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섣달그믐날 밤에 대문 밖에 나가면 발에 걸리는 것이 귀신이다.”
유년 시절 까치설날 저녁에 들떠 날뛰던 나를 진정시키려던 어머님의 말씀이다. 설을 앞둔 섣달그믐날이면 이 기억은 참 숙연하게 만든다. 먹거리가 많아 신났고 집안 곳곳마다 불을 켜고 밤을 지새우니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기억의 잔상은 섣달그믐과 설날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서로 다른 그리움으로 서 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날’ 참 정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어릴 적 작은 설날에는 해가 어서 지기를 기다렸다. 밤이면 놋그릇에 쌀 담아 소반 위에 촛불 켜고, 소마구 정짓간에도 구석구석 밝히었다. 또한 촛불마다 이름을 매겨 내 촛불이 작아지고 가물거릴 때 눈물까지 흘렸는가 하면, 조왕신을 모신 부엌의 촛불이 설날 아침 차례 전까지 꺼지지 않도록 돌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섣달은 한 해를 다 보내고 새해 설날을 맞게 된다는 뜻의 ‘설윗달’ 또는‘서웃달’에서 나온 말이다. 또 그믐날의 ‘그믐’은 보름달이 날마다 줄어들어 눈썹같이 가늘게 되다가 마침내 없어진다는, ‘사그라지다’와 같은 뜻의 순우리말 ‘그믈다’의 명사형이다. 한자어로는 제일(除日)이라고도 하는데 제(除)는 옛것을 없애고 새것을 마련함을 뜻한다. 이날은 묵은설이라 하여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일가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데, 이를 묵은세배라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저녁 식사 전에 하기도 하는데, 이날 만두를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한다. 섣달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이므로 새벽녘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새해를 맞이한다. 이러한 수세(守歲) 풍습은 송구영신의 의미로서 우리나라에 역법이 들어온 이래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설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설빔이다. 설빔을 마련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밤을 새워 옷감을 짜고 바느질해서 섣달그믐께에는 모든 준비를 끝낸다. 이렇게 준비한 설빔을 새해를 맞이하는 설날 아침에 갈아입는다. 이를 ‘세장(歲粧)’이라고도 한다. 설빔을 입는 것은 설날부터 새해가 시작되기 때문에 묵은 것은 다 떨구어 버리고 새출발하는 의미와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에 있다. 어른에게는 바지·저고리·두루마기를 하고 어린아이에게는 때때옷 같은 색깔이 있는 화사한 것으로 하며, 특히 부녀자의 치마저고리는 화려한 것으로 하여 호사 한다. 그리고 버선·대님도 새것으로 한다. 이러한 설빔의 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되어 설날에는 한복으로 차려입고 세배하고 나들이하는 풍속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설빔은 1970년대 기성복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기성복으로 대체되었다.
섣달 초부터 설 준비의 모든 일은 부모님의 노고로 시작된다. 어릴 때는 마냥 즐거웠지만 먹거리, 입을 거리 등 녹록잖은 살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에야 알게 된다. 부모님의 설 준비 이면에 숨은 기다림과 애씀, 아쉬움은 섣달과 정초에 말 없는 그리움으로 각인되어 있다.
부모님에게 있어 명절은 어떤 의미일까? 5일 대목장 날 전통시장 주변 버스 정류장엔 허리 굽은 어르신들이 이런 아침부터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새벽 첫 차를 타고 왔을 것이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도 찬 겨울바람 마다하고 자식들 오면 먹일 것이라고 노구를 이끌고 오신 것이다.
자식은 바람(風)이고 부모는 시룻번, 빈 소주병은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한 말을 떠올린다. 세월이 흘러 자식으로 받기만 하다, 이제 부모가 되어 주는 입장이 되니 그때 부모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공감된다. 부모의 마음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보다 더 많이 주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은 끝이 없다.
어떤 방송의 다큐에서 아흔을 바라보는 노부부의 산골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앞산에서 칡을 캐온다. 설에 아들 오면 약해 줄 것이라고 몇 번을 쉬어가면 칡을 집으로 옮기고 펴지 못하는 허리로 씻는다. 담당 피디가 아들보다는 어르신이 드시는 게 맞지 않냐고 하자 죽을 날이 가까운데 자신에게는 필요 없다 한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어도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라며 주름진 깊은 얼굴에 골 웃음이 번진다.
명절이 되면 자식이 고향집을 찾는다. 하지만 자식의 입장은 서운하리만치 다르다. 도회에 사는 자식은 기껏해야 설과 추석이라는 명절에 차례를 지낸다며 선심 쓰듯 부모님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어느 집이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자식을 기다리는 섣달그믐은 설렘으로 다가왔다 하룻밤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자식은 차례를 지내자마자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떠나려고 한다. 부모는 하루 더 있다가라고 말하고 싶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겨우 운전 조심하고 잘 가라는 말만 하고 바라바리 명절 음식을 싼다. 만남도 잠시 멀어지는 자동차를 보는 순간 아쉬움의 목마름은 온몸의 관절은 쑤시고 드러눕게 한다. 자식을 보았을 때 그 기쁨의 진통제가 효력을 다하는 순간이다.
자식이 부모님께 얼굴 보여 드리는 것이 최선의 명함이며 최고의 효도일까? 들풀도 자신의 희미한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향기를 끌어모으는데 자식은 관심과 사랑이라는 그 향기도 끌어모으기가 어려운 모양새다. 부모님의 외로운 마음 밭에 사는 자식이라는 이름의 꽃은 명절이 되면 피우자마자 시드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멀어지는 자식을 보며 우두커니 마른 손 비비는 부모님은 평생 자식의 내일을 꽃피우기 위해 왁자한 풀벌레 소리 가득한 흙을 만졌다. 그 손끝에서 논과 밭이 향기로워졌다. 가난한 자식의 미래를 깁고 서글픈 현실을 꿰매며 모자란 희망들을 덧대고 덧대면서 여기까지 왔다. 설날 자식과 헤어짐이 따끔따끔 아려왔지만, 다시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상처를 꿰맨다.
여전히 부모의 마음에 자식은 바람으로 불고 있다. ‘야들아, 너희들이 이래도 부모 마음을 가장 잘 안다고? 뭐야, 잘 안다고?’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는 유년의 추억이란 마음의 눈으로 어려움을 넘는다. 하지만 우리는 너나없이 삶의 경쟁 속에서 원시가 된다. 이번 설에 자식은 마음의 눈이 근시가 되어 주변에 흩어진 소박한 부모님의 행복을 살피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