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부위정경(扶危定傾·위기를 맞아 잘못됨을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다난흥방(多難興邦·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해야 큰 일을 이룰 수 있다)’은 경제위기를 극복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여권의 의지가 담겼다. 반면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상창난기(上蒼難欺·위에 있는 푸른 하늘은 속이기 어렵다)’와 함께 ‘분붕이석(分崩離析·나라가 나뉘고 무너지며 민심이 이탈하고 단절됐다)’을 제시해 경제살리기를 강조하면서도 국론분열에 대한 비판을 잊지 않았다. ‘상창난기’는 ‘벼슬아치들은 오직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를, ‘분붕이석’은 새 정부에서 갈등이 심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국가 융성을 기원하는 뜻에서 ‘풍운지회(風雲之會·용이 바람과 구름을 얻어 기운을 얻는다)’를, 조환익 KOTRA 사장은 수출과 투자가 원동력이 되어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절도봉주(絶渡逢舟·끊어진 길에서 배를 만나 위기를 넘긴다)’를 각각 골랐다. 교수신문은 교수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화이부동(和而不同·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을 뽑았다.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치권과 국민이 힘을 합치자는 취지에서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바람이 질풍처럼 불어야 강한 풀인 줄 안다)’를,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여러 사람의 힘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는 의미의 ‘토적성산(土積成山·흙이 쌓여 산을 이룬다)’을 꼽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우보만리(牛步萬里·소 걸음으로 만리를 간다)’를 언급하며 “한걸음 한걸음으로 경제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뤄 나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소 걸음으로 천리를 걷는다는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이 있다”며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다 보면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희망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우보천리’라는 말처럼 원칙과 방향성을 가지고 전진해 간다면 결실을 볼 것”이라고 밝혔다(문화일보, 2009.1.3)
이렇듯 최근의 경기침체에 따른 총체적인 어려움을 일컫는 사자성어들을 제각기 내놓는 것이 마치 유행이라도 타는 듯하다. 지난해보다 이런 사자성어가 훨씬 더 많아진 것이 특이할 만하다. 모두가 나라를 염려하는 뜻에서 사자성어를 인용했을 것이다. 앞으로 조만간 모든 것이 잘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사자성어를 이야기하는 것도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함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많아서 기억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기도 하지만....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때였다. 그때 어떤 행사에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되지 않지만, 지도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교육분야에서만큼은 최소한 개혁이라는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급격한 개혁은 반드시 피해자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교육개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사용하지만 교육은 개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을 이렇게 표현하고자 합니다. '호시우보(虎視牛步)' '범처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소처럼 우직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교육을 보는 눈은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보되, 소처럼 우직하게 천천히 바꿔나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제자들 중 단 한명이라도 교육개혁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단 한명의 제자라도 제대로 가르치고 훌륭히 자라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의무입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좌중은 거의 한마디의 말도 없었다. 교육개혁을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던 때였다. 그럼에도 그때 그 교수님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단 한명의 제자라도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야기를 지금도 잊지않고 있다. 호시우보라는 이야기는 잊었었는데, 올해들어 인터넷 등에서 호시우보가 눈에 들어와서 새삼 의미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문화일보의 지면에서 자주뵙는 교수님이다. 항상 제자들을 먼저 생각한다는 교수님이었다.
요즈음의 교육상황을 보면 호시우보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바꿔놓고 보자는 식의 정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찰력도 없고 그렇다고 소처럼 우직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여론에 밀려 무조건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교육에서도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가 소의해이고 내년(2010년)이 범의 해이다. 올해와 내년을 발판삼아 우리나라 교육이 '호시우보(虎視牛步)'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