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 “자기연찬 자료로 활용해야”

2012.05.30 19:50:23

패트릭 그리핀 호주 멜버른대 교수

APEC교육장관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2012 글로벌 창의인재 육성과 교육혁신’ 포럼에 참석차 방한한 세계적 평가전문가 패트릭 그리핀 호주 멜버른대 교수와 안양옥 교총 회장이 지난달 21일 경주에서 교원평가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베트남의 교원평가체제 구축 연구를 수행하기도 한 그리핀 교수와 안 회장은 교원평가의 목적이 전문직인 교원의 자발적 능력개발에 있어야 하고,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운영되면 정상적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호주 성취수준 서열화 아닌 교사 개인의 능력개발이 초점
      교육활동 담은 포트폴리오, 관리자 면담 등으로 평가
      인센티브 없어…동료 평가 포함, 학부모평가는 안 해

베트남 승진 연계, 보수‧인사 무관…퇴출 등 불이익 주지 않아

패트릭 그리핀(이하 패)=이렇게 만나 뵙게 돼 반갑습니다. 제 연구 분야에 대해 관심 가져주시고 대담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양옥(이하 안)=한국에서는 ‘교원능력개발평가’가 계속된 논란 속에서 법제화되지 못한 채 시행되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경험이 한국 50만 교원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선 호주의 상황을 좀 듣고 싶은데요.

=호주 헌법은 교육에 대한 책임을 주정부에 위임하고 있어 주마다 특색에 맞는 교육정책을 운영, 교원평가 방식도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빅토리아 주의 경우 교원평가는 철저히 단위학교 내에서 교장을 비롯한 학교 관리자들에 의해 교원 자기계발을 위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외부 개입은 일체 없습니다. 물론 각 학교는 주정부가 제시하는 교원 임용자격과 역할을 기준으로 삼아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평가방법은 학교 자율입니다.

=학교 내에서만 평가가 이뤄진다면 공정성이나 질 관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내부 평가에 대한 관리가 없다면, 유명무실한 평가가 될 우려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3년마다 정부에서 평가단을 구성해 평가 내용을 검토합니다. 위원회 구성은 주로 학계 인사나 전직 교장 등 교원연수 전문가로 이뤄집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현 정부 인사는 제외합니다.

=평가방법이 학교자율이라고 해도 대부분 비슷한 방식으로 평가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대부분은 연간 교육활동의 내용과 결과를 담은 포트폴리오 제출과 학교 관리자와의 면담 등으로 평가합니다. 포트폴리오와 면담 내용을 담은 능력개발보고서가 평가의 근거자료가 되는 것이죠. 능력개발 보고서는 경력개발을 조언하거나 전보를 희망할 경우에도 참고자료로 활용되지만, 평가결과 자체는 철저하게 교사의 자기계발에만 이용됩니다. 평가의 목적은 성취수준 서열화가 아니라 교사 개인의 능력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교총도 평가의 목적을 전문성 신장과 자기연찬 자극으로 규정해야 하고, 평가 결과는 보수나 인사와 연계하지 않고 수업개선과 전문성 신장을 위한 자료로만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같은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반가운 말씀입니다. 교원평가는 교사의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연구자로서 제가 갖고 있는 확고한 신념입니다. 평가를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사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반드시 전문성 신장을 위한 연수 등에만 이용돼야 합니다. 호주도 보수나 인사와의 연계는 전혀 없습니다.

=한국 교원단체들도 평가 결과로 불이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인센티브를 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국의 경우는 교원평가와 연계해 우수 교원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학습연구년제를 운영하고 있고, 교원평가와는 별도로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총에서는 연구년제는 전문성신장 차원에서 교직생애동안 1회 시행할 수 있도록 확대해야 하며, 성과급도 학교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해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평가결과를 철저하게 자기연찬의 자료로만 활용하기 때문에 인센티브도 시행하지 않습니다. 한 때 성과급 형태로 우수 교원에 인센티브 지급을 시도했으나 시범운영을 신청한 학교가 너무 적고 교원들이 반발해 폐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원평가가 전문성 신장을 위해서만 활용돼야 한다는 전제는 같지만 어떻게 전문성 신장에 접목할 지에 대한 입장은 다양할 것 같습니다.

=저는 교사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전문성 신장에 대해 교사 스스로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빅토리아 주에서는 교사들이 자기평가를 하고 연수 등의 발전 전략을 스스로 수립합니다. 평가체제는 기본적으로 결국 교사의 자발적 전문성신장 노력이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는 틀을 제공하는 역할이어야 합니다. 물론 교사가 원하는 전문성신장 기회를 확대해주고, 구체적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도 된다면 더 좋겠죠.

=자기 평가와 자발적 전문성신장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군요. 한국의 경우는 동료평가, 학부모 만족도·학생 만족도 조사 등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학부모와 학생 만족도 조사가 논란이 많이 있습니다.

=호주에서도 동료평가나 관리자 면담 내용이 능력개발 보고서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학부모 평가는 하지 않습니다. 세계 20여 개국에서 교육평가나 교육개발 사업에 참여했지만 학부모가 평가를 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유일한 판단근거이기 때문에 공정한 평가를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학교의 공개수업을 참관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학교교육에 대단히 관심이 많거나 반대로 불만이 많은 경우가 아니면 적극적 관심을 갖고 공개수업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학생만족도 조사도 사실 학생들의 호불호에 따라 결과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에서도 초등 4학년 이상 실시는 하고 있지만,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호주도 4학년 이상에서만 학생 만족도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저학년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 없이 조사 항목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교사가 개입을 하면 평가대상인 교사가 결과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생기고, 말씀하신대로 교사가 개입을 안 하면 교육적 만족도와는 무관하게 학생들의 기호나 기분에 따라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저학년에서 실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죠. 

=자기 평가, 동료 평가, 관리자 평가, 학생 만족도 등 다양한 평가들이 교원평가에 포함되는데 각 항목의 반영 비율은 어떻게 하는 것이 이상적일지 조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칙적으로 교원평가의 목적이 줄 세우기가 아니기 때문에 반영 비율은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평가내용을 하나의 일괄적 체제에 따라 정량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사 자신이 전문성신장을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획일적 평가도구를 사용해 교육활동 수행능력을 평가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각 교사의 직무와 책임이 다른 교직의 복잡성을 반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점수만으로는 교사가 자기연찬을 위한 명확하고 구체적 전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베트남의 교원평가 사업에도 참여하신 것으로 압니다.

=베트남에서는 국가 수준에서 교원평가의 기준을 만들고 시행했습니다. 현재는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법제화까지 이뤄 모든 교사들이 의무적으로 이 체제에 따른 평가를 받습니다. 베트남의 경우 특이점이라면 연차에 따른 승진제도가 평가결과에 따른 승진제도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평가와 승진을 연계하면 교원들의 반발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베트남 정부에서는 제도를 만들면서 ‘평가’라는 용어 대신 ‘기대’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점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년 동안 교원들의 자기발전을 위한 기대라는 내용으로 미디어 홍보도 진행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평가와 승진이 연계됐고 호주 빅토리아 주에서는 인사 연계는 철저히 배제돼 있습니다. 교총도 호주의 경우처럼 인사 연계는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입장에서 평가와 승진의 연계가 타당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더 우수한 교사가 승진해야 한다는 부분은 타당성이 있으나, 우수한 평가 결과는 승진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일 수는 없습니다. 또 평가를 인사와 연계시키면 전문성신장을 위한 투명한 평가가 어렵게 될 위험도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승진 연계 반대 움직임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에서도 승진과 연계됐을 뿐 보수나 다른 인사와는 연계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 정부에서 저희 연구진에게 평가결과 하위 교사들의 명단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교사들을 퇴출시키기 위해서였죠. 이렇게 되면 교원들은 피해를 입는 것이 두려워 솔직하게 자신들의 부족한 점이 드러나도록 평가하지 않게 됩니다. 정상적 평가가 불가능해지는 것이죠. 때문에 단호히 베트남 정부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평가가 퇴출과 연계될 경우 정상적 평가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한국정부도 확고히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현직 교원평가 외에도 교원양성이나 임용 시의 평가는 어떤가요. 한국의 교원임용은 3차에 걸친 지필, 논술, 실기, 면접시험을 통해 실시하는데 최근 교직적성과 인성을 포함한 시험으로 개선하려고 합니다. 그 방법으로 교원임용에 포트폴리오 도입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교원평가에서 포트폴리오를 활용하는 호주의 사례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빅토리아 주에서는 교원양성과정을 마친 졸업생들이 주정부가 운영하는 교원양성기관에 등록해 1년간 수습교사가 됩니다. 교원양성과정과 수습기간 동안의 포트폴리오 내용을 근거로 학교에 정식 임용됩니다. 공립학교 임용은 단위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교사를 채용할 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정하고, 그 기준에 맞는 사람을 포트폴리오를 보고 판단해 채용합니다. 한국처럼 별도의 지필시험은 보지 않고 포트폴리오와 면접을 중심으로 적합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죠.

=폭넓은 조언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교수님을 다시 초청해 고견을 들었으면 합니다. 한국과 호주 양국이 교육발전을 위해 더 많은 협력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협력을 위해 호주 연방정부에서 출연한 아시아교육재단과 함께 방안을 모색해 보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양국의 교육발전을 위해 또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개국서 평가 연구 수행…세계적 평가전문가



■ 패트릭 그리핀 교수는

20여개 국가에서 평가 관련 연구와 사업을 수행한 세계적인 평가 전문가다. 그는 특히 교원역량 개발, 전문성 표준, 온라인 평가 등에 대한 연구자로 저명하다. 그가 수행한 국제 연구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된 입장은 모든 종류의 평가가 평가자의 자기 발전을 위한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남부 아프리카에서 유네스코 교육사업 책임자로 일했고, 베트남 정부의 교원평가체제 수립과 홍콩 정부의 영어 원어민 교사제도 평가사업 등을 이끌었다. 호주 빅토리아 주와 중국의 교원평가 척도개발에도 참여했다. 현재는 호주 멜버른대 교육평가연구원 원장과 대학원 부학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21세기 역량의 교수와 평가(ATC21S)’ 연구 프로젝트의 전무이사, 베트남의 세계은행 고문 등을 맡고 있다.
정은수 jus@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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