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배꽃의 아름다움

2006.04.22 16:19:00


"새하얀 배꽃이 겁나게 피어버렸어야~"

배의 명산지 나주는 요즘 어디를 가든지 화사한 배꽃이 지천으로 피어 꽃대궐을 이루고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배밭에 봄이 찾아들면서 나주평야는 온통 새하얀 이화(梨花)의 ‘꽃잔치 한마당’입니다. 소박하고 은은한 미소로 수놓은 산과 들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고 보면 그 어떤 꽃보다도 더 매혹적인 꽃이 바로 배꽃입니다.

정말 만개한 배꽃을 보고 있노라니, 그 깨끗하고 청초한 아름다움에 저도 모르게 빠져버립니다.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님의 침묵’의 일부분)라는 시가 저절로 터져 나오더군요.

핑크빛으로 타오르는 벚꽃이 진한 화장을 하고 세련된 옷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화려한 도시소녀라면, 부끄러운 듯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은 하이얀 배꽃은 금방 세수를 끝내고 돌아보는 수수하고 담백한 시골소녀라고나 할까요?

조금 멀찍이 보니, 배밭이 마치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인 것 같기도 하고, 하이얀 무서리가 피어나는 풍경 같기도 하여 ‘봄 속의 겨울’을 만끽합니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제음악이 흘러나올 것만 같습니다.

배꽃은 매화나 벚꽃처럼 화사하지 않습니다. 동백꽃이나 목련화처럼 크고 요란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한발 물러서서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조용히 피어납니다. 그러나 그윽하고 은은한 분위기만은 봄꽃 가운데서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어린아이의 마음보다도 더 깨끗하고 순수하고 순결한, 아름다운 순백의 물결에 그만 흠뻑 취하고 말았습니다. 길을 가다 봄처녀의 새하얀 종아리를 본 듯 자꾸만 눈이 배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꿀벌들이 그 드높고 알싸한 향기를 먼저 맡고 와서는 붕붕 소리까지 내면서 배꽃과 입맞춤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꿀벌이 한없이 부러울 뿐입니다.

배꽃은 여자들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봄바람에 가뜩이나 싱숭생숭한데, 배꽃이 이런 여심을 사로잡는 백옥이라고나 할까요? 달빛에 은은하게 반사되어 낭만적인 야경을 자아내는 배꽃을 보고 있노라면, 옛시조가 저절로 읊조려집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냐마난
다정(多情)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이조년의 ‘다정가’)

배꽃은 정말 백설처럼 하얗습니다. 또한 달빛처럼 은은합니다. 어느 누가 “달빛 부서지는 배꽃 아래 마시는 술맛이 세상 최고”라고 했나요? 말 그대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백야’를 보면서 못하는 술이지만, 그래도 달빛과 배꽃을 가득 채워 한잔 기울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여러분도 한번 시간내서 나주 들녘에 나가보기 바랍니다. 4월의 나주는 은은하고 소박한 배꽃의 향기로 불을 켠 듯 환합니다. 일년에 한차례 배의 고장으로 유명한 나주를 환하게 밝혀주기 위해 밀려오는 순수의 파도가, 순백의 정열을 간직한 나주의 배꽃이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며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나주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가까운 배밭으로 나가보기 바랍니다. 정말 혼자보기 아까운 ‘순수를 머금은 빛깔과 향기’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봄의 대지를 순수와 향기로 불을 켠 듯 휘감고 있는, 은은하고 그윽한 달빛을 받으며 곱디고운 자태를 선보이고 있는 배꽃을 보면서 시 한수 읊어보는 낭만도 괜찮을 것입니다.

♧ 배꽃 지는 밤 ♧

--- 시 / 도종환

어제 핀 배꽃이 소리 없이 지는 밤입니다
많은 별들 중에 큰 별 하나가 이마위에 뜹니다.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소리 없이 울고 있습니다.
오늘 같은 밤
가만히 제게 오는 당신의 눈빛 한줄 남았습니다.
김형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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