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의 반성

2008.12.15 08:45:00


"여보, 밤 사이 첫눈이 내렸네! 저수지 한 바퀴 돌자!"
"응, 당신 먼저 돌아."

와, 멋없는 남편이다. 아무리 생활이 짜증나더라도 아내의 분위기는 맞추어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 저 눈쌓인 길을 아내더러 혼자 걸으라고. 그러면서 고독을 즐기라고. 참 무정한 남편이다. 그래가지고 노년에 제대로 대접 받을 수 있을까?

며칠 전, 중부지방에 첫눈이 내렸을 때 우리집 거실에서 아내와 나눈 대화다. 나이가 먹을수록 감성이 무디어지고 웃음이 없어진다고 한다. 웬만한 일에는 감동하지 못하는 것이 나이 먹은 사람의 특징이라는데. 그렇다면 50대 초반에 벌써 노년이 찾아왔다는 것인가?

창밖을 내다보니 저수지 물이 얼었다. 첫얼음이다. 그 위에 흰눈이 소복이 쌓였다. 어느 연인은 벌써 카메라를 들고 추억 담기에 바쁘다. 차량을 몰고 저수지까지 찾아와 손을 잡고 도는 부부도 보인다. 그래 지금 우리에겐 저런 낭만이 필요한 것인데.

문득 유머 강사의 말이 생각난다. 유머를 배우고 유머를 찾아가면서 살자고. 그리고 웃음을 만들며 활기차게 살라고 충고한다. 하루에 갓난아이는 400여번, 어린이들은 300여번 웃지만 어른들은 17번도 안 된다는 웃음 통계를 제시한다. 웃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갈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겁까지 준다.

첫눈 오는 날,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그 당시엔 그렇게 눈이 많았었다. 눈을 맞으며 뛰어다니고 눈싸움을 하고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마냥 좋아했었다. 함박눈을 입으로 받아 먹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오염이라는 것을 몰랐던 세상이었다. 생활이 좀 어려웠었더라도 첫눈을 즐거워하였다. 학창시절에는 첫눈 오는 날, 무조건 00에서 만나자는 약속도 했었다.

초년 교사 시절에는 학생들과 함께 눈사람도 만들었다. 누가 눈사람을 커다랗게 만드나 시합도 했었다. 눈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만치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즘은 눈이 내리면 걱정부터 앞선다. 낭만은 어디로 가고 출퇴근길 걱정이다. 현실을 생각하는 세속인이 되고 말았다.

첫눈 오는 날, 목석같은 남편은 아내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말았다. 이제부터라도 멋과 낭만을 찾고 즐겨야겠다. 아내가 자연풍광을 보고 감탄하면 최소한 맞장구라도 쳐야겠다. 눈쌓인 저수지를 돌면서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야겠다. 

"야, 눈이다! 여보, 우리 눈싸움하러 밖으로 나갈까?"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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