화와 시대 흐름에 맞게 학교와 교사가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리고 각 교육의 주체들은 각자의 기본 역할을 이해하고 상호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정서적 유대감을 견고히 해야 하며,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의사소통능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학교와 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관계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신뢰회복이 단순한 믿음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상호 간에 헌신·배려·책임감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주체를 각각의 구성원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서 교육공동체로 변화되어야 하며,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고 각각의 역량을 합쳐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만들어지고 교육이 바로 설 것이다. 부모가 행복하면 자녀를 더 행복하게 키울 수 있듯이 교사가 행복해야 교육활동이 즐겁게 이뤄질 수 있다.


 

김지용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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