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20분. 아이들이 등교하려면 아직 한 시간 남짓 남은 시간. 텅 빈 복도에 발자국 소리 하나 없는 그 시간에, 김진숙 선생님은 어김없이 급식실 문을 연다.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모를 쓰고, 손을 씻는다. 그리고 오늘 하루, 200명 넘는 아이들의 배를 채울 준비를 시작한다.
18년.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절반이고, 누군가에게는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전부인 시간. 김진숙 선생님은 그 긴 세월을 급식실에서 보냈다. 몇 그릇의 밥을 지었을까. 몇 번의 국을 끓였을까. 몇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만든 밥을 먹고 졸업했을까. 셀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모든 밥 한 그릇에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김진숙 선생님을 만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정년퇴임 기사'라는 형식적인 글을 쓰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뷰가 끝나고 급식실을 나서는 순간 이건 단순한 퇴임 기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는 급식실 한켠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김진숙 선생님은 연신 손을 비비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라고 했다. 18년 동안 수많은 아이들에게 밥을 지어준 분이,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색해했다.
"선생님, 35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예요?" 질문에 김진숙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졸업식 날이요. 3학년 아이들이 급식실로 찾아와서 '선생님, 그동안 밥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할 때. 그때마다 눈물이 나요."
선생님의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저는 정말 밥밖에 해준 게 없거든요. 공부를 가르친 것도 아니고, 상담을 해준 것도 아니고. 그냥 밥만 했는데... 그런데 아이들이 그렇게 고마워해주니까."
말끝을 흐리는 선생님을 보며, 생각했다. '밥밖에'라고 했지만, 그 '밥'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을지. 배고픈 청소년기, 학교에서 먹는 따뜻한 밥 한 끼가 하루를 버티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힘든 가정환경의 아이에게는 그 밥 한 끼가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인터뷰 내내 김진숙 급식조리사님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의도한 것이었다. 급식실을 지나가다 보면 아이들이 가끔 급식조리사를 '이모'라고 부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지'라고 지도한다.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선생님이라고.
김진숙 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환하게 웃으셨다. "고마워요, 선생님. 그렇게 불러주시니까 정말 힘이 나요." 그리고 덧붙였다. "제가 교단에 서서 가르치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아이들에게 건강한 한 끼를 먹이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이고, 편식하지 않게 하고, 밥 먹으면서 예절도 배우게 하고. 그것도 교육 아니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매일 수백 명의 학생들이 먹는 밥. 그 밥 한 그릇에 얼마나 많은 손길과 정성이 담겨 있는지.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교육이 아닐까. 교실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교육이 아니다. 따뜻한 밥 한 끼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채워주는 것, 그것도 분명 교육이다.
이수영 영성중 교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김진숙 선생님은 단순히 밥을 만드는 분이 아니라, 아이들의 건강과 성장을 책임지는 교육자이십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그 헌신에 학교를 대표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 지어주신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는 메시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숙 선생님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새벽에 일어나는 게, 몸이 천근만근이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18년을 버텼냐고 물었다.
"아이들 얼굴 생각하면서요. 오늘 뭘 해줘야 맛있게 먹을까, 뭘 해줘야 골고루 먹을까. 그 생각하면서 일어나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면, 가족들은 아직 잠들어 있다. 남편도, 아이들도. 아침 인사 한번 못 하고 출근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남편한테 미안해요. 아이들한테도요. 제가 집 밥을 제대로 못 해줬거든요. 다른 집 엄마들은 아침밥 차려주고, 간식 싸주고 그러잖아요. 저는 그걸 못 했어요. 새벽에 나가니까."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였을 이 분이 자신의 가족보다 학교 아이들의 밥을 먼저 챙겼구나. 그 희생 앞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래도 후회는 없으세요?"
"후회요? 없어요. 우리 집 식구들도 이해해줬고, 저도 이 일이 좋았으니까요. 내가 만든 밥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영성중 전교생은 약 200명으로 교직원까지 매일 200명 이상의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아이들 입맛이 다 달라요. 어떤 아이는 매운 걸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싱거운 걸 좋아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채소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그래서 항상 고민이에요. 어떻게 하면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그 고민은 단순한 요리의 영역을 넘어선다. 성장기 청소년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균형 있게 배치해야 하고,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을 위한 대체 식단도 준비해야 한다. 예산 안에서 최대한 좋은 재료를 구해야 하고, 위생과 안전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김예솔 영양교사는 김진숙 선생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진숙 선생님은 늘 '아이들이 잘 먹을까'를 먼저 생각하셨어요. 새로운 메뉴를 시도할 때도 아이들 반응을 가장 먼저 살피시고, 잔반이 많으면 본인 일처럼 속상해하셨어요."
김 교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감정을 추스른 뒤 말을 이었다.
"조리실에서 가장 먼저 오시고 가장 늦게 퇴근하시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으셨어요. 힘든 일은 항상 본인이 먼저 하시고, 동료들을 챙겨주시고. 그런 선배님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앞으로 선생님 없이 급식실이 돌아갈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급식실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아니, 계절의 혹독함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 급식실이다.
"여름이 제일 힘들어요. 조리실이 얼마나 더운지 몰라요. 불 앞에 서 있으면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요. 겨울도 힘들어요. 새벽에 출근하면 조리실이 꽁꽁 얼어 있거든요. 손이 트고 갈라져서 밴드를 여러 개 붙이고 일했어요."
"그 힘든 걸 어떻게 견디셨어요?"
"아이들이요. 아이들이 밥 먹고 '맛있다' 할 때, 그 한마디에 다 잊어져요. 진짜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학창 시절 무심코 뱉었을 '급식 별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 부끄러웠다.
인터뷰가 중반을 넘어갈 무렵,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솔직히 여쭤볼게요. 급식 일이 힘들잖아요. 새벽 출근에, 육체노동에, 더위와 추위에. 그래도 이 일이 좋으셨어요? 행복하셨어요?"
김진숙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했어요. 정말로요."
그 대답이 의외여서 다시 물었다.
"어떤 점이 행복하셨어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거. 그게 저한테는 큰 의미였어요. 급식노동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처음에는 그 말이 좀 무겁게 느껴졌어요. '노동자'라는 단어가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노동이 뭐예요.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내 손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그걸 아이들이 먹고 힘을 내고. 그게 노동이면, 노동은 정말 숭고한 거예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우리 사회는 종종 '노동'을 하찮게 여긴다. 특히 급식, 청소, 경비 같은 일을 하는 분들을 '이모', '아저씨'라고 부르며 교육자의 범주에서 배제하곤 한다. 하지만 그분들이 없다면 학교는 하루도 돌아가지 않는다. 김진숙 선생님의 말처럼, 그 노동은 숭고한 것이다.
"18년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순간은 없으세요?"
"없어요. 진짜 없어요. 힘들었던 적은 많았지만, 후회되는 건 없어요. 다시 태어나도 이 일 할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이분은 정말로 행복했구나.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 속에서 보람을 찾고, 그 보람으로 18년을 버텨온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백무산 시인의 시 「정지의 힘」을 떠올렸다. 시인은 말한다. 멈춤은 도태가 아니라고, 뒤쳐짐이 아니라고. 오히려 멈춤은 성찰의 시간이고, 도약을 위한 준비라고. 김진숙 선생님의 정년퇴임도 그렇지 않을까. 18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삶. 새벽 5시에 일어나 밤늦게 귀가하는 삶. 자신보다 아이들을 먼저 챙기는 삶. 그 삶에서 이제 잠시 멈추는 것이다. 하지만 그 멈춤은 끝이 아니다. 낙오가 아니다. 오히려 지난 18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선생님, 정년퇴임 축하드려요. 18년간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이고, 고생은 무슨요. 저는 좋아서 한 거예요."
"선생님, 이제 좀 쉬세요. 선생님이 그동안 아이들에게 주신 만큼, 이제는 선생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세요."
"그래야겠죠? 그동안 우리 집 식구들한테 못 해준 게 많아서. 이제는 천천히 집 밥 해주면서 지내려고요.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도 해주고, 손주들 올 때 맛있는 것도 해주고."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18년간 수만 명의 아이들에게 밥을 지어주던 손이, 이제는 가족들에게 밥을 지어줄 것이다. 그 밥은 분명,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 될 것이다.
인터뷰 막바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동료 조리사 선생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힘들 때도 있을 거예요. 더울 때, 추울 때, 몸이 아플 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그래도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가 해주는 밥 한 끼가, 아이들한테는 하루의 시작이자 힘이니까요. 우리가 없으면 아이들이 굶어요. 그 생각하면서 버텨주세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요?"
"밥 많이 먹어라. 골고루 먹어라. 그래야 건강하게 자란다."
잔소리 같은 마지막 말에 웃음과 눈물이 섞였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급식실을 나서는데, 마침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곧 아이들이 복도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 아이들은 오늘도 당연하게 급식실로 향하고, 당연하게 밥을 받아 먹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연함' 뒤에 새벽부터 흘린 누군가의 땀이 있다는 것을, 18년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킨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오늘 배웠다.
김진숙 선생님.
선생님이 끓여주신 국처럼 따뜻한 정년퇴임을 축하드립니다. 이제는 멈춰도 됩니다. 그 멈춤이 도태나 뒤쳐짐이 아니라, 지난 18년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고, 새로운 삶을 향한 도약의 발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선생님, 행복하셨다니 다행이에요. 급식노동자로서의 삶이 행복했다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깨달았어요. 행복은 거창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안에서 보람을 찾을 때 피어나는 것이라는 걸요. 선생님은 그걸 18년간 몸소 보여주셨어요.
밥 한 끼의 무게. 오늘 급식실을 나서며,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고. 그 밥을 만든 사람의 손길과 마음을 기억하겠다고.
김진숙 선생님, 18년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