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겨울빛이 가득한 도시를 벗어나 푸르른 바다내음을 맡고 싶어서 무작정 서쪽으로 달렸습니다. 올림픽대로를 지나 한강둑길을 달리다보니 철새들도 이제는 겨울과 헤어지려는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달음에 강화도까지 왔지만 제가 보고 싶던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바닷가에 가보니 온통 갯벌뿐이었습니다.
‘이게 아닌데, 갈맷빛 바다를 보고 싶어 달려왔는데, 동해처럼 검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그런 바다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쪽빛 물결이 호흡하는 그런 바다라도 보고 싶어 왔는데, 그런 바다를 보며 두껍게 쌓인 나의 겨울을 털어버리고 싶었는데…….’
바다다운 바다를 보려면 석모도까지 가야한다기에 다시 강화도를 횡단하여 외포리에서 배를 탔습니다. 드디어 푸른 물결 넘실대는 바다에 왔습니다. 나무가 기지개를 펴듯 저도 한번 심호흡하며 크게 기지개를 펴보았습니다.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자유롭게 비상하는 갈매기의 힘찬 날개짓을 보면서 저도 바다를 닮은 하늘을 향해 마음속의 새를 훨훨 날려 보냈습니다.
기왕 석모도까지 온 김에 해안일주도로를 통해 섬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봄날처럼 날씨가 따사로워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사람들이 해수욕장에 서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바닷물 위로 영롱하게 반짝이는 햇살을 보며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요?
어떤 이는 예쁜 조개껍데기를 줍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고운 조약돌을 줍고 있었습니다. 또 몇몇 사람은 동심으로 돌아가 물수제비를 뜨며 겨울을 날려 보내고 있었고, 마음이 급한 몇몇 사람은 그만 참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은 마치 한여름인양 여학생을 번쩍 들어 바다에 빠뜨리는 짓궂은 장난을 하며 젊음을 만끽하고 있었고, 심지어 모래찜질을 하는 여유와 낭만까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석모도에는 이미 물꼬에 봄이 흘러들고 있었습니다. 농부들의 바지런한 일손에서, 상인들의 내놓는 봄빛 물건에서, 그리고 동물과 식물들의 키 작은 움직임 속에서 가까이, 아주 가까이 오고 있는 봄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농부들은 논밭을 손보며 봄맞이 준비에 한창이었고, 부지런한 할머니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바구니에 벌써 냉이와 달래를 들고 나왔습니다. 까치들은 둥지를 새롭게 단장하느라 겨를이 없었고, 닭들은 모처럼의 나들이에 한껏 들떠 있었으며, 청둥오리 한 쌍은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비둘기들은 느긋하게 일광욕을 하고 있었고, 바둑이는 함박눈이라도 내린 것처럼 기분이 좋은지 연신 꼬리를 흔들어댔습니다.
나무들도 봄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습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명자나무의 꽃망울은 마치 여인의 젖꼭지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파와 보리 등 뿌리식물들도 겨울외투를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석모도에 와서 푸른 바다만 본 것 아니라, 바닷바람 타고 저 멀리 남녘에서부터 불어오고 있는 봄의 소리를 온몸으로 듣고 보았습니다. 아마도 오늘 강화에서 산 인삼막거리와 순무김치가 속된 말로 끝내주게 맛있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겠지요. 그래도 저는 손톱 끝에 봉숭아 꽃물들이고 첫눈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소녀의 애틋한 마음가짐으로 새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간절한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눈부신 봄의 기쁨은 갑절, 아니 곱절이나 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