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버릇 남 줄까?

2010.05.28 17:44:00

사람마다 버릇이 있다. 좋은 버릇도 있고 나쁜 버릇도 있고. 필자는 메모광, 사진광, 수집광이다. 지금도 메모해야 할 때 메모를 하지 못하면 몸이 쑤신다. 디지털카메라는 허리에 차고 다니며 현장의 순간을 포착한다. 총각 시절에는 음악을 좋아하여 클래식 LP앨범을 모았었다.

또 한 가지 버릇이 있다면 쓰던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 짐이 자꾸만 늘어난다. 집안 구석이 지저분하고 정리 안 된 박물관 같다. 다음에 쓸 것도 아닌 물건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전 교장들을 대상으로한 3박 4일 연수가 있었다. 여행가방에 세면도구와 양말, 여벌옷을 챙겼다. 같은 방을 쓰던 동료 교장 두 명이 필자의 가방을 보더니 뼈 있는 농담을 던진다.

"이 교장 같은 분만 있으면 우리 아들은 돈 벌지 못하겠어요. 지금 국내 유명회사에서 가방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거든요."

"그 가방을 보니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박물관에 있는 유물이 생각납니다."

와, 검소하다는 칭찬인가 아니면 유행을 못따라가는 구닥다리라는 핀잔인가? 이럴 땐 무어라고 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 친한 동료라 허물 없는 농담이지만 나의 습벽이 드러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 그럴만도 하지. 필자의 가방은 구입한 지 무려 23년 된 것이다. 그것도 필자가 산 것이 아니라 여동생 신혼여행(87년) 가방을 필자의 신혼여행(90년) 때 빌려 쓴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 온 지 20년이 되었다.

하기야 이 가방을 들고 나갈 적마다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당신 그 가방 또 갖고 가네? 다른 사람이 흉보겠다. 이제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내 대답은 판에 박은 듯하다. "멀쩡한 걸 왜 버려? 아직도 쓸 만한데."  아내는 남편의 품위를 생각한 것이고 필자는 실용성을 생각한 것이다.

사실 그 가방 버릴 때도 됐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의 천은 박음질 한 것이 풀려 작은 물건을 넣으면 찾기 힘들다. 이제 그만 쓰라는 신호다. 그런데 제 버릇은 남 못준다고. 아마도 작년인가 그 튿어진 것을 실로 꿰맸다. 그러니 제법 쓸만하다. 몇 년간 더 써도 끄떡 없을 것 같다.

집에 와서 그 가방을 살펴본다. 상표를 보니 '쓰리세븐'이라는 제법 알려진 상표다. 지금은 여행 갈 때 바퀴가 달린 가방을 끌고 가지만 20년 전만해도 대부분 이런 가방을 사용하였다. 신혼여행 때 보니까 사람들 가방 색깔도 대개 비슷하였다. 


우리집 쓰레기 분리 배출하는 하는 곳에 슬리퍼가 버려져 있다. 필자가 고쳐서 쓰던 것을 아내가 새 슬리퍼를 사 온 후 버린 것이다. 슬리퍼는 대개 2~3년 쓰면 수명이 다한다. 그러면 버려야 하는데, 그래야 슬리퍼 공장이 돌아가고 경제가 살아나는데 철딱서니 없는 필자는 포장용 철사를 이용, 수선하여 사용하였던 것이다.

본인이 생각해도 좀 그렇다. 고장나면 버리고, 못 쓰게 되면 과감히 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고쳐쓰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동네 벼룩시장이 잘 운영된다고 하던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렇다고 필자가 구두쇠는 아니다. 20년간 애지중지 모았던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스카우트 기념품 수 백 점을 교육박물관에 기증한 적도 있다.)

버리지 못하고 그냥 쓰면 유행에 뒤처진다. 선물 받은 물건은 쓰지도 못하고 유행이 지나가 버린다. 이사갈 때 이삿짐만 늘어난다. 쓰지 않는 물건은 버리거나 필요로 하는 분들께 드려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고 있다. 

23년 된 이 여행가방, 계속 사용해야  할까? 아니면 제조회사에 연락해 그 회사 박물관에 전시할 가치가 있느냐고 물어나 볼까? 가능하다면 기증하려 한다.

어찌보면 이게 교육의 과제다. 물건마다 다르겠지만 생활용품, 유행 지나면 버리고 새 것을 사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쓸 만한 물건이면 계속 사용해야 하는 것인가?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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