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가득한,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어 주십시오”

2008.09.17 10:46:27

소통과 비전 - 박관용 전 국회의장

사회 각계 주요 인사들은 오늘의 우리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한민국 교육 60년과 한국교총 창립 61주년을 맞아 본지는 정치, 경제, 노동, 과학기술, 문화체육, 종교, 언론 등 각계 인사 7인과 이원희 교총회장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시각에 비친 우리 교육에 대한 의견을 듣고 미래교육에의 방향과 비전을 마련하고자 ‘소통과 비전-각계인사와의 대담’을 기획합니다.


하향평준화 교육은 잘못, 다양한 수월성 교육 필요
의장 재직 시 교육재정 GDP6%확보 못한 것 후회
정부는 세계적 대학유치, 구조조정 등 개혁 힘써야



이원희
=2004년 16대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나신 이후 어떻게 지내고 계신 지 궁금합니다.

박관용=부산 동래에서 첫 출마 할 때부터 떠날 때를 분명히 하겠다고 다짐했

었습니다. 모든 성공적인 영화는 라스트 신이 좋지 않습니까(웃음). 국회의장직을 마감하면 재출마하지 않고 정치와 무관한 봉사활동에 전념하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지금 맡고 있는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은 저의 이런 생각으로 인해 만들어진 단체이고 벌써 설립 11년을 맞았습니다. 각종 세미나와 심포지엄 등을 기획하는 등 바쁘게 지내고 있고 아직 찾아주시는 데가 많아서 그런지 정계를 떠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원희=이렇게 정정하신데 은퇴는 아직 이르시지요(웃음). 이 기획은 교육계 밖에 계시는 영향력 있는 현역 원로들이 보시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른 시각에서 시사점을 찾아보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올 해로 저희 교총이 61주년을 맞았습니다. ‘선생님이 희망이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만, 많은 변화가 요구되는 이 시대는 우리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이사장님은 해방 후 역사상에서 우리 교육이 가지는 역할과 위상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박관용=교육은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70불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을 300배 가까이 끌어올린 놀라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교육이었습니다. 두 번의 쿠데타를 겪으면서도 피 흘리지 않고 민주화를 이끌어 낸 것도 교육의 힘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이원희=말씀하신 데로 교육의 역할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에는 이념대립, 사교육, 입시 문제 등 많은 문제점도 산재해 있습니다.

박관용=이 회장님의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교육에서 먼저 공교육 붕괴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교육의 기승으로 기러기 아빠를 비롯한 가족 붕괴까지 가져오고 있지 않습니까. 두 번째는 입시위주 교육이고 세 번째는 학교 평등주의로 인한 하향 평준화입니다. 세상은 경쟁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얼마 전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 그 곳 교육 관계자로부터 ‘쓸모없는 인간을 만들지 말자’가 그들 교육의 모토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높이는 교육, 특화된 시민교육, 우수한 영재를 길러내는 영역별 교육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수월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만, 지금의 획일화된 평준화 교육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원희
=잘 짚어주셨습니다. 초중고교의 경우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OECD나 PISA에서 발표되는 학업성취도가 상위에 랭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육의 경쟁력 수준을 논하는 스위스 IMD의 세계경쟁력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도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55개국 중 4위로 최상위권인데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의 요구에 대한 부합 정도를 나타내는 국가경쟁력 순위는 31위, 교육 분야의 경쟁력은 35위, 대학교육 순위는 55개국 중 53위로 최하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대학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적 차원의 해결책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박관용=지금의 시대는 몇 명의 우수한 인재가 다수를 먹여 살리는 시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평준화 교육과도 연계가 됩니다만, 이런 시대일수록 대학을 보다 특성화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세계적 대학 유치에도 더 힘을 기울여야 하며, 구조조정 등 대학교육 개혁을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에 가고자하는 수요보다 대학이 더 많은 것은 우습지 않습니까. 구조조정 된 대학은 시민교육 장소로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 할 것입니다.

이원희=재정 확보의 어려움도 문제입니다. 정부가 교육재정 GDP 6%를 공약한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4.3%에 불과합니다. 이사장님 같은 분이 힘을 보태주셔야겠습니다.
 
박관용=제가 의장으로 있을 때도 GDP 6% 확보를 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만, 국회가 급한 불을 끄기에 바쁘다보니 교육재정 확보는 자꾸 미루게 되었습니다. 교육이야말로 급한 불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 데, 저 역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이번 국회는 교육재정 확보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갖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원희=미래학자와 교육전문가들은 미래사회의 변화 추세 중 학교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IT 기술의 발달과 교육적 활용 ▸인구구조의 변화와 학령인구의 감소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산 ▸세계화의 가속화 등을 지적하면서, 학교교육의 많은 변화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으로서 미래 우리교육은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한다고 보시는지요.

박관용=이념적 갈등과 양극화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중고 현장의 전교조 교사들이 지난 60년 우리의 역사를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는 좌편향 시각의 교육을 하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학부모들은 이런 교육을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될 것이며, 다른 교사들도 전교조 교사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피하는 등의 소극적 자세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원희=좋은 지적이십니다. 분단 극복과 통일이후 대비 교육 등이 이념적 주장에 의해 발목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지요. 교총이 벌이고 있는 ‘좋은 학교, 좋은 선생님’운동 역시 교사의 역할을 바로잡고자 함입니다.

박관용=교사에겐 무엇보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아직도 만나면 책 읽으라 말씀하시는 스승이 계십니다.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 같은 법도 중요하지만 교원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열정이 무엇보다 요구된다고 봅니다. 모든 것이 경쟁하는 이 시대에 학교도 경쟁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학교와 기업체간 협의체를 만들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원희=이사장님께서는 국회에서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 이나 ‘교육개혁심의위원회’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법이나 기구들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혼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교원들의 열정이 예전만 못한 데에는 이런 분위기도 한 몫 하지 않나 싶습니다.

박관용=맞습니다. 분위기 조성은 중요합니다. 예전엔 교사 월급이 제일 많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인재를 모아들일 수 있는 지원책을 쓰지 않고 말로만 하는 예우는 소용이 없습니다. 걸맞는 예우와 대우를 한다면, 교원의 열의도 살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원을 존경하는 풍토는 자연스럽게 만들어 지지 않을까요. 저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원희=교사 월급이 제일 많았던 시기도 있었나요?(웃음)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저도 바라마지않습니다. UNESCO, OECD 등의 국제기구는 평생학습과 학습사회를 21세기 발전 전략으로 채택하였습니다. 학교교육 중심으로는 급변하는 지식기반사회의 흐름에 대응할 수 없다는 인식을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선진 국가들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는 체제로의 전환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평생학습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박관용=평생교육, 시민교육은 선진국으로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교육입니다. 제가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일반인들에 대한 강의가 효과가 크다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들이 좀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평생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 사명감을 불어넣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도 통일을 앞두고 통일은 구호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습니다. 불필요한 소모적 논란을 하지 않기 위해서도 이런 시민 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원희=지금도 생각나는 선생님이 계신가요.

박관용=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김상두 선생님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놀기만 좋아했던 저에게 “너는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아이인데 왜 공부를 하지 않느냐”라는 말씀을 해 주신 선생님의 한 마디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지금 생각하면 60명 넘던 한 반 학생 하나하나에 그런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신 선생님이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그분은 제게 고등학교 때까지 큰 꿈을 가지라고 격려해 주셨고, 잘 못할 때는 꾸짖음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즘 선생님들은 나무라고 싶어도 여러 눈치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원희=선생님의 격려와 애정이 지금의 박 이사장님을 만들었다고 말씀하시니 저 역시 교사로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박관용=전국의 교원들과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대화를 하게 된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교사는 자부심과 사랑으로 제자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념 갈등으로 교원들이 분열되어서는 안 됩니다. 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존에 필요한 외교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여전히 교육입니다. 열정으로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내 안의 열정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학부모와 일반 국민 모두가 선생님들을 존경할 수 있도록 스스로 존경받는 교사가 되도록 더욱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박관용은
11대부터 16대까지 6선 국회의원(부산 동래)으로 신한국당 사무총장, 대통령 비서실장, 남북 국회회담 대표, 국회 외무통일 위원장, 한나라당 총재권한대행, 16대 국회의장,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관리 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NDI) 이사장, 동아대학교 정치행정학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서혜정 hjkara@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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