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바야흐로 졸업 철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졸업식은 학생들이 정든 모교를 떠나 더 큰 꿈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 상급 학교로 혹은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아주 뜻깊은 날이지요. 그러나 요즘 신세대들의 졸업식 풍경은 기성 세대의 숙연할 정도로 차분했던, 또는 눈물 바다였던 예전 풍경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난 10일 졸업식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밖으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마치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에게 무차별적으로 밀가루와 계란을 던지고, 심지어 토마토 케첩으로 덧입히고, 교복을 발기발기 찢는 등 졸업식장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꿔 놓습니다. 일명 '졸업빵'이라는 거룩한(?) 행사를 치르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이고, 이 녀석들아, 너희들이 무슨 생선이냐? 계란과 밀가루로 떡칠을 하게. 이젠 튀기기만 영락없이 생선구이로구나."
"이놈들, 먹는 것 같고 장난치면 천벌 받는다고 했지. 당장 그만두지 못해!"
졸업식 날 절대로 밀가루나 계란을 가져오지 말라고 학교에서 신신당부와 함께 엄포까지 놓았는데도 이 날만큼은 선생님들의 영이 서질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 악명(?) 높은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밀가루 세례를 피해 도망 다녀야 하는 형국입니다.
"아이, 왜 이러세요. 선생님들도 우리 맘 잘 아시면서…. 아, 8.15 해방의 기쁨이 이러했을까요? 저희는 지금 '추억 만들기'하고 있는 거라고요. 일생에 딱 한 번인데, 기분 좀 내게 해주세요."
"맞아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어려서 못했고, 또 대학 졸업식에서는 취업난 때문에 어떻게 하겠어요? 고교 졸업식 때 아니면 평생 해볼 수 없는 '뒤풀이'라고요. 다소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예쁘게 봐 주세용~. 자, 친구들아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라!"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웃어야 할지 헷갈리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밀가루냐?"고 물었더니, "그거야 새하얗게 새출발하라는 의미죠? 또한 저어기…" 하면서 머뭇거리기에 "또 뭐?"라고 되물었습니다.
"또 그런 게 있어요. 다 아시면서……."
'알고는 있었구나. 의미도 모르면서 객기를 부리는 철부지인 줄 알았더니…….'
이왕 질문한 김에 하나 더 물었습니다.
"도대체 달걀과 이 케첩은 뭐냐?"
"그거야, 밀가루가 쉽게 떨어지지 말라고 덧칠한 거죠. 간장이나 식초까지 쓰는 애들도 있어요. 다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요. 3년, 아니 12년 동안 비록 지겹긴 했지만, 그래도 추억이 남아 있는 학창시절을 쉽게 잊지 말자는 것이지요."
"인석들아,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너희들이 그 짝이구나.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면서 갖다 붙이기는 잘도 갖다 붙이는구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차라리 저 운동장 눈밭에 가서 맘껏 뒹굴어라. 눈이나 안 왔으면 몰라도 이렇게 눈까지 쌓였는데, 무슨 밀가루가 필요해!"
호통 아닌 호통을 치고 운동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학생들의 과격한 뒤풀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학부모님이 끝내 참지를 못하고 학생들을 향해서 크게 꾸짖고 있었습니다.
"재미와 장난도 유분수지. 옷을 찢고 괴성까지 질러대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짓들이야, 이게 학생들이 말하는 자유이고, 낭만인가? 아무리 곱게 봐주려고 해도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 교육의 단면이자 현주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우리 교육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싶어 씁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가정교육만의 잘못도, 학교교육만의 책임도 아닙니다. 학생들이 이런 난동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도록 한 것은 '과도한 교육열'이 빚어낸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입니다.
물론 권위주의 시대도 아닌데, 꼭 이런 방법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분출해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을 옥죄던 감옥 같은 교실을 벗어나 해방감을 맛보려는 학생들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혀만 끌끌 차기에 앞서 학생들이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가 그 원인 분석에도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해결방법이 나올 테니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철없는 아이들이 벌이는 치기어린 행동 정도로 보아 넘겼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소위 모범생 그룹에 속하는 학생들도 이 엽기적인 대열에 합류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익숙한 풍속인 양 낯설어하거나 어색해하기보다는 경쾌하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마치 축제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지켜보는 어른들만 심각했지 정작 아이들은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다가는 수능 전날 고사장 앞에서 밤새워 진을 치고 응원하는 신풍속도처럼 아예 한국의 졸업식 문화로 자리잡을까봐 은근히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교복과 밀가루의 관계는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밀접합니다. 1983년 교복 자율화 조치로 학생들도 사복을 입게 되자 졸업식에서의 '밀가루 세례'는 잠깐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1986년 교복이 부활하자 밀가루 세례 풍경이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교복이란 예전이나 지금이나 낙인(烙印)과도 같아서 학생들에게는 구속과 억압의 상징입니다. 기성세대들도 다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일제의 유산인 교복에 배지나 명찰을 바로 달지 않으면 정문 앞에 서서 벌을 받아야 했고, 모자를 바로 쓰지 않거나 목 부분의 호크를 제대로 채우지 않으면 심지어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자유분방하고 혈기왕성한 나이인데도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 도입된 교복 때문에 학생들은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졸업생들은 교복이라는 억압적인 상징에 대해 밀가루를 덧칠함으로써 그동안 숨죽이고 억눌렸던 답답한 마음을 보기 좋게 해소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밀가루였을까요? 그것은 교복이 검은색이었기에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백지화할 수 있는 재료가 바로 밀가루였기 때문입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분필가루가 뿌려졌는데, 학교에서 분필가루 단속을 하자 70년대부터 밀가루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결국 밀가루 뒤집어쓰기는 일종의 '교복 화형식'으로, 이제는 학생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성인으로 발돋움한다는 반항적인 독립 선언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교복에 대한 신세대들의 인식은 기성세대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요즘 학교 현실은 예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좋아졌습니다. 교복도 세련되었고, 교칙도 완화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몇 곱절 더 힘겨운 학창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바로 학업에 대한 중압감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학생의 상징물인 교복을 훼손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자유로움을 맛보려는 간절한 몸부림인 것입니다.
그럼, 밀가루세례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연례행사로 봐주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입시 과열이 만들어낸 우리나라만의 악습입니다. 물론 밀가루 세례를 없애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교복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복을 없앤다고 해서 과연 입시에 대한 학생들의 중압감도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밀가루 세례를 탓하기 이전에 그들의 짓눌린 어깨를, 그리고 그들의 숨죽인 목소리를 먼저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처럼 이렇게 밝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어둡고 부자유스럽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서로 네 탓을 하기보다 우리 국민 모두가 힘을 합하고 의식을 전환하여, 하루 속히 학벌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사회, 직업에 대한 귀천이 없는 사회, 소질과 특성을 인정받는 능력 본위의 사회가 뿌리내린다면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도 밝은 웃음꽃이 필 것이요, 자연스럽게 '졸업빵' 뒤풀이도 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