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또 다시 바람이 분다. 바람도 더위를 식혀주는 산들바람이 아닌 사람들을 날리려는 狂風이다. 그 바람의 정체는 ‘2006 월드컵축구’이다. 어제는 16강 진출의 분수령인 토고전을 이긴 다음날부터 온통 방송뉴스의 100%를 월드컵 뉴스로 방송3사가 도배를 했다. 심지어 캐이블TV나 유선방송은 10여년전 한일축구 중계까지 해주는 해프닝도 있다.
필자도 한명의 대한민국 남자로서, 축구동아리에 가입한 회원으로서도 축구에 대해서 좋으면 좋았지 나쁜 감정은 전혀 없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넘어 한국사람으로서 월드컵 4강 신화를 다시 맛뵈려는 태극전사들에 대해 자부심이 있으면 있었지 무슨 악감정이 있겠는가?
하지만 4년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축구라는 광풍 때문에 대다수 국민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부정적인 영향으로 인해 슬그머니 묻혀버렸던, 그리고 묻혀버리려 하는 일이 있기에 몇자 쓰고자 한다.
묻혀버린 장면 1 : 2002년 6월 5일 폴란드전 2대 0 승리, 10일 미국전 1대1 무승부. 한국의 16강 진출을 위한 마지막 승부처였던 포르투갈전을 하루 앞둔 6월 13일. 경기도 양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2차선 도로 갓길을 지나가던 여중생 신효순∙심미선(당시 14세)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처참하게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다음날 각종 신문들에는 작은 박스처리 기사 정도로만 다뤄지거나 그마저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공중파 방송사의 뉴스도 다를 바 없었다.
더욱이 이 사건은 스포츠 상업주의에 기댄 대기업과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대부분의 언론들의 침묵속에 서서히 잊혀져 갔다. 대신 언론들은 2차대전의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국민을 호도했던 것처럼 온통 포르투칼전 예측 기사에다 붉은 악마의 응원열기를 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매한 우리 백성들은 이 여중생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미군 측은 이후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 길이 없었고, 심지어 ‘이렇게 좋은 때에 그런 일들을 얘기해서 초치느냐’는 몰지각한 말마저 하게끔 분위기를 조장해 갔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월드컵 열풍이 사라진 2002년 7월부터 서울시 광화문 앞에선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들고 추모함으로써 불씨가 일기 시작했고(4년이 지난 어제도 적은 규모의 촛불 시위가 있었다.), 대중적인 소파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효순이∙미선이 추모시위가 전국 각지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올바르지 못한 상업주의에 기댄 일부 대기업과 안보주의에 기생한 대다수 언론으로 인해 국민들의 이성적인 판단과 알권리를 침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묻혀버린 장면 2 : 올해도 5∙31 동시지방선거가 있었다. 현 정부의 실정이 많고, 국민들의 신임을 얻는데 실패하면서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필자로서는 유권자들이 어느당 어떤 후보를 찍었는지에 대해 논박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그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정치성향에 대한 고유한 범주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민의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한 마디를 하고픈 마음뿐이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고 찍고 싶은 사람이 없다해도 적어도 투표장까지 간 후 기권하는 적극적인 의사표현은 못했던 것일까?
또한, 지방선거를 겨냥해 선관위가 집중 홍보를 했다해도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아무리 고육지책이라지만 경품제공 등의 소극적인 방식으로 국민들을 끌어들일 수가 있을까? 그리고 사회의 공기라는 언론이 선거에 대한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올바른 길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하는데 그 노력의 정도가 월드컵 홍보하는 것의 반도 안되니 이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돈이 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무관심으로 잘못 뽑힌 지자체장으로 인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된다면 이것 또한 더 큰 문제일 것이다. 더불어 한국축구를 응원하는 붉은악마와 같은 응원단은 해외원정까지 가며 열렬히 응원하는 열정을 보여주지만, 일부 유권자의 경우 투표에 참여하는 의지는 차를타고 1~2시간거리를 간다하면 이는 마다한다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정치를 직접 하지는 않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묻혀버린 장면 3 : 꿈에도 잊힐리 없는 한국이 4강에 오른 터키와 3, 4위 전이 열릴 예정이던 2002년 6월 29일. 이날 오전 10시 25분께 북한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남북한 해군이 교전을 벌여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 6명이 숨졌다.
다행히 서해교전은 신효순∙심미선양 사건과 달리 안보상 이용가치가 있어서 그런지 이전과 달리 주류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기사화했다. 하지만 그 후 월드컵 출전 선수들이 받은 병역특혜와 포상금(3억원) 등에 비한다면 전사자들(윤영하 소령 5,600만원, 그 이외 부사관과 병은 3,000만원 내외였다고 한다.)의 보상은 극히 적어 보는 이들에게 씁쓸함을 안겨줬다. 또한 이들에 대한 사후 대책도 월드컵 4강 영광 아래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고 한다. 4년이 지난 엊그제 현충일에 죽은 장병의 아버지가 대전 현충원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국민들의 월드컵축구에 대한 몰입으로 인해 귀한 자식의 죽음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지는것 같아 슬프다.’며 눈시울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비록 분단현실이 안겨준 비극이었다고 해도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시간을 넘어 이제 2006년으로 와서 묻혀버린 일을 뒤돌아 보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중 하나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이다. 우리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할 자유무역협정이 어떻게 진행되가는지, 어떤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진지한 사회적 공론화가 없다. 우리측 협상대표자가 미국에 가서 협상을 한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중간에 어떠한 협상이 진행되는지 국민의 관심도 없고,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것도 안보이며, 언론 또한 적극적인 이슈화를 하지 않는다. 괜히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야 시끄럽기만 하니 월드컵축구에 푹 빠져 관심을 끄라는 것인가?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FTA에 대한 반대를 하며 신중한 결정을 촉구하는 삼보일배 시위와 항의시위를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자본과 유착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국가망신이다, 반자본적이다, 폭력적이다’라며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에 바뻤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평택 대추리 사태가 있다. 정부의 조정능력이 완전 상실된 정책의 실패인 동시에 문제의 원인과 결과, 해결점 등을 모색해서 방향제시를 해야하는 언론의 책임 放棄가 이루어낸 합작품이 대추리 사태다. 해결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등대의 역학을 제대로 못하니 안개속의 배가 암초를 만난것처럼 허둥지둥이다. 배에 탄 승객들 또한 악사들이 켜대는 바이올린 소리에 취해 음악 감상만 하는 사람들처럼 난리들이다.
심지어 ‘월드컵으로 집나간 당신의 (정치)이성을 찾습니다’라는 한 시민단체의 안티 월드컵 스티커 문구까지 나왔겠는가?
음악에 취한 당신들 이제 깨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