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완장을 벗어 던지자

2006.01.31 13:38:00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구입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1월3일 통계청이 발표한 것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에 전국의 서적-인쇄물 지출액은 가구당 월평균 1만397원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신문과 잡지 대금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동화, 교양서적이 포함되는데, 이 액수는 월평균 소비 지출 204만8902원의 0.5% 수준이다. 필자는 그래도 통닭 한 마리값에 해당되는 비용의 열 배 이상은 지출하고 있어 닭대가리 신세는 간신히 면했지만, 겨울철 들어 야외활동이 줄어든 덕에 한 달에 적어도 서너 권 이상은 읽고 있다.

각설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엊그제 뒤늦게 읽었던 윤흥길 선생의 ‘완장’을 우리 교육 현실과 맞물려서 느낀 점과 교육가족들이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양서를 많이 읽어 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아다시피 윤흥길의 ‘장마’는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왠만한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 봤음직하나 혹 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80년대초 어떤 동네에 땅투기에 성공해 돈푼깨나 만지게 되면서 기업가로 변신한 최사장이라는 인물이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관리를 동네 건달 종술에게 맡기게 된다. 종술은 5만원 가량의 작은 월급을 주는데다가, 나름대로 자기가 예전에 한가닥 하였다는 위신으로 처음에는 탐탁치 않게 생각하였으나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관리인으로 취직한다. 그 이후에 종술은 낚시인들 위에 군림하기 시작하는데 고단에 지친 인생살이와 하층민 생활을 해왔던 종술로서는 팔에 두르는 비닐 완장이 크나큰 권력의 무게로 다가온 것이다.

그 후 별볼일 없는 서푼어치 비닐 무게의 완장 권력은 저수지에서 낚시질을 하는 도시의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는 모습으로도 나타나기도 하고,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는 모습으로도 나타나면서 보다 큰 폭력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면소재지가 있는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지게 되지만 그 막강한 권력에도 반항세력은 생겨서 종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주점의 작부 부월이에게는 완장의 위력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그러나 완장이 인간에게 얼마나 크나큰 욕망을 불러일으키는가는 종술이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금지하는 모습으로 증명되어 결국 종술은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나지만 그는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수지를 지키는 일에 몰두하다가 가뭄 해소책으로 저수지의 물을 빼게 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저수지의 물을 뺀다는 것은 자신의 권력 기반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술은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에게도 행패를 부려보지만 결국 열세에 몰리게 되고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는 부월이의 충고를 받아들이게 된다. 종술이 완장을 저수지에 버리고 부월이와 함께 떠난 다음날 소용돌이치며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 위에 종술이 두르고 다니던 비닐 완장이 떠다니고, 그 완장을 종술의 어머니인 운암댁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종술의 어머니 운암댁은 완장을 차게 됐다는 종술의 말에 일제시대의 헌병과 6·25때의 붉은 완장을 떠올리며 몸서리치지만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학교에도 완장은 수없이 존재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 시교육청에 근무하고 있는데 이곳에 발령받기전 1년을 소규모 6학급 학교에서 행정실장으로 근무하다 왔다. 그 이전에는 규모가 제법 큰 중학교에서 실무자로 있었는데 작은 학교 행정실장으로 와보니 처음에는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니 금방 적응이 되고 맡은바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가장 달콤하게 맛 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기안하여 추진한 것이 직접 시행되어 결과물이 나타나니 그것은 성취감으로 대변할 수 있겠다. 그런데 어느날 나를 뒤돌아 보니 애초에 가졌었던 초심은 조금씩 사라지고 교만한 마음이 그곳을 슬금슬금 찾아오더니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뒤를 돌아보면 쥐꼬리만한 완장인 행정실장의 직함에 도취되어 어떤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조금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비단 나만의 얘기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교육가족의 직장인 학교에 교장, 교감이라는 직책으로 휘두르는 완장부터 00부장이라는 직책까지 이 작은 학교조직에도 완장바람은 그칠 날이 없다. 평교사 시절에는 그러하지 아니했던 사람이 교감이 되더니 성격이 조금 권위적으로 바뀌고 연이어 교장이 되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라는 말은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교사라는 완장을 이용한 학부모에 대한 부당한 요구로 매년 반복되는 추문은 대다수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을 매도하기도 한다. 학교장과 행정실장의 완장을 이용한 검은 금품 수수와 민주적이지 않은 의사결정, 비정규직 약자들을 괴롭히는 것이 그것이다. 전문성을 지닌 정당한 권위에 대하여는 존경심을 갖고 대우해야 하지만 그것을 악용한 잘못된 행태는 비난받아 바땅하다.

조금 외연을 확대해 보자. 우리가 근무하는 교육기관을 보면 학교 위에 본청과 지역교육청을 위시한 상급기관이 있다. 상급기관에 근무한다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교직원을 대하거나, 꼭 필요치 않은 공문을 보내기도 하고, 다급해서 업무에 대해 물어본 교직원에게 성의없이 답변을 해주는 직원이 가끔 있다. 교원단체 또한 태초 출범했던 초심의 그 순수했던 성격을 잃어 색깔이 완전히 바래고 있다. 법 자체가 그들의 활동범위를 축소시킨 내재적 한계도 있지만 구성인자들이 단순한 자기 자신들만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태로 귀결되는 양상을 보여 그들의 순수성 회복은 이제 바라지도 않는다. 향후 난립하는 교원단체들이 있는데 그들 또한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작은 조직사회인 이곳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밖의 세상은 어떠할까? 우리가 참아내야 할 것, 이겨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완장을 찬 사람들에게도 있겠지만,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완장을 두른 사람들의 권력이 더 크다. 완장은 문명의 깊이가 더할수록 더욱 은밀한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가 ‘완장‘ 속의 단순한 하수인인 종술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세상살이에서 억눌려 온 권력에의 피해를, 소외됨을 자그마한 저수지 감시원이라는 완장으로 대리만족을 취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고, 결국 어쩌면 완장의 겉모습에 취해 헛된 권력을 휘두르다 추락한 피해자라는 것이다. 그 모습이 바로 우리들이 늘상 보아오고 있는 권력에 있던 사람들이고, 또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교육가족은 자기가 가진 서푼어치의 무게도 안되는 자그마한 완장에 도취되지 말고, 서로를 위로하고 이해하며 격려할 수 있는 조직풍토를 만들었으면 한다. 교장을 포함한 교사들은 학생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고, 행정실장을 포함한 직원들은 학생들이 공부 잘 할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면 되는 것이다.

소설 속 부월이라는 작부가 말했던 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될만한 의미심장한 몇 글자를 끝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백장현 교육행정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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