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보낸 카드메일에서 행복을 찾다

2006.02.17 09:10:00

어른들이 요즘 아이들은 자기밖에 모른다고 걱정을 많이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이기도 하고, 저 출산에 핵가족이라 부모들이 과잉보호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회 탓만 하면서 학교마저 뒷짐 지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학기말이라고 들떠있는 아이들에게 유종의 미를 가르치는 의미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지도하기로 했다. '정보와 생활' 시간을 이용해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카드메일로 감사함을 전하도록 했다. 카드메일을 고집한 것은 비록 남이 만든 것이지만 멋진 그림이나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받는 이를 더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수업을 치른 그날 저녁,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여러 명의 어린이들이 보낸 카드메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보낸 메일 속 문구는 인터넷에 떠도는 단어들로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날은 그 문구들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덩치만큼 마음씨 좋은 준영이와 나에게 제일 많이 혼났던 인한이는 "피-이 때린데 또 때리고 선생님 미워.…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 크신 사랑의 매가 그립습니다"라고 보내왔다. 본인의 존재를 잊지 않도록 수시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석규는 "언제부턴가 내안엔 따뜻한 작은 마음이 일기 시작했어요.…내 곁엔 항상 감사한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문구를 골랐다.

밸런타인데이에 정성껏 포장한 초콜릿을 나에게 선물했던 리라가 뽑은 문구는 "…당신이 만일 내게 내가 정말 좋으냐고 물어본다면 당신은 정말 바보예요. 초콜릿으로 이미 말했으니까. 내 마음 알겠죠"다.

전학 온 후 학교에 적응을 못해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가장 많이 했던 동근이는 "…두근거리는 나의 기다림. 용기 내어 말할 거야. 나의 진심을…, 오래전부터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아는 것 많고, 속이 깊어 어른스러운 은나는 "땀 흘려 만들기보다는 쉽게 사는데 익숙했던 제게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기쁨을 알려주신 당신. 허황된 몽상보다는 이상적인 꿈을 갖게 한 당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글을 보내왔다.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할일 다하면서 친구들을 압도하는 민아, 새침데기 진아와 속을 내보이지 않는 경식이, 2학기 봉사자로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했던 송이와 순진한 행동으로 내 글 속에서 주인공이 되었던 은솔이, 1학기 봉사자로 '고생하고도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기억할 테니 자기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던 나현이가 메일을 보내왔다.

아이나 어른이나 마음은 다 같은가 보다. 아이들의 카드메일에 내 마음이 들어 있었다. 아이들이 보낸 카드메일 문구를 볼 때마다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주어진 시간이 짧았는데도 내 마음을 꿰뚫어본 카드를 선택한 아이들이 자랑스러웠다.

요즘 아이들, 자기밖에 모르는 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덤벙대는 것 같아도 속이 꽉 차 있다. 세상물정 다 아는 어른들 수준으로 요구하면 부족한 것만 보인다. 혹 부족한 것이 있다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하나씩 차근차근 가르쳐주면 된다.

똑같은 것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 생각하기 나름이다. 예서제서 매일 몇 통씩 날아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카드메일에도 행복이 숨어 있었다. 며칠 후면 우리 반 아이들과 헤어져야 한다. 먼 곳 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큰 것 보다는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주길 바란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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