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점수 못 받으면 잘리는 건가요?

2005.11.10 11:18:00

교원평가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흘러나오자 일선 학교들은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교사들의 입장에서야 ‘교원평가’라는 말 자체부터 반갑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입장에 평가를 쉽사리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분명 아니다. 그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간혹 가끔 흘러가는 말로 푸념들을 늘어놓곤 한다. 하지만 교원평가가 시대적인 대세니 뭐니 하면서 자꾸만 교사들을 이 시대에 뒤떨어진 무능한 이들도 자꾸 몰아대는 부분에 대해서는 때로는 분노 섞인 말들을 쏟아내는 분들도 계신다.

우연히 몇몇 젊은 선생님들이 우연하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참, 이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교직에도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요.”
“몇 해 교사가 되기 위해 정말로 목숨 걸고 열심히 했는데, 이거 보람이 없이 벌써 이런 말이 나오다니….”
“뭐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잖아요.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이 그렇다면 우리가 맞추는 수밖에요.”
“그래도 너무 교육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 많아 속상하기도 해요.”

“이제까지 우리 학교가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보여준 것이 미약하고 부족했기 때문에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니 누굴 원망하겠어요.”
“그래도 이번 교원평가는 좀 그래요. 교사를 양성하고 뽑는 체계부터 정비를 하고 거기에 맞추어 평가를 하든지 말든지 해야지. 이렇게 밀어붙이기식 평가는 자칫 학교 전체를 황폐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인지.”

“맞아요, 다들 열린 교육과 수행평가 때문에 더 불어난 사교육비로 결국 고생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님 아니에요.”
“하지만 그간 우리 학교가 세상의 변화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해 온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학부형은 변하는데 학교나 교사가 변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겠어요. 변하는 세상 속에 과감히 부딪혀 보는 실험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젊은 선생님들은 그래도 교원평가라는 것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에 우리가 맞추어 가야 된다는 것에 동조는 하면서도 쉽사리 현 우리 교육체제에서 밀어붙이기식 평가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젊은 선생님들은 교원평가가 자신과 나아가 학교와 교사의 변화에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평가라는 말 자체가 주는 억압과 구속의 의미가 크게 작용했던지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 말 자체를 꺼려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최근에 교육부가 실시해 온 정책들이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는 우려 때문인지, 자칫 교원평가가 교직 사회 전체를 낭떠러지로 몰아가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지 자못 걱정과 우려의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내심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교원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싶어 묻게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 학기가 끝나면 아이들에게 수업과 여러 가지 면에 대해서 질문서를 주고 아이들로부터 평가 아닌 평가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교원평가에 대해 공식적으로 아이들에 묻게 되니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조심스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제일 무섭다. 왠지 아니?”

무슨 뚱딴지 소리인지 싶어 아이들은 제각각 나를 의문스럽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선생님이 무섭지 않는데요. 그냥 아저씨 같기도 하도, 형 같기도 하고, 하하하….”

제각각 아이들은 나의 질문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저희들끼리 키득대는 것이었다.

“이놈들아, 혹시 너희들 교원평가라고 들어 보았니?”
“교원평가요! 혹시 그거 선생님들을 평가하는 건가요. 어제 보니까 TV에 많이 나오는 것 같던데. 선생님 건데 왜 그러시죠?”
“이제 네가 너희들한테 평가를 받아야 한단다."
"선생님 농담 하시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시험이라도 내야 한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생기는지 나의 말을 경청하기도 했고, 또 다른 편의 아이들은 그냥 재미로 자꾸만 말놀이를 하려 들었다.

“그게 아니고, 혹시 1학기말에 선생님이 내 주었던 질문지 생각나니?”
“아! 선생님 수업은 어떻고,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부족한 점은 무엇이고, 등등…. 생각납니다.”
“그게 바로 교원평가라는 것이다. 이제 공식적으로 그런 평가를 너희들이 선생님을 두고 해야 하는 것이란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들이 점수 많이 드릴게요.”
“선생님 맛있는 것 많이 사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하하하.”
“그럼 우리가 선생님을 점수를 매기는 거네요. 그것 참 재미겠네요. 그럼 빵점 받으면 선생님이 잘리는 건가요?”

한 아이의 짓궂은 질문에 갑자기 교실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마치 그 아이가 나의 치부를 완전하게 들추어내기라도 한 듯 일시에 아이들을 긴장과 놀라움의 상태가 되었다.

“○○아 너 무슨 소리 하노. 그럼 니는 우리 선생님 빵점 줄래. 정말 인정도 없는 놈이다.”

왠지 아이들이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들이 마치 내 운명의 잣대를 자기네들끼리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느낌이 들어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자, 그만. 오늘 배울 부분 펴라. 공부하자!”

씁쓸했다. 그 동안 정말로 사심 없이 아이들과 많이 부딪히고 정과 신뢰를 쌓아 왔다. 하지만 이제 그네들의 눈치를 보며 인기 영합하는 교사로 어쩌면 살아내야 하는 현실을 떠 올리게 되니, 더 이상 이전의 순수함과 열정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자꾸만 혼란스럽게 했다.
서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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