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교육과정에 '학폭 예방자' 수업 10시간 반영

2013.07.24 18:55:06

■ 현장 중심 학교폭력예방 대책
또래학생 ‘중재자’ 프로그램 운영
은폐․ 축소 교원, 파면 등 중징계

핀란드의 1, 4, 7학년은 ‘키바 코울루(Kiva Koulu)’라는 특별한 수업을 한다. 학교폭력예방활동의 일환인 이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역할극을 통해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등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뒤 해결방안에 대해 토의하고, 집단행동을 통해 스스로 규칙을 만든다.

그리고 이 규칙에 모든 학생이 서명 한 뒤 이를 지켜나간다. 해당 학년에 1년간 총 20시간씩 일주일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이 수업은 학교 따돌림과 괴롭힘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유명하다. 왕따와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1983년 미국에서 도입된 또래조정 역시 자율적 예방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정훈련을 받은 학생이 학교 내 친구들 사이의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는 이 제도는 캐나다, 북아일랜드, 호주, 필리핀 등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이 같은 학교폭력 예방프로그램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적용된다. 정부는 23일 정홍원 국무총리(사진) 주재로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개최하고 자율과 예방활동, 맞춤형 지원을 골자로 한 ‘현장중심 학교폭력 대책’을 심의하고 의결했다.




◆ 어울림프로그램 모든 초중고 운영=이번 대책의 중점은 현장의 다양한 자율적 예방활동을 지원하고 유형‧지역‧학교급별 맞춤형 대응을 강화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핀란드 키바 코울루를 한국형으로 바꾼 어울림프로그램을 개발, 2017년까지 모든 초․중․고에서 운영할 계획이다.

어울림 프로그램은 공감, 의사소통, 갈등해결 등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6개 요소에 대해 학생 학부모, 교직원의 역할을 나눠 정리한 프로그램이다. 황홍규 교육부 학생복지안전관은 “초등학교부터 어울림프로그램을 이수하면 학생들이 학교폭력의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인 방어자 또는 해결자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밖에도 또래보호 등 학교구성원의 자율적인 예방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또래상담이나 또래조정과 같은 학생자치활동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법’과 교육과정 총론을 개정, ‘어울림 프로그램’ 교과과정 반영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들 예정이다. 현재 국회에는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이 학교구성원의 예방교육 책무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학교 폭력예방 및 대책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 교원, 학폭 인지 즉시 보고해야=교원들은 예방활동을 적극 수행하고 신속하고 공정하게 사안을 처리해야 한다. 특히 학교폭력 신고접수는 교육청에 ‘지체 없이’ 보고하고 ‘처리 단계별로 실시간 보고’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은폐, 축소 등 부적절하게 사안을 처리할 경우 특별연수 부과는 물론 파면 등 중징계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원활하고 신속, 공정한 사안처리를 위해 학교급별, 유형별 매뉴얼을 제작해 보급하고 법무부, 여가부 등과 협력해 하반기 중으로 모든 학교장 또는 교감을 대상으로 법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황 안전관은 “지난해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학교폭력 은폐․축소 시 파면까지 가능하도록 했지만 중징계는 3~4건에 불과했다”며 “올해부터 학교폭력에 부적절하게 대응한 교원은 금품수수 등 4대 비위 수준으로 징계하고 감경 대상에서도 제외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교장의 학교폭력예방 대책 수립 및 시행의무를 교육부와 교육청은 명확히 부여하고, 교장은 예방활동 내용과 학교구성원 간 역할분담 등이 포함된 계획을 수립해 인터넷 등에 공개하도록 했다.

◆ 가해사실 학생부기재 삭제 논란=지난해 3월 제도 도입이후 계속 논란이 됐던 학교폭력 사실 학생부 기재는 보존기간을 5년에서 2년으로 줄이고, 졸업 전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삭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지난해 6월 고등학생의 기록 보존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한데 이어 올 2월 서면사과, 학교 내 봉사, 학급교체, 접촉금지 등 경미한 사항은 졸업과 동시에 삭제하는 등 관리지침이 계속 완화되는 추세다.

이중처벌, 인권침해 등 일부 진보교육감과 전교조 등 교육시민단체의 주장을 수렴한 결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정부정책 일관성 결여 및 추진의지 후퇴, 학교폭력 가해사실 삭제의 근거가 될 학생의 반성 정도에 대한 기준 모호 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교원 생활지도권 강화해야”=현장중심 학교폭력대책에 대해 교육계는 기대와 함께 보완사항들을 지적했다. 한국교총은 많은 부분에서 현장성이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김무성 대변인은 “교육과정 내에서 대안교육 강화는 바람직하지만 운영상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구분 등은 보완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 대변인은 “학교 내 상담여건 개선을 위해 단순히 전문상담교사를 늘리는 것은 근본적 해결방안이 아니다”라며 “교원 수를 늘려 업무를 나누고, 학교폭력조사권 등 법률적 권한을 보장해 교사들의 자존감과 생활지도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경자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상임대표도 “근본적인 대책이 미흡하다”며 “꿈키움학교 선정이나 어울림프로그램 등은 자칫 교사들의 잡무만 늘리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승호 10004ok@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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