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面獸心

2009.10.08 10:11:29

(인면수심: 얼굴은 사람이지만 짐승의 마음을 지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조두순사건’이나 ‘은지사건’ 등 아동성폭력에 관한 일로 국민들 사이에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이 일로 가만 생각해보니, 얼마 전부터 신문에 친부나 의부에 의한 성폭력을 비롯한, 온갖 상상하기조차 싫은 성범죄들이 부쩍 많이 오르내리는 듯하다.

이러한 인간 이하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곧잘 표현하는 말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성어가 있다. 곧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그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의 출전인 '열자(列子)'를 살펴보니, “하나라 걸(桀) 임금, 은나라의 주(紂) 임금, 노나라 환공(桓公), 초나라 목왕(穆王)은 얼굴에 일곱 구멍이 있는 것이 모두 사람과 같지만 짐승의 마음을 지녔다.”고 하였다. 하의 걸 임금은 잔인하고 포학하였으며, 은의 주 임금은 주색에 빠져 살았고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 들였다. 노 환공은 이복형인 은공(隱公)을 죽이고 군주의 자리에 올랐으며, 초 목왕은 아버지인 성왕(成王)을 죽이고 왕이 된 인물이다.

이런 사람들이 최고 권력의 자리에 앉았으니 나라가 잘될 리 없었다. 하나라와 은나라는 곧 멸망하였으며, 노나라와 초나라가 큰 혼란과 침체에 빠지게 된 것도 필연의 결과였다.

이에 비추어본다면, ‘인면수심’이란 성어는 보통 인격이 비열하고 행위가 잔포함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지도자의 짐승과도 같은 야수성과 야만성은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가 그러한 사람들일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국민이 주인인 민주사회에서 극도로 비뚤어진 욕망을 감행하는 ‘인면수심’의 사람들이 점점 더 불어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도 이미 망조가 들거나 난세에 근접했다는 징표는 아닌지 하는 생각에 모골이 다 송연해진다.

비슷한 성어로는 ‘衣冠禽獸’(의관금수)가 있는데, 겉은 의관을 갖춰 입은 멀쩡한 사람이지만 속과 행동은 짐승과 같다는 뜻이다. 짐승은 영원히 우리에 가두거나 깊은 산속에서만 살게 해야 한다.
김경천 교수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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