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나'예요

2010.01.07 10:48:00


지난 해 9월 초의 일입니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온 우리 2학년 아이들의 싱싱함으로 조용하던 교실은 생기를 찾았지요. 개학과 더불어 2학기 반장 선거를 할 때의 일입니다. 반장을 하고 싶어하는 심리는 모든 아이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점입니다.

반장이라는 직함이 주는 명예와 자부심, 약간의 우쭐거림까지도 아이들에겐 매력적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반장 선거를 할 때면 12명 모두가 출마하는 바람에 주어진 시간 안에 선거를 치르지 못합니다. 반장의 역할을 설명해 주어서인지 아이들이 서로 눈치만 보며 쭈뼛거리기를 몇 분. 표정들은 모두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씩 출마 의사를 타진했지요. 1학기 반장을 제외한 10명의 아이들이 한결같이 출마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반장 선거에서 안 될까봐 미리 부반장 선거에 나간다는 두 아이만 빼고 8명의 아이들 이름을 칠판에 써놓고 한 사람씩 출마의 변을 들었지요. 과반수가 넘어야 당선이 가능한데 8명이 출마하였으니, 모두 자기 이름을 쓸 경우, 몇 번의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나온 8명의 친구들 가운데에서 우리 반을 위해 모범적으로 공부하고 친구들에게 잘 해줄 친구 이름을 한 명만 쓰도록 합니다. 절반을 넘기지 못하면 다시 선거를 할 거예요."
8명의 아이들이 모두 소견발표를 하고 난 다음,1차 투표를 한 결과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후보는 2명으로 압축이 되었지요. 그래서 두 사람의 출마 소견발표를 다시 들은 다음,

"이제 두 명의 친구 중에서 단 한 사람의 이름만 적어주세요. 비밀로 해야 합니다. 표를 받지 못한 친구가 마음이 아플지도 모르니까요.그리고 후보로 나온 두 사람은 자기 이름을 써도 됩니다."

문제는 개표할 때 발생했습니다. 개표를 담당하고 칠판에 적던 아이들이,
"선생님, '나"라고 쓴 사람이 있어요. 어떻게 하지요?"
"엥? 우리 반에 '나'라는 사람도 있나요?"
그랬더니 아이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누군지 알 수 있었지만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어서 물었습니다.
"여러분, '나'라고 쓴 사람이 누굴까요?" 그랬더니 대뜸,

"예, 선생님. 찬대가 썼어요."
개구쟁이 준홍이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아니, 준홍이는 다른 사람이 쓰는 것을 보면 안 된다고 했는데 왜 보았어요?"
"지우개를 빌리다가 나도 모르게 보았어요."

"찬대야, 네가 '나'라고 썼니?"
머뭇거리던 찬대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이미 7대 4로 지고 있던 찬대였습니다. 떨어지더라도 자기가 쓴 표를 인정해 주어서 마음의 상처가 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지요. 그래서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찬대가 '나'라고 쓴 표를 무효로 할까요? 아니면 찬대에게 표를 줄까요?"
"찬대에게 표를 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반장이 된 주아와 2표 차이로 떨어진 찬대는 앞으로 나와서 서로 축하하고 고마워하는 악수를 하면 좋겠어요."

축하의 악수와 위로의 포옹을 나누던 두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함께 자기 이름을 '나'라고 쓴 찬대의 아이다운 천진스런 모습으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박장대소하며 즐거웠던 반장 선거 풍경은 지난 해 우리 반의 10대 뉴스랍니다.
학교 문집을 만들다가 써 놓은 교단일기를 보니 다시금 그 날이 생각나서 혼자서 실실 웃음이 나옵니다. 귀여운 아이들이 참 보고 싶습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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